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에서 현대백화점을 지나 1km 쯤 가다보면 고가도로가
보인다.

그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들면 상가와 주택가가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골목이 나타난다.

이곳에 있는 강남출판문화센터 건물 지하1층.시뮬레이션개발업체인
마스코리아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다.

반팔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직원들은 마치 일과
휴식의 모호한 경계선인 이 골목처럼 한량해 보인다.

그러나 컴퓨터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놀림들은 예사롭지 않다.

지난 91년 컴퓨터그래픽제작업체로 출발한 마스코리아는 97년 시뮬레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자주포 미사일등 군사용 3차원 시뮬레이션을 개발해 삼성항공에
납품하는 개가를 올렸다.

신사동 도산대로에 있는 씨네하우스극장 맞은편 뒷골목.

자줏빛 지붕 2층 빨간벽돌건물이 인상적이다.

일반 가정집처럼 보이는 이 곳은 교육용CD롬으로 요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포인트가 디지털영상 게임SW 웹진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작업공간이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과 신사동 일대는 이제 "로데오거리"로 불리는 유행과
향락의 공간이 아니다.

광고 소프트웨어 영화 전자출판 인터넷비즈니스 애니메이션 분야의 벤처기업
들이 몰려들면서 "실리콘앨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 일대 큰길가만 둘러보면 왜 콘텐츠업체의 메카를 상징하는 실리콘앨리로
불리는지 알 수 없다.

벤처기업들이 모여있을만한 건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미디어사업팀과 소프트웨어센터 정도가 노출돼 있을
뿐이다.

그러나 "앨리(골목길)"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한두개 벤처회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곳곳에 콘텐츠왕국을 꿈꾸는 벤처전사들이 게릴라처럼 포진해 있다.

"압구정 실리콘앨리"는 도산대로에서 지하철 3호선 신사역과 압구정역에
이르는 2~3km 구간과 주변지역.

간판을 달지않고 소규모로 활동하는 초미니 벤처까지 줄잡아 4백여 콘텐츠
업체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 신사역 주변은 매체광고와 관련된 컴퓨터그래픽사와 전자출판전문
업체들의 천국이다.

무려 1백여 업체가 성업중이다.

블루라인 드림한스등 3D 애니메이션 제작사도 이 지역에 있다.

압구정역에서 안세병원 4거리까지는 게임 교육등 각종 소프트웨어와
웹디자인 인터넷방송 등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많다.

"멀미로드(멀티미디어길)"라고 불릴 정도다.

"사이다"라는 3D캐릭터를 개발해 유명해진 인터넷서비스업체인 예스네트,
중견 소프트웨어업체인 솔빛미디어, 인터넷방송국인 GBN미디어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영화관 오즈 씨네하우스 키에마가 늘어서 있는 도산대로 주위에는 영화관련
회사들이 밀집해 있다.

영화제작사인 율가필름 태창 두인컴 한아미디어 태원영화사, 영화기획사인
이손기획, 영화무가지와 웹진을 발행하는 네가 등 50여개사들이 모여 있다.

압구정앨리는 90년대 들어 대형 광고대행사와 프로덕션을 따라 소규모
광고그래픽(CGI)사들과 전자출판전문업체들이 모여들면서 만들어졌다.

이어 극장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영화관련 회사와 게임SW 교육용CD롬 등
영상물제작업체들이 러시를 이뤘다.

최근들어 각종 인터넷관련 콘텐츠업체들이 압구정동을 찾아오면서
압구정앨리는 전성기를 맞고 있다.

골목안이라 해서 임대료가 다른 곳에 비해 싸지도 않은 압구정앨리가
이처럼 번성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97년말 창업한 예스네트 이응진 사장이 사무실을 "멀미로드" 한복판
으로 정한 동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비즈니스는 역동적이고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분야입니다.
최신 유행의 흐름과 젊은 감각을 피부로 접할 수 있는 이 곳야말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펼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압구정앨리로 들어온 컴퓨터그래픽업체인 인디펜던스의 홍성호
실장은 "무엇보다 콘텐츠 개발자들이 첨단 패션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공간
으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실리콘앨리는 뉴욕 맨해튼 41번가 뒷골목의 오랜 문화전통과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만들어냈다.

지금은 "문화의 첨단지대이자 해방구"인 압구정동이 한국의 실리콘앨리를
일궈가고 있다.

< 송태형 기자 toughl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