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스 브로스넌 주연의 첩보 스릴러 "테일러 오브 파나마"(The Tailor of Panama.23일 개봉)를 보기전에 반드시 알아둘 사실이 있다. "첩보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요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불꽃튀기는 첩보전도 파워풀한 액션도 서스펜스 넘치는 스릴도 없다. 일개 재단사의 거짓말로 빚어진 전쟁위기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오히려 나약하고 부패하고 허영많은 인간들과 인생의 아이러니에 관한 고도의 지적 고찰에 가깝다. 난봉꾼 스파이 애디(피어스 브로스넌)는 숱한 사고를 저지른 끝에 파나마 주재 영국 대사관으로 쫓겨난다. 그는 재단사 해리(제프리 러쉬)의 어두운 과거를 약점잡고 해리를 위협한다. 대통령부터 고관대작들의 옷을 짓는 그에게서 고급정보를 빼내겠다는 수작이다. 해리는 그에게 대통령이 파나마 운하를 중국에 팔아넘길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꾸며댄다. 거짓말은 눈덩이처럼 부풀고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가 출동하기까지 이른다. 나약한 지식인,부패한 정부관리,부도덕한 스파이의 모습은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조롱하며 씁쓸한 웃음을 안긴다. 동업자 베니의 환상에 고민을 토로하는 해리에게선 "세일즈맨의 죽음"의 소시민 윌리 로먼의 모습도 겹친다. 인간 본성을 찬찬히 곱씹어 볼만한 꺼리들이 꽤 많다. 감독은 "호프 앤 글로리""비욘드 랭군""제너럴"등을 연출했던 존 부어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