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영국 자유당정부 때 재무장관 하코트경은 당시 유럽정치와 지적풍토가 급격히 좌경화하자 "우리는 지금,모두 사회주의자"라고 외쳤다. 그후 1백년이 지났다. 72년간의 체제경쟁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경제틀이 사회주의를 이겼다. 그러자 오늘날에는 누구나 "우리는 지금,모두 자본주의자"라고 말한다. 우리는 '세계화,자유시장,주주'라는 화두 속에서 사조의 변덕성을 감지한다. 분명한 것은 절대진리의 유무를 단언할 수도 없으나,검증되지 않은 개연성을 진리 또는 절대가치로 믿고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명백한 잘못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객관적 사실 이외에는 검증되지 않은 예단과 주관적 가치로 사물을 인식·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바람직한 경제틀-진보 경제론(Just Capital-The Liberal Economy)'(Macmillan,London,2001)은 영국산업연맹(CBI) 사무총장이었고 지금은 메릴린치 유럽 부회장인 A 터너가 다보스 세계포럼에서 제시한 내용과 함께 위 명제의 중요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터너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사회주의 체제는 물론 다른 경제틀보다 우월하지만 상대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조응하여 변화하고 있는 산업구조에 따라 경제운용 틀의 우월성도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굴뚝산업에서는 독·일식,IT산업과 금융자본산업에서는 영·미식이 각각 우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자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국민의 경제의식과 정서를 고려하여 제3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독창성 없이 영·미식 경제틀을 모방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영·미식 경제틀은 효율성을 높이지만 분배의 형평과 노동시장 안정,그리고 환경보전에는 매우 취약한데도 너무 과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틀이 어떤 것인가는 불분명하다. 아마 케인즈형의 수정자본주의에다 현재의 영국 총리 블레어가 추구하는 '일하는 복지(welfare to work)'를 결합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영국 노동당정부는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영국의 자부심을 회복시킴으로써 2기 연속집권이라는 인기를 얻고 있다. 반면에 노동당 정책은 ①노동의 강제적 시장편입 ②공공성을 상실할 정도로 공공서비스의 외주 증대 ③자본규제 철폐로 인한 폐해 ④보좌관과 기술관료 중심의 친정체제로 인한 의회주의 희생 ⑤여론·홍보·캠페인 정치에 따른 이념과 원칙의 실종 등의 한계도 내재한다. 영국식 제3의 길에 한계는 있어도 세계사의 흐름을 인식하고 우리의 대응틀을 구성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