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명품관 에비뉴엘을 오픈한 지 1주일쯤 지난 4월 초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와 함께 조용히 롯데 매장에 나타났다.


몇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본 이 회장은 여성복 매장에 들러 직접 옷을 구입한 후 옥상 레스토랑 '타니'에 들러 식사도 즐겼다.


이 회장은 이후 몇 차례 더 에비뉴엘에서 매장을 둘러보는 모습이 롯데 직원들에게 목격됐다고 한다.


신세계 본점 신관 개점을 앞두고 이 회장의 백화점 사업에 대한 남다른 집념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5녀인 이 회장은 사업에 관한 한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는 해외 유명 백화점을 수시로 방문해 유통 패션의 새로운 동향을 파악,경영진에 주문한다.


이번에 오픈한 본점 신관만 하더라도 '고품격 백화점'을 지향하라는 이 회장의 훈수가 많이 반영됐다.


예를 들어 고객들이 움직이는 통로가 넓어지고 싸구려 판매대가 사라진 것이 대표적이다.


화려한 내부장식의 남성매장과 독자적인 편집매장을 층마다 설치한 것 등도 이 회장의 '월드 클래스 백화점'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아무래도 전문 경영인들은 매장 운영의 효율을 우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처럼 백화점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막상 신관 개점식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이 회장의 아들인 정용진 부사장의 모습만 보였다.


신세계 관계자는 "이 회장 내외분이 외국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전문경영인들에게 모든 일을 맡긴다는 원칙을 대외에 알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공식행사에 나서지 않는 오랜 일관성을 고수하는 것 뿐이란 해석도 나왔다.


본사 사무실로 쓰는 사옥 1층에 설치된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흉상도 이 회장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이 흉상은 가로 860mm,세로 650mm의 실물 크기로 브론즈 재질로 만들어졌다.


이 회장은 지난 5월 이례적으로 신세계 사보에 '아버지 이병철 회장과 나'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 글에서 "나는 아버지께 인간적으로 반했다.


아버지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도 있는 따뜻한 분"이라고 회고하면서 "아버지는 냉정한 것 같지만 감성이 풍부한 조조와 같은 지도자였고,창업의 뜻을 세계 제일에 뒀다는 점에서 장보고의 이상과 야망을 닮았다"고 평가했다.


고 이 회장의 글로벌 경영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신세계 전 임직원이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이 흉상에 녹아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 흉상은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옆에 우뚝 서 있어 임직원들은 출근하면서 매일 한 번씩 보게 돼 있다.


30년 숙원사업의 완결을 계기로 유통 맹주 탈환을 꿈꾸는 신세계의 야망을 이 회장이 언제,어떻게 실현시킬지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