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다.
80년대말까지 30년간 의류외길을 걸어오다 88년 이후 내수시장에 본격적으
로 뛰어들고 다각화에 착수, 중견그룹으로 성장해왔다.
업계에서는 90년대 초반 "제2창업"을 선언하며 나선 삼도물산이 결국 법정
관리라는 최후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로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과도한 해외투자를 들고있다.
88년 창업주 김만중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형제간 경영권분쟁으로
2세경영체제확립이 늦어진 것도 중요한 이유로 거론되고있다.
이 회사는 80년대말 이후 삼도기전 삼도화학 동해터미널등을 차례로 인수하
고 풍무엔지니어링을 설립하는등 자동차부품 염료 운송 건설등 사업에 진출
해 본격적인 다각화를 실시했다.
해외에도 눈을 돌려 괌에 호텔을 세웠고 인도네시아등지에 4곳의 현지생산
공장을 두었다.
그러나 내수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규사업들이 뚜렷한 영업성과를 거두
지 못해 다각화가 실패할 조짐을 보였고,수출부진으로 고전하던 삼도물산은
지난해 대표적 상표인 미국의 "써지오 바렌테"와 결별하는등 어려움을 겪었
다.
해외에서도 인도네시아 현지법인 PT삼도네시아 한곳에서만 약 50억원의 투
자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90년대 들어 계속된 형제간 경영권분쟁으로 회사분위기는 어수선해졌
고 이에 따라 기존인력의 유출이 많아 회사 조직관리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
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의 가능성을 높게본 후발 의류업체들의 과열 스카웃도
삼도물산의 경영환경을 어렵게하는데 일조를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도한 금융비용부담에 따라 삼도물산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며 이 사례가 "내수의류시장이 포화상태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