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는 어떨까도 궁금했다.
걸어서는 더이상 나갈데 없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로 향했다.
국토의 끝 치고는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비행기로 1시간, 차로 1시간, 다시 배로 30분.
도합 2시간반 길이었다.
내내 외로움과 마주할 것이란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섬은 고독하다"는 이미지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는 탓인가.
하얀 등대, 시퍼런 바다, 그리고 큰 바람.
고독이란 이미지를 강화하는 요인만이 떠올랐다.
수평선뿐인지, 섬이 있는지 분간못할 정도로 납작 업드린 가파도를 지나 마라도의 한 선착장 자리덕(덕은 가파른 절벽밑 수심이 깊은 곳)에 닿을 때까지 까닭 모를 헛헛함을 감출수 없었다.
동서 5백m, 남북 1천3백m의 애기몸집.
제주도에 딸려 있는 8개의 유인도중에서도 두번째로 작은 30가구 80명 주민의 한적한 삶터.
자리덕의 낮고 시커먼 현무암절벽에 선 시멘트계단을 올라 마주한 마라도의 진짜 얼굴모습은 뜻밖이었다.
왼편으로 평평하게 펼쳐진 늦봄의 초록 풀밭, 긴 다리로 그 위를 어슬렁대는 흰 깃털의 새와 알록달록 옷차림의 사람들.
"무지개 너머"의 동화나라에 문득 들어선 것 같았다.
그 싱그러움은 웃음으로 번졌다.
"있다, 없다" 내기도 했던 마라도자장면 배달용 봉고차가 미소짓게 만들었다.
자장이 아니라 짜장이라고 강조하며 5년째 마라도짜장면집을 하고 있는 방다락(55)씨.
목회일을 위해 20년전 이곳에 들어온 방씨가 사람들의 마라도생각을 들려주었다.
"생을 접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지금까지 제가 돌려세운 사람도 8백70명이나 됩니다. 이제는 자살방지전문가 소리를 들어요"
마라도는 역시 끝이란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물리적 위치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이상하게 변질되어 나타난 현상일뿐.
바로 앞 마라분교 아이들의 넘치는 생기가 그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건강하게 다가왔다.
걸어서도 40분이면 넉넉하다는 섬 일주를 위해 시계반대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시멘트로 포장된 처음 길은 수수했다.
일주로 중간쯤의 국토최남단비.
한치라도 더 내디디려는 듯 세로로 길게 누운 마라도에서도 남쪽 끝이다.
하늘에 살고 있는 천신이 지신을 만나기 위해 내려오는 길목이란 장군바위가 늠름한 자세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2인용 자전거를 탄 젊은 관광객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올랐다.
개조해 얹은 뒷짐칸에 할머니들을 태운 관광오토바이도 신이 난 듯 보였다.
이어지는 길위의 하얀 등대.
세계해도에 제주도는 나오지 않아도 이 등대 만큼은 반드시 표시될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라고 한다.
뱃길의 안전과 뱃사람의 생명을 보장해 주는 존재로서의 마라도를 말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한 자세가 도도해 보였다.
등대 앞 1백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한무리의 백년초, 소리없이 돌아가는 2기의 풍력발전기를 지나 처음과는 반대쪽에서 마주한 초록풀밭.
끝이 아닌 시작점으로서의 마라도, 또 이상을 쫓아 남으로의 출항준비를 마친 단정한 마라도의 모습이 거기 있었다.
마라도=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