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가 노.사.정 협의체인 노사정위원회(가칭)에 참여키로 전격 결정함에
따라 일단 고통분담에 관한 3자간 대타협의 발판이 마련되게 됐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주까지도 정리해고제를 도입한다면 총파업을
포함, 총력투쟁에 돌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노동계가 갑자기 협의체에 참석키로 입장을 바꾼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노동계 지도부가 김대중당선자와 미셀 캉드쉬 IMF총재를 만난
것이 돌파구를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대중당선자측은 노동계와 만나 경제난 극복을 위해선 노동계의 고통분담
이 불가피한 점을 강조했고 캉드쉬총재 역시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을 반전
시키기 위해선 정리해고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두 사람을 만나고 나서 노동계도 고통
분담에 동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13일 4대 그룹 회장들을 만나 경영계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도 노동계의 태도를 변화시킨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김당선자와 회장들이 이 자리에서 대기업총수재산을 증시에 투자하는 등
기업구조조정원칙에 합의함으로써 노동계도 고통분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노동계지도부는 협의체 불참으로 인한 파장도 감안했다.

경제주체들의 고통분담 합의는 자금을 빌려준 IMF의 요구사항 가운데 하나.

만약 노동계가 이를 거부,외환위기가 재연되고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을 노동계가 뒤집어쓸 것이라는 점을 우려했다는 얘기다.

노동계가 협의체에 참여함으로써 노사정간에 사회적 대타협 문제가 남아
있다.

정리해고제 도입,근로자파견법 제정,실질임금 삭감 등 근로자들이 짊어져할
고통을 놓고 노.사.정은 협의체 안에서 한바탕 힘겨루기를 해야 한다.

경영계도 노동계가 납득할 만한 자체적인 고통분담 방안을 내놓아야 문제는
원만하게 풀린다.

노사정간 논의의 핵심은 정리해고제다.

정부와 재계는 물론 정치권도 정리해고제 도입은 IMF의 공식 요구는
아니지만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도 이를 부인하진 않는다.

그러나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더라도 노동계가 최대한 안전장치를 확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협의과정에서 노사간 마찰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재계의 개혁노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정리해고 도입여부가 달려 있다"며 "그러나 노동계의 고통만을 분담하려할
경우 사회적합의는 결코 이루워질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정리해고제 도입을 노사합의로 결정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96년말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서 노사가 합의하지 못해 노동법파동
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협상에 협상을 거듭하다가 결국 강행처리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강행처리되더라도 협의체조차 구성하지 못해 노사 또는 노정이
정면충돌하는 경우에 비해서는 충격이 심하진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 노동계를 비롯 협의체 참여 주체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대타협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고 있다.

< 김광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