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저 고려원간 3,000원)

현대인의 자아상실과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해온 저자의 4번째 시집.

이번 시집은 그리움의 대상을 과거가 아니라 역사속의 실재에서 찾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피안의 세계는 경주 남산이나 감은사지 혹은 곳곳에 있는
처용의 도시이다.

그는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신라여인과 만나고 진흙투성이의 세속
도시에서 연꽃을 발견하며 끝없이 떠돈다.

그의 발길은 오래전에 떠나온 진해 옛집과 "방어가 살지 않는 방어진"을
지나 "둥근 맨발로 걸어 탑 속으로" 숨어든다.

1부의 "감은사지" 연작은 그가 꿈꾸는 그리움의 끝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암시한다.

"내 사랑은 저기 저 따뜻한 돌 속의 신라여인/오늘 밤 내가 탑 속으로
돌아간다"거나 "한 남자의 죽음이 한 여자를 거둘 때/감은사 쌍탑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보았다/삶과 죽음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보았다"는
구절은 회귀와 합일의 무애사상을 보여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