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내내 밤마다 술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지칩니다. 낮엔
술 깨느라 일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에요"

"늦게까지 술마시고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접대 골프치는 게 제일 힘듭니다"

최근 만난 벤처기업 사장들이 늘어놓는 하소연이다.

지난 여름 벤처기업을 세운 S사의 C사장은 요즘 창업 아이템으로 개발한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아졌다.

저녁 시간을 연구개발이나 사업구상에 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해본지도 오래다.

벤처기업가들이 "억지 춘향"격으로 술을 마시는 건 "비즈니스" 때문이다.

투자자 고객 공무원 등과 술 한잔을 나눠야만 사업 진행이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사실 "사업가는 술 한잔쯤은 할 줄 알아야 된다"는 얘기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술 접대"는 공공연한 상식이자 영업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경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불리는 벤처기업까지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렇다면 "벤처기업의 메카"라는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지난달 벤처기업인 10여명과 함께 실리콘 밸리에 다녀온 모 벤처기업 사장의
말을 빌려보자.

"벤처기업인, 벤처캐피털리스트, 업계 관계자들이 중심이 되는 칵테일
모임이나 시가(Cigar) 모임이 굉장히 활발하더군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가벼운 정보 교환은 물론 대규모 거래도 척척 이뤄지더라고요"

물론 이 기업인의 말이 미국의 벤처문화를 완벽하게 전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벤처에도 "문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를 만드는 일은 정부가 나서거나 일부 사람들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다.

벤처업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다행히 벤처문화의 싹이 국내에서도 몇몇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단돈 몇 천원의 회비와 벤처에 대한 열정, 그리고 넘치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벤처파티"에 모여드는 젊은 벤처인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을 한국경제의 진정한 대안으로 키워가기 위해 벤처문화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밤도 벤처기업인은 원치않는 술잔을 기울여야 할테니까.

< 장경영 산업2부 기자 longru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