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지원폭등 대략적인 윤곽이 드러난데 이어
지원시점이 내달로 임박해짐에 따라 재계에도 초비상이 걸렸다.

IMF의 요구조건에 따른 부실금융기관 통폐합및 부실채권회수 대출기준강화
등으로 부실기업의 부도가 가속화되고 국내 산업계가 거대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금융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기간 자금부족과 금리인상에 시달릴
것으로 우려되고 있고 웬만큼 견실한 기업이라도 위험이 내포된 사업의
신규투자가 사실상 어려운 지경에 처할 전망이다.

이에따라 대기업들은 구조조정및 M&A(인수합병) 붐에 대비, 핵심추진사업을
재점검하고 진행중인 사업등 불가피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신규투자를 유보
하는 등 투자우선순위 재조정에 본격 착수했다.

내년초부터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 유동성부족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초내핍경영체제로 전환하는 한편 내년에 필요한 운영및 투자자금의 조기
확보에 나서고 있다.

기아 해태 뉴코아 등 현재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위기감은
한층 심각하다.

이들은 정부와 금융권의 자금지원이 상당폭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초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우선 국내 대기업들은 이번 IMF 구제금융이 국내 산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방아쇠역할을 할 것이라는데 가장 큰 파장의 비중을 두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요구조건이 결정되진 않았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의 예를
감안할때 거시경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긴축.저성장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번 한국경제의 위기가 금융부실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부실
금융기관의 통폐합및 대출제한 등 대대적인 금융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구조조정은 일반기업으로 이어져 재무구조가 불량한 기업은 자구
노력없이 자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게 되며 경영상태가 괜찮은 기업들도
"리스키"한 사업추진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

따라서 자금확보 등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빚어지고 기업들의 슬림화
와 인수합병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대비해 현대 삼성 LG 대우 등 주요 대그룹은 물론이고 악성루머의
표적이 되고 있는 중견그룹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내년 투자와 매출신장률을
축소조정하고 있다.

이미 발표했던 신규투자 재점검한다는 방침이다.

삼성그룹은 내년 투자규모를 올해보다 20%이상 줄인 6조5천억원으로 최근
책정했으나 가능한한 더 축소키로 했다.

내년 매출신장률도 올해 13%선의 절반을 약간 웃도는 7~8%선에 맞췄다.

현대그룹도 올해와 비슷한 9조원선의 투자를 계획했으나 내년 경영환경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재조정작업에 들어갔다.

LG 대우도 상황변화에 따라 투자및 성장률을 축소조정한다는 방침이며
쌍용 한진 금호 한화 한라등도 신규투자를 전면 보류하거나 재조정한다는
계획이다.

이에따라 최근 초대형 투자사업으로 재계의 주목대상이 되고 있는 투자
규모 60억달러선의 현대 하동제철사업, 외자 7억달러를 포함해 2조원이
투자될 동부그룹의 반도체사업 등이 악영향을 받지 않을까 해당 그룹에서
조차 걱정하고 있다.

말그대로 초비상이 걸린 곳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법정관리나 화의 등을
추진중인 기업들이다.

IMF의 기조가 시장경제원리 안에서의 자연스런 구조조정이어서 이들 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지원이 대폭 축소되거나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공기업화를 추진중인 기아의 경우 IMF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돼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기아 등은 이에따라 자산매각 인원감축등을 보다 강도높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내수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업종의 기업들은 당장 내년 계획을 전면 재조정
키로 했다.

자동차 가전 섬유업계에서는 내년부터 국내 경제가 저성장기조로 바뀔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
하고 있다.

미국 일본 등과 경쟁관계에 있는 자동차 반도체 등의 주요 업종의 경우는
이번 구제금융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IMF가 사실상 미국의 논리를 대변할 뿐만 아니라 이번 구제금융에서 미국
일본의 협조융자가 상당폭 포함돼 있어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정부가 강도높은 통상외교를 동시에 펼쳐줄 것으로
요구했다.

이같은 긴축정책및 구조조정에 맞춰 기업들은 벌써부터 신규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비수익사업정리로 대대적인 인력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
이다.

모그룹 기조실 S부사장은 "IMF의 구제금융까지 들어오면 기업들의 슬림화
노력이 가속화되고 이에 반대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반대명분이 적어져
고용정리가 강도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철수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