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이기한 < 산업2부장 > ]]]

신호그룹 이순국회장(52).

이회장만큼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기업인도 드물 것이다.

''기업인수의 귀재'' ''황금의 손을 가진 마이더스'' ''기업사냥꾼'' ''무소유의
실천자'' 등 참으로 다양하다.

곱상한 얼굴에 160cm 55kg의 작은 체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다.

그러나 업계에 화제를 뿌리고 있는 그의 이같은 별명들은 엄청난 추진력
에서 나온 것들이다.

최근 상장완구업체인 도신산업을 또다시 인수하면서 그에 대한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월급쟁이에서 기업가로 변신한지 올해로 18년.

그는 이제 상장기업 6개를 포함해 20개의 기업을 거느린 중견그룹의
총수로 발돋움했다.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이회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영동사거리 논현빌딩 6층에 있는 사무실은 연간 외형 1조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중견그룹 총수의 사무실로서는 너무 초라했다.

3평정도의 공간에 비서는 여직원1명 뿐이다.

그나마 세들어 있는 것이다.

-세간엔 회장님에 대해 상반된 시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10개의 기업을 인수한 것을 두고 기업사냥꾼이라든지 TK출신이기
때문에 역대로 많은 특혜를 받았을 것이라는등 부정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반면에 죽어가는 기업을 살리는 탁월한 경영인, 모범적인 기업가라는
좋은 평가도 있습니다.

"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자리에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은 제가 인수한 업체들은 거의가
남들이 인수하기 꺼리는 부실기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에 인수한 온양팔프 대화제지 일성제지를 비롯해 연초에
인수한 도신산업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은 너무나 어려운 기업이었다는
점이지요.

상당수가 이미 부도를 냈거나 부도직전의 상황에서 제가 경영을 맡게 된
것입니다.

만일 제가 인수하지 않았다면 공중분해됐을 업체도 있습니다. 기업 하나가
부도를 내면 경영인은 말할 것도 없고 종업원 거래처 이들의 가족등 모두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업을 인수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기업도 생명체인 만큼 죽여서는 안된다는 신념에서 기업을 살리기
위해 적극 나섰다는 설명이다.

이회장은 기업인수와 회생과정에서 자신의 출신인 경북중 경북대사대부고
서울대상대인맥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선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당하게 이자를 주고 자금을 끌어 쓰는 것도 특혜냐고 반문한다.

또 일부 대기업들이 알짜배기 기업을 인수하려고 엄청난 자금을 동원해
싸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기업인수를 위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는 물음에 이회장은 죽어가는
기업을 인수하는 데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부채를 떠안을 경우 실제 몇억원선에서도 인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돈은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 마련할 수도 있고 나중에 기업을 정상화시켜
갚을 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인수자금이 아니라 어떻게 회생시키느냐가 중요하며 우선 운전자금
을 비롯한 자금융통이 급선무인데 다행히 그는 이분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회장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단히 높은 신용도를 유지하고 있다.

부실기업을 살려내는 귀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인정한다.

따라서 기업 자체보다는 "인간 이순국"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사례가
많다.

필요하면 이회장은 자택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한다.

작년에 한국강관을 인수할때도 흑석동 한강현대아파트 자택을 은행에
담보로 내놓았었다.

그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기업을 인수할때도 금융을 철저히 활용한다.

지난해 독일의 드레스덴 파피에르사나 로젠탈펄프를 인수한 것도 현지금융
기관및 캐나다투자업체를 활용해서였다.

기업인수와 관련해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어떤 루트로 기업인수에
관한 정보를 얻고 이를 실행에 옮기느냐는 점이다.

이부분에 관해 그는 은행의 권유로 인수하거나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을 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도신산업은 고등학교 후배가 경영하던 회사여서 그로부터 직접
인수요청을 받았고 한국강관은 해당기업의 임원과 은행으로부터 동시에
권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도 그는 금융기관으로부터 여러개 업체의 인수를 권유받고 있다고
귀띔한다.

또 그는 기업인수에 대해 직관적으로 결정한다.

결정속도는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해당기업을 대부분 한번 방문한 자리에서 인수를 결정한다.

임직원이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나중에 결심을 하는게 아니라 우선 자신이
인수를 결정해 놓고 임직원에게 세부추진사항을 맡기는 스타일이다.

