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는 해방이후 46년여를 모순적 구조속에서 이어져 왔다.
일제 36년이란 구원이 감정적 밑바탕을 이루면서 현실적으로는
미소 양극체제의 미국측 진영에서 한일은 정치 경제적 협력을 긴밀히 해온
것이다. 내면적 갈등과 외면적 결속이라는 중치구조를 식민피지배기간보다
더 긴 반세기가깝게 지속해온 셈이다.
이러는 사이에 91년을 고비로 기존의 세계질서는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소연방의 붕괴로 미소양극체제가 무너졌다. 구원에도 불구하고 한일을
한편으로 묶었던 끈이 풀린 셈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관으로
내달 26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두만강개발회의에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연방 몽골등이 참여하는등 이제는 피아가 없는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이 전개되고 있다.
이같은 전환기에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총리는 취임후 첫 해외나들이로
16일 한국땅을 밟는다. 서울회담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신대
문제와 같은 역사청산의 문제,무역역조 해소를 위한 경제문제,태평양시대
및 세계질서에 대한 협력문제등이다. 일본으로서는 미야자와총리의 첫
방문국이 한국이라는 점에서 아시아외교 중시라는 측면을 내세운다.
한국으로서는 대일무역역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해외파병논의가 분분한 때이며 공교롭게도 올해가
임진왜란 4백 주년이라는 점에서 경계감이 없을수 없다.
바로 1년전 1월10일 노태우 대통령과 당시의 가이후 일본총리가
합의한 한일관계 기본 3원칙을 새삼 상기해본다. 그것은 양국의 진정한
동반관계 구축을 위한 교류협력과 상호이해증진 아태지역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공동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강화 범세계적 제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여증대였다. 그런데 지난 1년동안 그같은 원칙에 입각한 노력과
성과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일본에 대한
우려와 마찰이 증폭되었다. 그래서 미리부터 이번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망설이게 되는 것이며 그럴수록 이번 회담이 더욱 진지하게 문제해결에
접근하기를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우선 역사청산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제도 중요하지만 양국간에
정신적 갈등구조를 깨끗이 해소하지 않는 한 경제협력도 표리가 부동할수
밖에 없다. 정신대문제만해도 일본정부가 진상을 더 잘 알터인데
정부차원의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다가 확고한 문서가 나오자 정말
처음알았다는 듯이 시인하지 않았는가. 일본의 각급학교 교과서의
한일관계 역사왜곡을 왜 방치하고 있는가.
독일은 전후에 솔직하고 철저하게 나치만행을 반성하여 적대국이었던
프랑스와 사이좋게 EC통합시대를 열고 있다. 미국도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당시 일개 미국인을 강제수용한 과오를 분명하게 청산했다.
무려 7백50명의 증언을 듣는 공청회를 열어 강제수용이 인종적 편견
이었으며 전시히스테리였고 정치가의 태만의 산물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일개인에게 1인당 1만2천달러씩 보상했으며 캐나다까지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세계일등국이 된 일본은 왜 "통석"표현에 머무르며
잘못 시인에 그다지도 인색한가.
양국간의 무역역조와 기술이전문제도 일본의 적극적 성의만 있다면 크게
개선시킬수 있다고 본다. 일본은 자유무역 시장원리 민간차원등 그럴듯한
구실을 붙이지만 그들의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을 생각하면 변명성이 더
짙다. 통산성이나 대장성의 지도로 거대한 호송선단처럼 경제를 운용하는
나라에서 정부가 마음 먹으면 못할일이 없다. 얼마전 부시미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관리무역처럼 미자동차부품을 대량 사주기로 한것이 좋은
예다. 한국은 미국처럼 압력을 넣을 보복력이 없는 처지이니 한일역조
문제를 계속 어물쩡 넘어가려한다면 일본은 강한 나라엔 약하고
약한나라엔 강하다는 비굴함을 스스로 드러내는것이다.
첨단기술이전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되었으면 이제는 그것을 세계
공공재로 쓸수있게 기여하는것이 의무다. 영국과 미국은 그랬다.
우리는 진정한 한일선린관계를 원한다. 물론 한국측의 잘못도 있다.
개별적으로는 일본을 예찬하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공개적 명분상으로는
배일태도를 드러내는 수가 많다. 그러나 모든면에서 유리한 일측이 선뜻
역사 청산에 대담솔직하게 앞장선다면 한국인도 더이상은 옛상처를
파헤치지 않을것이다.
새까만 처지에 자존심만 세우고 대든다고 멸시만 하지말고 대국답게
일본은 아량을 보이기 바란다. 어차피 멀리 이사할수 없는 이웃인
바에야 비슷하게 잘살며 사이가 좋아야 서로가 이롭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