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년여 만에 호주 나들이에 나선 A씨는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아내가 부탁한 향수를 사려다 낭패를 당했다.

예전처럼 출발 시간 40분쯤을 남겨두고 향수를 사려고 면세점에 들렀다가,직원으로부터 '팔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지난 3월부터 호주 노선 탑승객이 화장품이나 향수를 구입하려면 출발 시간 기준으로 최소 45분 전에 결제를 해야 하며,물건은 출발 탑승구 안에서 받을 수 있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었다.

기내에 액체류를 갖고 타기가 까다로워지면서 향수와 화장품을 파는 공항 면세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환승객은 아예 면세품을 구매할 수 없고,미주·호주 노선의 경우 구매 시간이 제한되는 등 작년 9월 이후 바뀐 조항을 몰라 매장까지 왔다가 되돌아서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들 대부분이 기내 면세품 구입에 지갑을 열고 있어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항공사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잘 모르고 갔다간 면세품 못 살 수도

공항 면세점들이 고전을 겪기 시작한 것은 작년 9월부터다.

미국 교통안전청(TSA)의 요청으로 항공사들이 미국행에 한해 액체류 기내 반입을 엄격히 제한,'탑승구 인도(gate dilivery·면세품을 매장이 아닌 탑승구 안에서 받도록 한 조치)'를 적용하면서 면세품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비행 출발 시간이 오후 2시일 경우 예전엔 탑승 마감(1시50분) 직전까지만 게이트에 도착하게끔 쇼핑 스케줄을 짜면 됐지만 '탑승구 인도' 시행 이후부턴 최소 1시15분 이전에 면세점 매장에서 결제를 완료해야 물건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1시15분쯤 여행객들이 구매한 면세품을 모아 탑승구로 이동(5분 소요)하고 탑승구 안에서 면세점별로 물건을 진열(10분)하면 탑승 시작(출발 시간 30분 전)과 함께 면세품을 나눠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까진 보통 출발 15분 전까지도 쇼핑을 하기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행객 입장에선 30분 정도 쇼핑 시간이 단축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올 3월부턴 호주 노선에도 '탑승구 인도'가 적용됐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유럽과 일본 노선은 아직 면세점 구매 시간이 제한돼 있진 않지만 목적지가 환승공항일 경우 아예 면세품을 구매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유럽 노선은 가로,세로 길이 20cm인 투명 지퍼백 1개에 들어갈 분량은 허용된다.


◆면세점은 울고,항공사는 웃고

면세점이 매출 감소로 고심하고 있는 데 비해 항공사들은 기내 면세품 매출이 늘어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항공회사들은 최근 들어 면세품 탑재 용량을 늘리는 등 기내 면세품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액체류 반입 금지 조치에 따른 최대 수혜자는 항공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 S사에 따르면 올 들어 아시아나 항공에서 판매한 전체 기내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향수만 유독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면세점 관계자들은 "공항공사에 설치된 입간판을 보면 '액체류 휴대반입 제한'이라고 돼 있어 면세품은 가능한데도 모든 액체류를 가져갈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항공사들이야 자사 매출에 이득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탑승객에게 고지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