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장군에서 '멤버스 드라이크리닝' 세탁공장을 하는 진수일씨(45). 그는 부산 최고의 세탁기술자이면서 역전의 용사로 통한다.
세탁장비 판매업에 도전했다가 밑바닥으로 떨어졌던 그는 세탁약품 장사로 재기의 발판을 다진 다음 드라이클리닝 세탁공장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처음 장비사업이 망한 덕분(?)에 장비 약품 공장 세 분야에 정통하게 됐고 결국 초기 실패가 훗날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봅니다."
세탁업에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각별한 매력이라도 느끼는지 왜 그토록 그 사업에 매달리느냐고 물었다. "인간이 옷을 입고 다니는 이상 세탁업은 영원히 해볼 만한 사업입니다."
특히 부산이 이 사업을 하기에 좋다면서 부산세탁업 입지론을 단숨에 설파한다.
"취업난 등으로 신세대들의 결혼이 늦어지면서 독신자들이 늘고 있는 데다 공공기관이 부산으로 이전해 오면 주말부부들도 늘어날 것이고 부산 개방(경제특구) 가속화로 외국인 체류자들도 증가할 것으로 보여 세탁 수요가 지속적으로 좋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증권선물거래소,기술신용보증기금 직원 등 1000여명이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인근에 세탁시장이 호황인 것이 좋은 사례라고 귀띔한다.
진씨는 지난 1984년 부산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싱 제조업체에 들어가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월급쟁이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아무래도 내 사업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을 키우고 있던 차에 친구가 세탁장비업인 '월풀' 수입판매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해왔다. 동업으로 92년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고향(거제도) 부모님은 펄쩍 뛰셨습니다. 좋은 직장 그만두고 벌인다는 사업이 하필 세탁소라는 데 크게 실망하셨던 거죠. 당시 세탁 관련 사업은 밑바닥사업으로 간주됐거든요." 하지만 진씨는 빨래방 붐이 일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세탁장비업의 시장성이 높다고 판단,창업을 실천에 옮겼다. 예상은 적중했다. "외환위기 이후 세탁업 창업자들이 급증하면서 월풀세탁장비가 불티나게 팔려나갔죠. 월매출이 15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공을 맛봤습니다."
호황도 잠시. 창업 1년 만인 93년 초 세탁물에서 발암물질이 나온다는 방송이 나가자 판매가 뚝 끊겼다. 돈을 다 끌어모아 확보한 재고물량이 45억원어치나 쌓였다. 재고를 처분하고 사업을 정리했지만 빌린 돈을 완전히 갚기 위해선 집을 팔고 단칸방으로 옮겨 가야 했다.
옛 직장에선 그의 성실성과 기술을 높이 사 '컴백'을 권유했다. 마음이 움직였지만 세탁업에 대한 자신만의 매력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월급쟁이 리턴을 포기하고 돈이 적게 들어가는 세탁약품 판매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전문지식부터 무장하기로 했다. 그는 고등학교 화학교과서부터 시작해 세탁업과 관련된 전문서적을 모조리 독파해나갔다.
"세탁약품에 관한한 '도사'가 됐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난 다음 전국의 세탁소를 찾아다니면서 전문지식으로 업주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판매망을 넓혔습니다."
약품만 판 게 아니라 '예민한 고급 옷을 다치지 않고 때를 잘 뺀다'고 소문난 세탁소로부터 세탁 비결을 귀동냥으로 습득했다.
"약품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언젠가 세탁장비사업과 약품판매,세탁기술을 종합적으로 판매하겠다는 장기 비전이 있었기 때문에 소문난 세탁비법까지 배워두었지요."
세탁에 관한 종합지식을 터득했다고 확신한 진씨는 2003년 2월 세탁장비사업에 재도전했다. 약품판매로 모아둔 돈과 친척들로부터 빌린 1억원으로 부산 기장군에 100평 규모의 세탁공장을 임대했다. 우선 일반세탁소들이 꺼리는 세탁물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나갔다.
공장작업복 병원수술복 카센터직원복 등 웬만한 세탁소에선 돈을 더 줘도 기술이 모자라 맡고 싶어하지 않는 세탁물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해나갔다. 요즈음 유행하는 '블루오션' 전략이었던 셈이다.
약품과 기계에 관한한 부산에선 최고라는 그의 자부심과 실력은 시장에서 금방 입증됐다.
첫 도전의 실패를 거울 삼아 아예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을 하면서 공장을 돌려 서비스 시간을 하루 이상 단축했다. 소문이 나면서 가맹점을 열겠다는 창업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창업 2년 만에 체인점이 11곳으로 늘어났다. 가맹점이 늘면서 공장 매출도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 8월부터 월 매출이 5000만원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본궤도에 오른 겁니다."
진씨의 세탁공장과 거래하는 은행 관계자는 "진 사장이 첫 도전에 실패,집을 팔고 단칸방으로 밀려났지만 좌절하지 않고 기초실력부터 착실히 다진 게 재기의 요체였다"고 평한다.
진씨 스스로는 이렇게 진단한다. "어떤 풍파가 닥쳐도 한 우물을 파면 대가가 돌아온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부산=김태현 기자 hyun@hankyung.com
--------------------------------------------------------------
[ 세탁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
사업 시작 전에 그 분야의 전문가 수준까지 올라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세탁약품 판매나 세탁소,세탁공장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약품과 세탁기계,세탁기술,마케팅을 동시에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외로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세탁 기초지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탁기계,세탁약품만 좋은 것을 쓴다고 세탁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효과를 낼 수 있는 약품을 배합할 줄 알고 세탁 품질을 최상으로 갖출 수 있는 기술력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옷때가 생겨나면 반드시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고객을 끌 수 있는 마케팅 능력도 갖춰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고객으로부터 세탁물을 받아 세탁공장에 보내 매출을 올리는 세탁체인점 주인도 세탁 관련 법률과 세탁옷 때에 대해 잘 아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 않으면 비싼 옷에 대해 보상비를 지급해야 하는 등 피해를 보기 십상입니다.
특히 세탁공장이나 세탁소 창업자는 상권 성장성과 고객확보,경쟁업체 등에 대한 철저한 시장조사를 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 있습니다. 기존 업체와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진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