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000만주에 달하는 하이닉스반도체 채권단의 2차 지분매각이 임박한 가운데 주요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단 한 주도 처분하지 않기로 결정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모두 1억500만주가 풀렸던 지난해 10월 1차 지분매각 때도 보유 물량을 전혀 내놓지 않았었다.

산업은행이 주가상승에 따른 차익실현 욕구를 억눌러가며 지분 매각을 늦추고 있는 이유는 향후 하이닉스 경영권 매각과정에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향후 하이닉스를 둘러싼 인수·합병(M&A) 움직임은 반도체가 기간산업이라는 점을 중시해 △해외보다는 국내 자본 △금융보다는 전략적 투자가를 선호하는 산업은행의 의중을 거슬러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역학관계 변한다

현재 하이닉스 채권단의 좌장은 외환은행.그동안 주채권은행으로서 하이닉스 구조조정을 주도했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정상화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우의제 하이닉스 사장도 외환은행 출신의 경영인이다.

하지만 1,2차 지분 매각으로 외환은행의 지분은 7.9%로 감소할 전망이다.

여전히 1대 주주지만 한때 4.8%포인트에 달했던 산업은행과의 격차가 1.1%포인트로 줄어든다.

산업은행은 이번에 전혀 주식을 팔지 않지만 하이닉스가 3억달러에 달하는 해외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면서 지분율이 7.2%에서 6.8%로 하향 조정된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의 자회사인 정리금융공사(3.4%)와 연합하면 실질적인 1대주주의 역할을 해낼 수 있고 2대 주주인 우리은행 역시 정부가 대주주인 만큼 산업은행과 공동보조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결국 산업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채권단 내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의 운명은

이달 말로 예정된 채권단의 2차 지분매각이 이뤄지면 채권단의 지분율은 35% 선으로 낮아진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준이다.

또 46개에 달하는 채권단 숫자를 9개로 줄여 향후 매각작업 때 공개매수 부담을 안지 않아도 된다.

하이닉스의 새로운 주인을 찾아줄 준비가 끝난다는 얘기다.

문제는 국내에서 원매자가 나설 것이냐다.

산업은행은 조심스럽지만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 주가를 기준으로 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2조원대.따라서 35%의 지분 가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더라도 6조∼7조원 선이라는 것.

대우건설 입찰에 참가했던 기업들이 써낸 인수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여기에다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의 탁월한 수익창출 능력이 국내 대기업들의 입맛을 당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외환은행은 산업은행과 달리 국내에서 원매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에 회의적이다.

그동안 내밀하게 몇몇 기업들과 접촉해봤지만 실효도 없었다는 것.이 때문에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마냥 시일을 끌 것이 아니라 1,2차 지분매각처럼 블록세일 형태로 35%의 지분을 처분하는 것도 대안이라는 입장이다.

결국 나머지 지분 매각을 늦추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산업은행 입장에선 앞으로 국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직접 나설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1998년 인위적인 빅딜(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합병)로 뒤틀렸던 하이닉스의 운명이 또다시 중대기로에 선 셈이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