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이호철씨가 "문인간첩단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한 체험을 담은 "문"
(문학세계간)을 내놓았고,한승원씨는 고향상실과 사랑의 의미를 탐색한
"까마"(문학동네간),양선규씨는 검도를 소재로 한 "칼과 그림자"(지식공
작소간)를 펴냈다.
3편 모두 문단에서 역량과 수준을 인정받는 작가들의 작품인 데다가
각기 특이한 체험과 소재를 글쓰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술,관심을
끌고 있다.
이호철씨의 "문"은 74년 이씨가 보안사로 연행된 뒤 10개월간의 수감생
활끝에 집행유예로 석방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등장인물은 실제와
이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누가 누구인지 금방 알수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은 북쪽출신의 소설가로 혼자 월남,아내와 딸 하나를 둔 가장.민
주화운동에 참여하던 그가 심문을 당한 끝에 간첩혐의를 뒤집어쓴채 독방
에 갇힌다.
그는 그러나 어이없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한 현실을 맞아 계속 "혼자 빙
긋이" 웃는다.
이 웃음은 그를 떠받치는 끈질긴 낙관주의인 동시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제목에서 상징하듯 "문"에 대한 인식은 닫힌 공간으로부터 열린
세계로 나아가는 경계인 셈인데 작가는 이를 통해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적 이분법을 고발한다.
남쪽의 흑백논리와 함께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남파간첩 강씨의 눈을
빌어 북쪽이 갖고있는 한계도 보여준다.
작가는 자기반성의 통과의례를 거쳐 여러겹의 문을 열고 궁극적으로는
남북의 상호대립이 만들어낸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잇다.
한승원씨의 장편 "까마"는 수몰로 인한 고향상실과 정신적 황폐를
그리면서 사랑의 힘으로 새로운 "고향짓기"를 시도하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소설가 선우용과 26살의 재수생 송영선,그녀의 첫사랑이었던 지이남등
세사람이 중심인물. "모든 겨울새는 악령"이라고 생각하며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잃고 무력감에 빠져있던 선우용에게 앳된 얼굴의 송영선이
찾아든다.
그는 그녀로 인해 삶의 활기를 되찾지만 정작 그녀의 관심은 선우용의
호주머니에 있다.
그녀가 몸을 던져 돈을 얻는 것은 병든 아내와 딸이 있는 지이남에
대한 순정 때문. 이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와 욕망의 뿌리는 고향상실이라는
깊은 상처에 닿아있다.
그래서 이들은 사랑으로 치유받기를 갈망한다.
육욕의 차원을 넘어 인간애로 발전하는 선우용과 "희망의 거처"를
찾아 열정을 불태우는 두사람을 통해 작가는 영혼의 안식과 진정한
사랑의 교본을 제시하려 한다.
제목 "까마"는 인도신화속 사랑의 신을 뜻한다.
양선규씨의 "칼과 그림자"는 그간 중.단편에 주력해온 작가가 등단후
12년만에 처음 선보이는 장편. 자호라는 이름의 "작가의 그림자"가
1백일동안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30여편으로 구성돼 있다.
검도에 입문하는 초심자의 수련과정을 통해 깨달음의 정신세계에
이르는 여정을 묘사하고 있다.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