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일간의 숨막히는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법정관리로 운명이 결정된
기아자동차의 역사는 1944년 고 김철호씨가 설립한 경성정공에서 출발한다.

52년 기아산업으로 개명하면서 최초의 국산자전거인 "3000리호 자전거"를
생산했으며 오토바이(61년), 삼륜차(62년), 4륜화물차(71년) 등을 내놓았다.

73년엔 기업공개와 함께 종업원지주제를 실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해 11월 창업주의 타계로 장남 김상문씨가 경영권을 이어받아 74년
소하리공장을 준공하고 최초의 국민차 브리사를 출시했다.

이후 아시아자동차 인수, 피아트 조립생산 등으로 순항하던중 70년대말
오일쇼크로 일대위기를 맞았다.

80,81년 2년간 무려 5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침몰하는 듯했던 기아는 81년
10월 김선홍사장의 취임과 함께 봉고를 내놓으면서 재기에 나선다.

이후 86년 프라이드, 87년 콩코드, 92년 포텐샤, 93년 스포티지, 96년
엘란 등을 출시했고 올들어서는 대형승용차 엔터프라이즈를 선보였다.

90년에는 상호를 기아자동차로 개명했다.

88년10월에는 자동차생산 1백만대를 돌파했고 95년10월에는 수출 1백만대,
96년에는 생산량 5백만대 등 잇따라 기록을 세우면서 국내 2위의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지켜 왔다.

한편 계열사로는 86년에 인수한 기아특수강을 비롯, 20여개를 인수 또는
설립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