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불과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경영학이 학문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장사꾼의 '경영술'로서 사회과학의 '고상한' 범주에 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경영학은 사회과학의 당당한 한 분야가 됐으며 급기야는 사회과학의 꽃으로 불릴 만큼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는 경영학의 종주국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09년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에 정착한 피터 드러커는 유럽 정통학문을 배경으로 '영리추구 집단에 불과한 기업을 학문적 대상으로 삼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경영학이 진정한 사회과학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경영학의 주제로 회자되는 분권화 민영화 권한위양 지식노동자 학습조직 목표관리 수평조직 등의 경영 용어들이 모두 드러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앨빈 토플러 등의 미래학 저서가 한국에서 유행하던 지난 80년대에 드러커는 '지식사회의 도래'와 '지식근로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자본주의는 현재의 '상품경제'에서 미래에는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로 이행할 것이며 미래 자본주의의 핵심주체는 바로 지식노동자라고 규정했다. 지난해 나온 '넥스트 소사이어티'까지가 지식사회의 양상에 천착해온 작업이었다면 이번에 출간된 신간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이재규 옮김,한국경제신문사,1만1천원)는 지식노동자의 행동양식을 그리고 있다. 부제가 말하듯 '일 잘하는 사람을 위한 자기관리 방법' 지침서다. 드러커가 생각하는 지식근로자의 제일 큰 덕목은 체계화된 목표달성 능력이다. 이 능력은 그저 일만 열심히 한다고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효율을 위해서는 효율의 습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선택과 집중',즉 시간과 목표의 효율적 관리로 집약된다. 시간의 중요성은 누구나 말하는 것이지만 드러커는 '대체재 없는 희소자원'인 시간을 절대 낭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생산라인에 있는 노동자의 생산성 제고에만 치중해온 대량생산 시대의 경영자와는 달리 지식 근로자의 생산성,즉 시간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한순간의 판단착오나 업무태만이 조직 전체의 파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이번에는 일을 정말 잘하기 위해 '집중하라'고 드러커는 말한다.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해결하되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수행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일의 우선순위는 무엇을 바탕으로 결정할 수 있는가. 드러커는 다음 네가지를 추천한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판단기준으로 삼을 것,문제보다는 기회에 초점을 맞출 것,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 편승하지 말고 자신의 독자적인 방향을 추구할 것,무난하고 달성하기 쉬운 목표가 아니라 뚜렷한 차이를 낼 수 있는 좀더 높은 목표를 설정할 것 등이다. 시간의 집중과 마찬가지로 인력의 집중도 필요하다는 드러커의 제안은 토론의 여지가 있다. 단점 없는 인간은 없다. 그러므로 한 분야에서 강점을 지녔다면 그 강점을 높이 사야 한다. 드러커는 그것이 인간 본성에 적합한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배치하고 약점을 보완하려는 '전인적' 노력은 오히려 낭비라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미래사회 인간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중대한 선언처럼 들린다.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