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한국'이 흔들리고 있다. 우리의 유일한 자원인 인적 자원, 그 가운데 특히 '기술인재'들이 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인력의 좌절은 '미래한국'의 좌절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진흥 없이는 국가의 내일도 없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은 21세기 국가 아젠다로 '가자! 과학기술 강국으로'를 긴급 제안한다. 각계의 후원아래 진행되는 연중캠페인과 함께 이공계를 살리고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범국민운동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 이공계 인력은 한국경제발전을 견인해온 엔진이었다. 숫자에 밝고 응용력이 뛰어난 엔지니어가 있었기에 '아시아의 용'이 될수 있었다. 우리 기업이 세계 일류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 있었던 바탕에는 '쟁이'라는 기술인력의 피와 땀이 있었다. 그 기술인력들이 지금 실의에 빠져 있다. 공대생들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전과를 고려하고 있다. 한푼 과장이 없는 실제상황이다. 일류대 공대생들은 스스럼없이 '의(의과대) 치(치과대) 한(한의대)'으로 돌아가겠다고 내뱉는다. 그런가 하면 대덕연구단지 연구원들이 실험실을 떠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조차 망국의 고시병에 가슴앓이를 하고있다. 과학고 재학생들까지 이공계 대학 진학을 기피하는 처지다. 누가 자초한 일인가. 바로 우리다. 정부요 기업이요 학교다. 국민 모두이기도 하다. 외환위기땐 정부출연연구소 과학두뇌들이 정리대상 1순위가 됐다. 기업은 불요불급한 투자를 줄이겠다며 연구개발(R&D) 예산부터 깎았다. 학교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돈 안되는 기초과학은 이공계 대학 내에서도 찬밥신세다. 학교측의 투자도, 교수들의 사명감도, 학생들의 열의도 없다. '18세기 강의실에서, 19세기 자료를 가지고, 20세기 교수가, 21세기를 살아갈 학생을 가르친다'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공부는 어렵고 대우는 나쁘며 신분은 불안한게 바로 한국의 과학기술직이 됐다. 요즘 재계의 화두는 5년후, 10년후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산업이 무엇인가다. 섬유 철강 조선 자동차 그리고 반도체…. 그 다음에는 무엇이 5천만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을까. 대답은 우울하다. 어떤 산업을 찾건 그 산업의 새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새 제품을 내놓을 인력이 없다. 일각에선 앞으로 5년 안에 한국의 제조업은 전부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서 과학기술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술이 강했을 때 나라가 부유했고 나라가 융성했을 때 기술이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20세기 초 유럽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독일은 기술입국을 내걸고 이공계 양성에 힘을 쏟으면서 산업 헤게모니를 잡았다. 이에 반해 영국은 기술을 경시하고 '신사문화'를 내세우면서 산업혁명 이래 1백년간 누렸던 영광을 내놓았다. 중국의 부상요인에도 과학기술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국 상무위원회 7명 가운데 장쩌민 국가주석, 리펑 전국인민대표 대회 상무위원장, 주룽지 총리 등 6명이 이공계 출신이다. 미국과 일본이 이공계 살리기에 나선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미국은 수학 과학 공학 계열에 대한 기피현상을 막고 인재를 모으기 위해 '기술인재지원법(Tech Talent Act)'을 최근 마련했다. 일본도 앞으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50명 배출을 목표로 과학기술 분야를 집중 지원키로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이 그동안 지식경제에서 비전을 찾았다면 이제는 과학기술에서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업이 들고 일어나야 한다. 한국경제신문사가 이공계 살리기 운동에 나선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경식 특별취재팀장 kimks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