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의 비전은 회장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게 아닙니다.

각 계열사와 한화인 스스로가 만들어야 합니다"

"지방 사업장에 가보면 정문입구에 나와 도열하고 박수를 치고 하는데
이 때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김승연회장이 오랜 만에 자신의 비전과 고민을 솔직히 털어놨다.

10대그룹 가운데 삼성 현대에 이어 세번째로 지령 3백호를 돌파한
그룹사보 "한화"지와의 특별인터뷰를 통해서다.

김회장은 회장실과 헝가리 부다페스트 켐핀스키호텔등에서 세차례
사보기자와 만나 비교적 솔직하고 담백한 어조로 그룹의 미래상과
오너로서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비전과 관련, 21세기에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게 중요하다며
"회장이 있고 각사 경영진이 있지만 실제로 회사를 움직이는 사람은
부장급 이하의 직원들"인 만큼 이들이 비전를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회사는 자연히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오너로서의 고민들.

김회장은 앞으로 자신을 곤혹스럽게 하는 구시대적인 의전을 없애주기를
주문했다.

그는 전국 사업장을 방문하며 고생하는 사원들을 격려하고 싶어도 항상
"지나친 환대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회장을 반가이 맞아주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나 지난친 환대
때문에 회장이 권위적인 사람으로 비치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바라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도열해 박수를 치고 있으면 차에서 내려야할 지도 고민이고 악수를
하는 것도 두줄로 서있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황당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김회장은 이것을 "회장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 강조했다.

한화는 평소보다 30면이 많은 1백30면의 "3백호기념특별호" 가운데
14면을 할애해 김회장의 인터뷰내용을 한글과 영문기사로 실었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