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증시 동조화 현상이 부쩍 심해졌다.

미국주가가 웃으면 세계주가도 웃고, 미국주가가 울면 세계주가도 따라
우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각국의 경제사정이 같을 수는 없다.

경제사정이 좋아지는 나라도 있고 나빠지는 나라도 있다.

그런데도 세계 주가는 좀처럼 독자노선을 걸을 줄 모른다.

한국증시만 해도 그렇다.

싯가총액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의 주식보유 비중은 19.1%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증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은 못된다.

외국인 비중이 태국은 35%, 인도네시아는 26%나 된다.

외국인이 담합하지 않는 이상 한국증시를 송두리째 쥐락펴락할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외국인의 움직임은 한국증시를 좌우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주가가 오르내리는 것은 주로 미국 내부의 경제전망에 근거한다.

미국의 경제전망이 좋아지면 주가가 올랐다가, 기업수익 전망이 나빠지면
내리는 식이다.

미국의 경제가 좋아지거나 나빠졌다고 해서 한국의 경제가 당장 좋아진다
거나 나빠진다는 특별한 인과관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상황인데도 한국증시가 미국증시에 밀착하는 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 상거래주식이나 금융주가 미국에서 떴다 하면 한국에서도
금세 열을 내곤 하다가 미국이 시들해지면 꼬리를 내리곤 한다.

어떤 의미에선 한국의 자본시장은 물론 정보시장까지 국제화됐기 때문이란
풀이가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외환위기 당시나 지금이나 자본시장에 흐르는
불안정한 기류는 여전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금도 환율과 금리차를 이용해 미국과 아시아를 넘나드는 자금이동은
계속되고 있다.

자연 여의도 증권가에도 밤사이 미국주가가 좋으면 "사자"주문을 냈다가
미국주가가 나빠지면 금세 긴장하는 하루살이식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다.

외환보유고가 늘어났고 환율안정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내달부터는 외환거래 자유화 폭이 한층 넓어져 슈퍼마켓에서도 달러를 바꿀
수 있게 될만큼 세상이 좋아진다.

그럼에도 국제자금의 돌연한 이동 가능성에 대해 증시가 좀처럼 경계감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돌발사태가 지니고 있는 파괴력 때문이다.

잘 나갈 때일수록 조심해야 한다.

국제자본의 이동 가능성은 정책당국자가 한시도 놓쳐선 안될 대목이다.

< 허정구 증권부 기자 huhu@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