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하이닉스에서 분사한 현대시스콤이 CDMA(부호분할다중접속)기술 및 인력 등을 UT스타콤이라는 회사에 매각키로 하고 계약을 체결한 것이 뒤늦게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핵심기술의 해외유출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는 IT 핵심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 국내 관련업체들이 곤란해지고,또 국가경제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문제 제기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만 생각하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닌 것 같다. UT스타콤을 두고 누구는 중국회사라 하고 또 누구는 미국회사라 말한다. 이번 사건이 문제가 되자 중국계 미국회사란 조어(造語)까지 등장했다. 미국회사면 미국회사지 굳이 중국계 미국회사라고 하는 것은 UT스타콤 설립자가 대만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바로 이 대목에서 왜 이 사건이 특히 부각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중국과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있다고들 하니 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 수많은 벤처기업 등 국내 기술 보유기업들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이들도 비슷한 경우에 얼마든지 부딪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 한 케이스만 놓고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사실 기술을 가진 회사가 경영위기에 빠질 경우 기술매각을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기술을 제대로 평가해 이를 담보로 자금을 지원해줄 국내 금융기관이 있는 것도 아닌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기술 가치를 과연 제대로 평가해 사줄 만한 기업들이 얼마나 있느냐다. 나서는 국내기업들이 없다면 외국기업에 눈을 돌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현금이 넘친다고 하지만 출자총액제한제니 뭐니 하며 이런 저런 규제에 묶여 있고 보면 선택의 여지는 더 없다. 그런 상황에서,원하는 기술이 있으면 인수·합병도 마다않는 외국기업이 나타나 현금을 바로 들이미는데 누가 주저하겠는가. 차라리 그게 구세주인 것이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이번 현대시스콤의 CDMA 기술매각 계약에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 자체로 따지면 될 일이지 핵심기술의 해외유출이니 하며 국가적 이슈로 비화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외국기업으로의 기술매각이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외통수로 몰고 가는 기막힌 기업 환경에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상업적 베이스로 이뤄지는 일을 국가가 기술유출이라는 측면에서만 재단하려 들면 탈출구를 애타게 찾고 있는 기업보고 그냥 앉아서 죽으란 얘기에 다름 아니다. 기술이 한창 성장할 때면 또 모르겠지만 일단 성숙단계에 이르면 움켜쥐고 있는 것만이 능사도 아니다. 어차피 이전될 것,시간을 끌다간 값어치만 떨어뜨린 채 이도 저도 아닌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국가가 일일이 결정할 성질의 것도 아니고,그럴 수도 없다. 그런 측면에서 산업자원부와 국가정보원이 의욕적으로 제정하겠다고 나서는 국가기술보호법이 솔직히 걱정되기도 한다. 부작용이 적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엉뚱하게 국가적 마찰로 비화되기라도 하면 그게 과연 우리에게 손실인지 이익인지도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CIA의 감시와 통제하에 놓였더라도 과연 오늘처럼 발전했을까. 어느 나라보다 기술개발하기 좋고,기술상업화하기 좋고,기술금융하기 좋은 그런 환경 조성,그것이 최선의 방책 아닌가 싶다. 논설위원ㆍ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