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가볍고 재미있게" 장기신용은행의 이영헌(34세) 마케팅팀장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종종 튀어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마케팅팀 사무실도 겉보기에는 여느 은행사무실들과 다를게
없어보이지만 뭔가 여유있는 분위기가 배어있는 것같기도 하다.

사무실 한켠에 큼지막한 디즈니랜드 만화영화 포스터가 걸려있고 책상
위에는 제도용자 도화지등 디자인도구들이 널려 있는 것은 광고회사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최근들어 은행들은 마케팅전담부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로 후발은행을 중심으로 이전에는 홍보부나 저축추진부등에 포함돼있던
마케팅관련업무를 따로 떼어내 일반기업들처럼 마케팅팀이나 마케팅부를
만들었다.

전과 같은 관료적인 태도로는 치열해진 경쟁시대에 살아남을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직제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TV및 신문광고는 물론 각종 팜플렛작성 홍보영화제작 시장조사 영업점지원
등 상품판매촉진및 은행이미지구축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담당하는 장기신용
은행 마케팅팀도 지난해3월에야 구성됐다.

바쁘게 뛴다고 성과가 나는 일이 아니다보니 실제 업무분위기도 덜
빡빡하게 이끌어가는게 이팀장스타일.밤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도록 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아침에 팀원들과 함께 하는 티타임도 절반은 잡담처럼 진행한다.

상품판매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야근을 하느니 집에서 편안하게 구상하는게 효과적이고 디자이너라면
업무시간중에라도 미술전람회에 보내야 한다는게 이팀장의 주장.

어차피 머리속에는 늘 업무와 관련한 생각이 꽉 차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팀장은 "맞춤은행"이라는 이미지광고가 큰 효과를 얻은데 대해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

은행인지도가 두배나 높아졌고 인식도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이 항상 쉽게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항상 안팎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듣게된다.

이번 이미지광고도 역기능을 우려하는 내부의 반론에 부딪혀 하마터면
무산될뻔 했었다.

결국 임원들을 설득해가며 성사는 시켰지만 은행내에서는 고집쟁이로
소문이 나버렸다.

이팀장은 마케팅이 비판대에 쉽게 오르는 것은 "마케팅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상품판매는 상품개발부서와 영업점과 유기적인 협조가 있어야 가능한데
때로는 모든 공과를 마케팅에만 돌리려는 편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팀장은 "금융자율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국내은행들의 마케팅업무도
상품개발과 자산운용까지 포괄하는 외국은행들의 경우처럼 발전해나갈 것"
이라며 은행마케팅업무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