"조합원 뜻을 철저히 외면하는 정치파업 참여를 거부한다."

현대자동차 현장 조합원들의 파업반대 정서에도 불구하고 금속노조와 현대차 지부가 오는 25일부터 한·미 FTA 비준 저지 정치파업을 강행키로 결정하자 노조 지도부에 대한 일반 노조원들의 불만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합원들의 반발은 노조 지도부의 눈을 피해 대자보나 유인물을 부착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공개적으로 파업철회 촉구 서명운동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금속노조와 현대차 지부 위원장에게 직접 호소문을 보내는 형태로 발전했다.

급기야 22일엔 현대자동차 노조의 주요 지부 중 하나인 정비본부 노조가 반기를 들었다.

현대차 본부 노조의 총파업 방침을 거부하고 간부들만 파업에 나서기로 한 것.일반 조합원 개인 차원에서 이뤄지던 현대차 노조 지도부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노조 조직 내부로 옮겨붙은 셈이다.

노동전문가들은 "현장 조합원들이 대자보나 유인물,편지호소문,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조 지도부에 맞서 의견을 표출하는 사례는 대기업 노동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특히 공식적인 노조 지부가 본조의 방침을 공식 거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현장 조합원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 노조 지도부의 파업 강행이 앞으로는 좌초를 맞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또 노동운동이 지도부 중심에서 조합원 중심으로 전환되는 계기도 될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차 조합원들은 지난 21일 열린 노조 대의원대회에서 468명의 대의원들 중 단 한명만 이번 정치파업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며 파업철회를 요청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다.

한 조합원은 "노조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대의원들이 계파 간 선명성 경쟁에 매달려 조합원들의 반파업 정서를 집행부에 올바로 전달하지 않는 것을 보면 현대차 노조가 귀족 노조의 전형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이젠 노조 간부 어느 누구도 현장 조합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며 "조합원들이 직접 나서 일자리를 스스로 지켜나가야 할 때"라고 파업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울산공장 엔진공장의 한 조합원은 '파업을 재고하라'는 요지의 호소문을 제작한 뒤 울산공장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 조합원은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현대차지부 이상욱 지부장께 간곡히 호소한다"고 운을 뗀 뒤 "우리 회사가 연초 파업으로 인해 국민의 많은 질타를 받은 바 있고 고객의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있었는데 또 이번에 정치파업을 한다니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이 조합원의 호소문 서명에 동참한 조합원은 22일 현재까지 주임과 기사,반장,일반 조합원인 사원 등 모두 437명에 이른다.

이 조합원은 오는 27일 울산공장의 전면 파업 이전까지 계속 조합원을 상대로 서명을 받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2공장 반장 기사 모임인 기성회 회원들은 이날 정갑득 금속 노조 위원장과 이상욱 지부장에게 편지호소문을 보내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말고 진정 조합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달라"고 촉구하고 곧바로 이 내용을 공장 게시판에 대자보 형태로 부착했다.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정치파업 반대 서명운동을 찬성하는 목소리는 물론 조합원들 정서를 외면하는 노조 지도부에 대해 '파업 불참'을 선언하는 여론들로 물결치고 있다.

한 조합원(아이디명; 일어나라)은 "더이상 노조 간부들로부터 조합원들이 무시당할 수는 없다"면서 "조합원 서명운동을 통해 우리의 뜻을 알리자"고 파업철회 서명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나섰다.

'노조사랑'이란 조합원은 '지부장님 꼭 읽어주이소'란 글을 통해 "지금 집행부와 대의원 어느 누구도 들끓고 있는 조합원들의 강한 반대 정서를 설득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나는 이번 파업에 맞서 열심히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은 '현장도 준비합시다'란 글을 통해 "요즘 노조 게시판이나 사내 분위기 등을 보면 노조원들의 정서가 파업에 얼마나 강한 염증을 느끼는지 노조 지도부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노조가 파업지침을 내리고 대의원들이 와도 현장 조합원들은 일을 하며 파업 반대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천사3'이라고 밝힌 한 조합원은 '자식들이 뭘 보고 배우겠는가'라는 글에서 "노사가 이렇게 충돌하며 파국으로 치닫다가는 장래에 과연 우리 자식들은 뭘 먹고 살아갈지 걱정이 된다"면서 "온나라를 분열과 파국으로 몰아넣는 파업 제발 그만두자"고 호소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