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광명시 소하리 기아자동차 노동조합 사무실.

노사 조인식이 끝난 직후 일부 기자들이 고종환 노조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1시간여의 설득끝에 인터뷰에 응한 고 위원장의 첫마디.

"민주노총이나 금속노련에서 기아 노조는 이제 "죽일 놈"이 됐습니다"

"국내 최강성 노조", "민노총의 선봉장".

기아 노조를 표현할 때면 늘 따라붙던 수식어들이다.

그런 막강 노조가 올들어 국내 대형사업장으로는 처음으로 무분규 선언을
했다.

민노총이 "변절자" 운운하며 징계를 들먹이는 것도 이해 못할바는 아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고 위원장과 기아 노조가 얼마나 큰 용단을 내린 것인
지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노조 간부들은 노조의 기본 역할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그들에게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부도유예 사태이후 1년반가량 고용및 생존권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생산과 판매의 정상화가 고용과 생존권을
지켜주는 길이라는 판단도 섰습니다. "무분규"라는 말에만 너무 집착하지
말고 회사의 조기 정상화를 위해 최대한 협조한다는 의미로 봐 주십시요"
(남문우 사무국장)

"천덕꾸러기".

기아 노조는 그간 사내외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게 사실이다.

노사동수로 구성된 징계위원회 때문에 회사는 조업원들의 어지간한 근무
태만행위에 대해선 징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이 규정을 뒀던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이제 모두 외국기업에 넘어갔다.

기아사태 당시 노조위원장이 지난 2월 경제 청문회에서 "부도 사태는
전적으로 경영진의 책임"이라고 말해 또다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노조의 탓만도 아니었다.

경영권 유지의 방편으로 노조에게 온정주의로 일관해 온 구 경영진에게도
왜곡된 노사관계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기아 노사관계가 이제 변하고 있다.

그들의 표현대로 7조8천억원이라는 막대한 부채를 덜어준 채권단과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회사측도 투명 경영과 조기 흑자전환으로 노조의 용단에 보답하겠다는
자세다.

부도유예라는 암울한 터널에서 빠져나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 기아차.

이제그들이 삐거덕 거리지 않고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자.

< 윤성민 산업1부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