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콰이강 다리건설에 강제동원됐다가 일본인 신분으로 전범재판을
받고 처형당한 조선인 군속들의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당시 사형을 선고받은 24명의 한국인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주인공 김덕기(본명 홍종묵)의 증언을 바탕으로 역사의 현장을 추적한다.
도큐야마 마츠오라는 이름으로 징발돼 콰이강 다리 건설에 투입됐던 그가
사형선고를 받고 일본 형무소에 갇혔다가 감형된 뒤 국적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이 줄거리다.
티베트와 태국을 가로지르는 콰이강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로 잘 알려진 이름.
2차대전 때 싱가포르와 자바전선에서 붙잡힌 연합군 포로 18만여명 등 50만
명이 철도 건설에 참여했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영화가 영국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데 반해 이 소설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역사의 그늘을 비춘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는 연합군 포로와 일본인만 나온다.
그들에게 일본명으로 동원된 한국인 군속들은 관심 밖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군은 한반도에서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3천명
의 군속요원을 징발해 남양군사령부로 보냈고 특히 영어에 능통한 3백여명을
콰이강 다리 건설에 투입했다.
이들은 조선인이지만 창씨개명으로 인해 연합군 포로들에게는 모두 일본군
으로 비쳐졌다.
이 때문에 결국 전범으로 체포돼 24명이 사형, 27명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번의 국제재판 끝에 일본으로 송환된 이들은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무국적자로 전락했다.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도 이들의 존재는 철저히 무시됐다.
일본과 한국이 모두 외면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들의 비극이 한국현대사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92년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정씨는 "7년전 홍종묵씨를 처음 만났을 때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한국인으로
복원시켜드리겠노라고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며 "이제 잊혀진 한국인들에
대한 복권청원서를 올린다"고 말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