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텔레비젼 광고속에나 있다". 80년대의 대표적 시인인 황지우씨의
시중 한 구절이다. 50-60년대에 젊음을 보낸 이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행복은 헐리우드 영화속에나 있다".

전쟁이 남기고 간 폐허의 누추함속에서 헐리우드영화는 이들에게 있어
어쩌면 유일한 현실의 도피처요 환상으로의 진입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아픔을 삭여주는 아편이 궁극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생명을 앗아
가버리듯 환상에 무작정 몰두하면 크게 잃는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안정효씨의 원작소설을 영상화한 정지영감독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바로 이점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열악한 상황을 잠깐이나마 잊게했던
할리우드영화로 인해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빼앗겨버린 것은 무엇인가"를
이 영화는 묻고 있다.

미군 G.I.와 어울리며 삼류쇼단에서 무희노릇을 하는 누나와 함께 사는
임병석. 그는 1백여편이 넘는 영화제목으로 하나의 문장을 만들 정도의
영화광이다.

"헐리우드 키드"는 그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반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병석과 친구들은 "황야의 7인"이라는 일종의 영화서클을 만들고 기상천외
한 영화 훔쳐보기 순례를 벌인다.

윤명길은 병석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또한 라이벌이기도 하다. 병석으로
인해 영화에 눈뜨게 된 그는 병석에 대한 이중감정을 지닌 채 고교시절을
보낸다.

군제대후 충무로의 2류감독으로 활동하던 명길은 우연히 한 시골마을에서
병석을 만나지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병석은 반폐인처럼 생활하다가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는 병석은 자신이 써놓은 시나리오
를 명길에게 건네주며 제작을 부탁한다. 영화의 대성공으로 명길은 일약
대감독으로 떠오르고 세인의 관심은 시나리오작가 병석에 쏠리지만 영화의
허상은 명길에 의해 벗겨지고 만다.

병석이 쓴 시나리오의 모든 대사는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 봤던 헐리우드
영화속의 대사들을 온통 콜라쥬한 것이었다. 헐리우드영화로 상징되는
미국의 문화가 우리의 독창성과 창의력마저 빼앗아갔다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영화"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병석과 명길의 학창시절 묘사에
지나치게 많은 필름을 낭비한 탓으로 그 흐름이 다소 난삽해진 감이
없지 않다.

최민수(임병석)와 독고영재(윤명길)의 캐스팅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세상 제작, 30일 대한극장 개봉)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