작년초 한국강관인수때도 오너이던 윤상준회장을 한번 만난 자리에서
결정했다.

때문에 신호그룹 고위 임원들조차 언제 자기그룹이 어떤 회사를 인수하는지
모를때가 태반이다.

-부도를 낸 기업을 살려내는 데는 금융지원만으론 안될텐데요. 어떤 식으로
기업살리기에 나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임직원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 기업의 임직원은 대부분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고 자신의 신분에
대해 매우 불안해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을 할수가 없어요. 임직원 스스로 1백%이상의 능력을
발휘토록 하려면 무엇보다 이들과 담을 허무는게 중요합니다"

이회장은 기업인수후 임직원들과 사우나를 하거나 노래방을 찾는 일이
많다.

원래 스타일이 권위주의하고는 거리가 먼데다 이같은 어울림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가장 좋다고 판단해서이다.

기업을 살리려면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일하게끔 만든다.

해당기업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낭비를 줄이려면 무엇을 해야하며 어떻게
수익성을 올릴지에 대해 그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당장 필요치 않은 부동산은 과감하게 처분하는등 낭비요소는 줄이고
이를 체질화하도록 임직원에게 주지시킨다.

-오는 2000년 신호그룹을 매출 7조원, 재계랭킹 30위안에 드는 그룹으로
육성한다는 복안으로 "신호비전 2000"이란 중장기경영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업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임직원들이 그 비전을 향해 뛰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지를 중심으로 하고 부대사업으로 건설 금융 무역 철강
사업등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는 제지비중을 40% 이하로 낮추고 철강 금융등 나머지 부분의 비중을
높여나갈 생각입니다"

신호그룹은 지난해 그룹외형 8천억원, 올해 목표 1조3천억원을 잡고 있으며
내년엔 2조원 돌파를 계획하는등 야심에 차있다.

또 그동안 인수했거나 설립한 기업들이 국내외 경기회복으로 빠른 매출
신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한국강관은 3월초 대불공단의 대구경강관공장이 완공되면 그동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발판을 마련하면서 매출신장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가 드문 종업원집단지주제를 추진중이시죠.

"기업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같은 신념에서 저는
제가 갖고 있는 모든 주식을 내놓기로 한 것입니다.

종업원이 공동으로 주식을 관리해 그야말로 종업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이미 80년대말 홍익재단을 만들어 주식을 출연하기 시작했지요. 오는
2000년에 저의 주식 모두를 종업원에게 넘긴다는 구상으로 작업을 추진중
입니다.

개념은 종업원이 공동으로 주식을 관리해 각자가 내회사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종업원지주제와 다른 점은 개인소유가 아니라 집단소유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작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몇가지 어려움에 봉착했어요. 우선
종업원들의 이해부족입니다.

개인소유가 아니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을 하는 직원이 의외로
많더군요.

결국 내것이어야 마음대로 팔아먹을수 있다는 욕심이지요. 또하나는
그동안 "개인 이순국"을 보고 여러가지로 협조해준 금융기관 투자자 거래처
등 이해관계자들이 불안해하지 않을까하는 점입니다.

아직 국내외에서 이런 선례를 찾지 못해 제도를 정착시키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회장이 무소유를 생각하는 것은 독실한 불교신자인데다 몇년전 끔찍이도
사랑하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데서 비롯된다는게 주위사람들의 해석
이다.

외동딸은 금속공예를 전공한뒤 도미, 화가와 결혼해 살고 있다.

따라서 재산상속을 위해 돈을 모으기 보다는 죽어가는 기업을 살리는게
자신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들이 맛보지 못하는 기쁨을 만끽한다고 토로한다.

이회장은 4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너무 가난하게 자라 학창시절 수업준비물을 사지
못해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맞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또 빨리 사회에 진출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중학교 2학년을
중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한국제지에 입사해 종이와 인연을 맺은 그는 77년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중이던 온양팔프를 맡아 35세부터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
했다.

지금 거느린 회사는 온양팔프 신호제지등 제지업체 7개사와 온양상호신용
금고 신호종합개발 신호테크등 금융 건설 전자 철강분야의 8개사,
신호타일랜드 신호캐나다등 해외법인 5개사등 모두 20개사이다.

우방그룹 이순목회장은 그의 친형이다.

이회장은 앞으로도 꼭 살려내야할 기업이 나타나면 서슴없이 인수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 정리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