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프로그래머로서 웃지못할 고생도 많았지만 우리나라 금융전산화의
기초를 닦았다는 데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여름
컴퓨터실의 온도를 낮출 드라이아이스를 구하기 위해 서울시내 곳곳을
헤매던 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조이남(55) 금융결제원 상무.

그는 68년부터 30년동안 금융기관 전자계산본부와 금융결제원에 재직
하면서 줄곧 전산업무를 담당해온 금융전산분야의 산증인이다.

88년 은행간 CD(현금자동지급기) 공동망 서비스, 89년 타행환 공동망
서비스, 93년 점외 CD/ATM(현금자동입출금기) 접속업무 등 굵직굵직한
금융자동화서비스가 모두 그의 손을 통해 구체화된 까닭이다.

"지금의 금융결제원 전산망을 통해 지로나 어음및 수표교환등 하루
9백50만건의 전표가 처리되고 있습니다. 전산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분량이지요. 따라서 국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금융권을
이용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65년 서울대 수학과를 나온 조상무는 그무렵 새롭게 소개된 EDPS
(전자정보처리시스템) 개념에 매료돼 2년 남짓한 교편생활을 정리하고
프로그래머의 길로 들어섰다.

조상무는 당시 국내에는 전산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어 매뉴얼 한권을 들고 각종 시스템기기들과 씨름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래서인지 조상무는 대단한 학구파다.

주경야독하면서 경제학및 전산학석사 이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어셈블리
랭귀지" "시스템분석과 설계" "전산학개론"등의 대학교재를 펴내기도 했다.

앞으로 짬이 나는 대로 우리나라 금융전산화의 산증인으로서 그 과정에서
겪었던 다양하고 재미있는 뒷얘기를 책으로 엮어볼 생각이다.

"우리의 금융전산화는 일본과 비교할 때 대략 5년정도 뒤처져 있습니다.
일부 앞선 분야가 있긴 하지만 외환딜링이나 자산부채관리시스템등은
상당히 낙후된 수준입니다. 좀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요"

그렇지만 요즘 조상무의 신경을 붙들고 있는 일은 딴 곳에 있다.

8월말께 서비스 시작과 함께 본격적인 홈뱅킹시대를 열게 될 "뱅텔
(Banktel)"이다.

이 서비스는 가정이나 사무실에서 PC를 이용해 지로대금및 각종 요금납부
계좌이체 잔액조회 수표사고신고 등의 금융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종합금융거래정보시스템으로 금융전산화의 새 장을 열게 된다.

< 김수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