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산하 금속산업연맹과 화섬연맹 소속 주요 대기업 노조들이 산별 전환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주노총이 산별 전환을 추진하는 것은 무엇보다 노동세력의 힘을 한곳으로 결집시키기 위해서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이미 정치세력화를 이룬 민주노총은 산별 전환을 통해 정치적인 입지를 더욱 확고히 다지는 한편 노동자의 대동단결을 이뤄 사회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해당 기업 노조 지도부측은 내년부터 개별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허용되고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이 시행될 경우 단위노조 차원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고 판단,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 산별 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관련 기업은 노조의 동향을 파악하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가는 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 노조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한 데다 중간 간부들도 기득권 박탈 등을 걱정하고 있어 산별 전환 계획은 민주노총의 목표와 다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교섭 위해 산별체제로 간다"

산별 전환 투표 실시를 앞두고 있는 현대차 노조 집행부는 지난 3개월가량 산별노조 전환과 관련한 홍보 및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에게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투표결과를 자신하고 있다.

노조측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움직임과 2007년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노사로드맵 등은 노동운동을 필연적으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며 "산별 전환이 부결된다면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노조의 존폐조차 장담할 수 없다"고 산별노조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6일부터 28일까지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산별 전환의 필요성을 알리는 내용의 노조원 교육을 실시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양현모 대우조선 노조 기획실장은 "내년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노조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고립분산적인 기업별 노조보다 강력한 공동교섭과 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는 산별노조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산별노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대기업 노조가 의욕적으로 산별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 달리 현장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아 있다.

무엇보다 대기업 노조원 입장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할 경우 전혀 득이 될 게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많은 대기업 노조원들은 내키지 않지만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 투표는 실시한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경총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산별로 전환할 경우 임금 수준이 절반도 안 되는 중소업체 노조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임금 인상 등을 놓고 협상을 벌여야 하는 만큼 노조 집행부도 내심 썩 내키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대차 노조 등의 산별 전환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차노조의 한 조합원도 "산별노조가 마치 만병통치약이 되는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과 복지 수준이 서로 다른데 산별로 전환하면 이를 똑같이 나눠 갖자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밝혔다.

또 다른 조합원은 "그동안 노조는 민노총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면서 정치적인 이슈에 매달려 온 상황에서 산별 전환으로 중소기업 등과 보조를 맞추게 되면 일년 내내 회사 외부 문제로 시달릴 가능성이 많다"며 "선진국에선 개별 교섭으로 바뀌는 추세인 것으로 아는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현대차노조와 함께 산별 전환 투표를 실시하는 울산지역의 현대미포조선,KCC 울산공장 등의 조합원들 역시 산별 전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삼호중공업과 한진중공업 등 이미 산별노조로 전환한 사업장에는 노사 갈등이 끝없이 표출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해고된 근로자가 산별노조 단위지부장을 맡아 해고자 복직투쟁을 우선 요구함에 따라 단체교섭이 장기간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잦은 정치성 파업으로 노조원과 회사 모두 피해가 커지고 있다.

울산=하인식·거제=김태현·인천=김인완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