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토파즈"와 "러브 & 팝"(동방미디어)이
나란히 출간됐다.

"토파즈"는 12편의 단편을 통해 성공한 남자들과 몸파는 여성들의 외로움
욕망과 권력 문제를 다룬 작품집.

"러브 & 팝"은 원조교제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작가는 "토파즈"에서 현대사회에 SM(새도매저키즘:가학 피학성 성도착증)
이라는 렌즈를 들이댄다.

그리고 사회가 발전할수록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고독의 끝에서 가학과
피학을 선택하게 되는 원인을 찾아나간다.

이번 소설집에서 남성은 주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이고 여성은 모두
추녀로 그려진다.

남성들은 고급 호텔에서 여자를 불러 섹스를 즐기지만 정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행위가 아니다.

그들은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이 낙오되지 않고 성공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권력을 확인받기 위해 섹스를 선택한다.

SM클럽의 한 여자가 사랑했던 남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자장가"에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손님에게 성행위를 강요당하며 사는 것에 비애를 느끼고 헤어진
옛 애인을 찾아간다.

하지만 성공한 옛 애인의 집으로 찾아간 그녀는 개에게 물리고 경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된다.

이 때 공원에서 만났던 미친 여자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정상인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미친 여자에게 위안을 얻는
그녀는 소통부재의 현실과 고독감을 극단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SM클럽 종업원과 비디오 배우로 전락한 한 여자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코가 비뚤어진 여자", 애벌레 같이 못생겼다고 손님에게 놀림을 당하는
여자 얘기인 "배추흰나비"도 그런 작품이다.

"러브 & 팝"은 여고생의 원조교제를 통해 사회윤리의 뿌리를 들춰보는
소설이다.

고교 2년생 히로미는 친구들과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보석가게에서
임페리얼 토파즈라는 예쁜 반지를 발견한다.

하지만 반지값은 턱없이 비싸다.

결국 히로미와 그녀의 친구 3명은 반지를 사기 위해 원조교제를 결심한다.

이들에게 도덕적인 충고는 전혀 무의미하다.

"왜 하면 안되는가"라는 이들의 물음에 명확한 답을 줄 사람이 없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들은 도덕성을 강조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백화점 앞에서 진을 치고
원조교제 대상을 찾거나 노래방에서 딸 또래의 여고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무라카미 류는 후기에서 "소설 취재과정에서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며 "그녀들은 성실하고 세련됐기 때문에 문학의 유효성에 대한
회의까지 들 정도였다"고 털어놨다.

< 고두현 기자 kd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