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이라는 대해에서 이파도 저파도에 몸을 맡기고 끝없는 항해를
주도해야하는 기함의 함장들이다.
언뜻보면 훈장달린 제복에 우렁차게 함포사격을 명령하는 화려한 사람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끝없는 전쟁으로 "상처뿐인 영광"을 안고
살아가는 금융인들이다.
자기자본규모면에서는 은행보다 작지만 보험 종금 단자사와는 비교가
안될만큼 덩치가 큰 금융기관이 증권사다.
하지만 여신의 칼을 휘두르는 여타 금융기관장들과는 달리 증권사사장들은
어디가서 큰기침 한번 못하는게 현실이다.
소형증권사 K모사장처럼 급전이 필요할때면 단자사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단기자금을 융통해와야 하는 신세다.
결산때면 오너의 눈치를 봐야하고 임기만료가 다가오면 올수록 식욕이
줄어드는 사람들이다.
주식시장이 침체할수록 부하직원을 채찍질해야 하는 모진 인생살이를
감내해내야 하고 창구사고라도 날라치면 알아서 옷벗을 각오를 해야한다.
23년동안 증권사사장을 지내온 한진투자증권 송영균사장은 예나 지금이나
사장실을 찾아와 머뭇거리는 부서장들이 가장 싫다고 말한다.
혹시 창구사고를 보고하려는게 아닌가 해서다.
멀게는 78년 대신증권 양재봉사장(현회장)이 전대미문의 박황사건으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했던 일화에서부터 최근들어서도 창구사고를
낸 S증권의 모사장처럼 감독기관을 찾아다니며 손이 발이 되도록 선처를
부탁해야하는 사람들이다.
출근길 승용차에서 신문을 뒤적이며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 보지만 묘안이 마음처럼 그때그때 떠올라 주는것도 아니다.
그저 시장이 살아나 흥겹게 올라가는 대세에 몸을 맡겨봤으면 하고 빌어볼
뿐이다.
분기에 한번씩 열리는 지점장전체회의.
지원은 시원치않으면서 약정을 많이 해오길 바라는 몰염치를 지점장들이
따지고들면 어쩔수 없지않냐며 너털웃음으로 받아넘길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한다.
마음속으로야 소속감이 부족한 억센 직원들의 푸념이 섭섭할 때도 있다.
그래도 내직원이 제일 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퇴근길에는 법인영업의 측면지원을 위해 억지미소로 쓴 술잔을 기울여야
하고 휴일이면 인수부의 지원요청에 따라 고객사 임원들과 골프장을 찾아야
한다.
증권산업의 발전과 함께 증권사사장의 위상이 높아진것 또한 사실이다.
명동거래소 한구석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 10여명의 종업원과 일했던
구멍가게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우뚝솟은 여의도사옥에 많게는 2천
7백명 적게는 3백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수장이됐다.
80년대 중반 제주도 사장단 단체여행중 고성방가를 즐기다 사정기관에
끌려갔다 돌아와서는 다시한번 뭉쳐 모내기를 하러갔던 웃지못할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엿한 금융기관장으로 대통령의 유럽순방단에 떳떳이
오르는 인사까지 배출하게 됐다.
출신과 경험이 다양하기에 역할과 평가 또한 판이하게 다르다.
양재봉 송영균 명호근사장처럼 영업도 잘하고 펀드매니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배창모사장처럼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어느자리에서건 제목소리를 챙기는 사장과 김창희사장처럼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 사람도 있다.
물론 "대과"없이 임기를 마치고 자리를 옮겨앉길 원하는 무소신사장도
적지 않다.
자신은 뒷전에 물러앉아 채찍만 휘두르고 책임은 지지않는 몰염치 사장도
있다.
구정물에 손대는것은 밑에것들의 일이고 고매한 자신은 독서와 난치는
재미로 하루를 채워가는 사람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가 있고 관이나 은행에서 경험을 쌓은이도
있다.
출신성분이야 어떻든 모두다 자기나름대로의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자본
시장의 조화를 창조해가는 지휘자들이며 좋든 싫든 변신을 추구해야 하는
고달픈 창조자들이다.
<이익원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