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생업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10일 정부가 발표한 공인회계사 감사제도 개선대책은 치열한 로비전이
전개된 끝에 우여곡절을 거쳐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란의 대상이 됐던 부분은 회계법인의 감사 수임의 범위.

정부 발표에 따르면 감사인 100명 이상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형 회계
법인은 자산 규모가 8000억원 이상인 회사에 대해서는 감사를 맡을 수
없게 된다.

자산 규모 8000억원이면 대부분의 재벌급 기업들은 물론 웬만한
금융기관들도 모두 포함된다.

이같은 제도를 만든 취지는 회계법인의 대형화를 유도해 국제 경쟁력을
키운다는 것.

그러나 과연 국내 회계법인의 대형화가 이같은 제도로 달성될 수 있을
것인지도 의심스럽고 이제도 자체가 다분히 경쟁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문제도 적지 않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들은 고참 감사인들 간에 지붕만 같이 쓰고(roof
sharing)있을 뿐 실질적인 조직화는 전혀 진전되고 있지 못한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대형회사들의 감사 수임을 독점시킨다는 것은 고참
회계사들에게 나누어 먹기식 이권을 주는 것일 뿐이라는게 젊은 회계사들의
반발이다.

이번 정부의 발표를 두고 "30인의 회계사 마피아"가 마음대로 농단했다는
등의 험악한 말들까지 오가고 있다.

정부는 인위적인 기준을 만들기전에 회계사들간에 진정한 경쟁을 유발하고
그 결과로서 회계법인의 대형화가 이루어 지도록 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 정규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