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말 개봉되는 프랑스영화 "택시"의 한 장면.

두명의 한국유학생이 교대로 택시를 몰며 돈을 버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들에겐 밤낮이 없다.

한명이 운전대를 잡으면 다른사람은 트렁크에 들어가 잠을 청한다.

이를 바라보며 주인공들이 하는 말.

"저게 한국식으로 일하는 거지" "경제가 어렵다보니 쟤들은 부모를 위해서
학비를 번대..."

한국의 경제위기가 외국영화의 코미디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초여름 상영된 미국영화 "나홀로집에3"에선 꼬마 캐빈을 괴롭히는 악당들이
북한에서 특수훈련을 받은 국제 테러범으로 소개된다.

뒤이어 개봉된 "스폰"의 주인공이 위기를 맞는 장소도 북한의 화학무기공장
이다.

올해 개봉된 외국영화에선 이처럼 남북한의 상황을 조롱하는 장면이
유달리 많이 나온다.

"남한은 깡통차서 망신, 북한은 깡패라서 망신"이라는 농담이 영화에
반영되는 것이다.

외국인 친구들도 이젠 기아와 한보를 들먹이며 한국식 경제시스템에
대한 비난을 서슴치 않는다.

한마디로 한국의 국가이미지가 위기에 처했다.

한때 "경제동물"로 배척받던 일본은 이를 "돈"과 "문화수출"로 극복했다.

미국 영화사를 매입하는가 하면 끊임없이 "사시미"와 "가부키"문화를
알려나간 것.

그결과 미국영화속의 일본인은 이제 "협잡꾼"에서 "백인 주인공을
도와주는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탈바꿈했다.

미디어학자 맥루한은 영화를 "쿨 미디어"(Cool Media)로 분류했다.

영화속의 이미지가 아무런 거부감없이 관객들의 의식속에 뿌리내린다는
뜻이다.

정부는 국가홍보CF의 해외방영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전세계 수억명이 지켜보는 영화속 이미지를 외면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

<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