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 장면을 본 김선욱 전남 나주 남평농협 양곡담당 상무는 '이거다' 싶었단다.
김 상무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남평농협이 출하하는 '청무미'라는 브랜드 쌀의 이름을 '왕건쌀'로 바꾸자는 안을 제출했다.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남평농협은 긴 네이밍이 유행하는 추세에 맞춰 2002년 가을에 나온 햅쌀 브랜드명을 '왕건이 탐낸 쌀'로 결정했다.
브랜드명을 바꾸기 전에도 남평농협의 '청무미'는 밥맛 평가에서 늘 상위권에 드는 프리미엄급 쌀이었다.
남평농협이 쌀 재배지에 매년 황토를 퍼날라 객토하고,퇴비를 직접 만들어 농민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는 등 지역 쌀의 품질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고급쌀=경기미'라는 인식이 굳어 있는 수도권 소비자들에겐 청무미 역시 저가 쌀이 주종인 전남 쌀의 하나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가격이 4만5000원(20kg짜리 1포 기준)으로 다른 전남지역 쌀(3만5000원 내외)보다 1만원이나 높았으니 소비자들의 손길이 갈리가 만무했던 것.
남평농협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드라마 왕건의 인기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왕건이 탐낸 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대형마트 등에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왕건이 탐낸 도우미들'이라는 이름의 여성 판촉사원과 왕건 캐릭터 인형을 매장에 배치하고 견본품을 나눠주는 등 적극적인 판촉활동을 펼쳤다.
2001년까지 2만4000포(11억원어치) 정도 팔리던 남평농협 쌀은 '왕건이 탐낸 쌀'로 새단장한 이후 2002년 3만포(13억5000만원어치),2003년 3만5000포(16억원어치) 등으로 판매량이 급증했다.
올해는 4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게 됐다.
전남 쌀로는 드물게 롯데백화점 전 점포에 입점해 있는 데다,서울 양재동 하나로클럽과 수서 하나로마트 등 서울·수도권 지역 대형마트 공략에 성공한 덕분이다.
'왕건이 탐낸 쌀'은 이달 초부터 온라인 오픈 마켓인 G마켓에서도 판매를 시작했다.
김영주 농협중앙회 양곡팀장은 "왕건이 탐낸 쌀은 지역적 특성과 드라마의 인기를 잘 접목시킨 농산물 브랜드화 사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