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다는 것,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몸짓이다"

모든 길은 우리 인생과 닮았다.

누구나 지나온 과거를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에는 모든 순간들이 현재다.

그러나 그 발자국들의 끝에서 미래가 열린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가 "길"에 관한 탁월한 명상록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2)"(김주경 옮김,동문선,7천원)를 들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첫권에서 속도경쟁 시대의 여유를 되찾자며 "느림"을 강조했던 그가 이번에는 "느릿느릿,그리고 무심하게 걷기"의 미덕을 애기한다.

이 낭만적인 철학자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과 기찻길,도시의 골목,교외의 가파른 언덕길,산길을 거닐며 그 위의 먼지나 풀잎,산책하는 사람,방랑의 의미 등을 성찰한다.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절벽을 타는 사람들 중에 과묵한 사람이 많듯이 길 위에서는 왜 고요해지고 겸손해지는지도 일깨워준다.

그러다가 "길 위에서 만나는 고독에는 전혀 쓴맛이 배어있지 않다"고 한말씀 건넨다.

내 안에 있는 의미있고도 부드러운 감성을 회복시켜주는 고독이기 때문이다.

"고독과 함께라면 혼자서도 결코 외롭지 않다"고 노래한 조르쥬 무스타키의 샹송을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앞으로 나아가되 자신이 원할 땐 언제든 멈추는 길.

길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처럼 세상의 흔적들을 온 몸에 간직한 채 우리를 목적지로 이끈다.

때로는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로 이어지면서 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그 길 위에서 저자는 "참으로 가치있는 것 옆에서 용감하게 지체하는 능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길은,느림의 의미를 놀랍도록 잘 이해하고 있는 나의 친구"라고 읊조린다.

그가 지나가는 숲 속의 산책길에는 연인들의 추억이 배어있고 가난한 사람들의 골목길에는 시인들과 화가들의 붓질이 묻어난다.

그렇다고 길이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독일군들에게 점령당했던 40일동안,프랑스의 모든 도로 위로 쏟아져 나왔던 사람들에게 "자유와 박애의 상징"이었으며 "함께 존재하기"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던 길을 잊지 않는다.

걸을 수가 없어서 의자에만 앉아있어야 했던 한 여인의 얘기도 들려준다.

길은 그녀의 생을 비켜가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의 내면으로 투명하게 난 영혼의 통로일까.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는 길의 안쪽과 바깥쪽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다.

눈밝은 사람이라면 그 속에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짧은 여행길이나 휴가를 떠날 때 꼭 배낭속에 넣어가고 싶은 "속깊은 친구"다.

여유가 생기면 "당나귀와 함께 한 세벤느 여행"(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새움,6천원)과 함께 읽어도 좋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