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면 톱 > 수도권 택지개발, 지역별 보상비 차이커 반발
꼭 45년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버섯구름이 인류사에
던진 그림자는 짙고도 길다.
그 무참한 집단적 죽음에 대한 공포는 대국의 패권주의를 냉전의 형태로
변형시켜 3차대전의 발발은 지연시켰지만 반면에 그 한계의 틈바구니를
비집는 국지전의 빈발은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양면성을 제공했다.
두 초대국이 대량살상 무기개발의 무한경쟁에 말려들어 국력을 소모한 끝에
미국은 월남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력의 무력"을 통감하고 역사상
드문 패자간의화해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핵공포가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 상황속에서 비렁뱅이가 되었어야 할 2차대전의 패전국들이 세계 최고의
부를 향수하는 오늘날의 해학은 남 좋은일 시킨 승전대국들로 하여금 신고립
주의의 매력에 빠져들도록 고무하고 있다.
지구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양극화 대립상태는 단 5년을 넘지 않는 사이에
급격히 와해되어 이제 다양성/자유/경제번영/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대소국
들이 각개약진하고 있다.
그 결과 40여년의 질곡과 무력균형의 나사가 채 풀리기도 전에 세계질서는
대혼란의 조짐을 잉태하고 있다.
다양화는 질서아래서만 아름답다.
인류가 다양화에 이르려면 가령 세계판도의 3분각정립, 5각균형등 새로운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모색되려는 초입에서 모든 대소집단들은
집단이기주의의 유혹에 급격히 빠져들고 있다.
사담 후세인의 모습은 중동의 현대판 히틀러라 표현된다.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내세우는 심리전술뿐 아니라 단시간에 군사행동을
끝내는 기계화부대의 전격전술까지 모방했다.
불가침조약으로 스탈린을 안심시킨 사이 폴란드를 치는 양동전략도 닮으려
하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우리 자신의 발등에 불이다.
지금 한소수교가 익어가고 있고 언필칭 남북간의 대화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북의 앞뒤정황으로 보아 안심할 수 없다.
안심이 아니라 북한이 처한 입장은 후세인의 이라크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은 것이 없다.
무엇보다 도도히 흘러들어오는 자유화의 물결을 막을 논리적 근거가
그들에겐 박약하다.
그렇다고 그 물결을 터놓으려면 반세기에 걸친 칠권압제 세력으로서
루마니아의 최후를 따를 각오가 없인 불가능하다.
소-중-미등의 우회적 압력도 여기선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역작용의
가능성이 높다.
만일 퇴로를 끊은채 외부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다고 할때 이판사판, 앞으로
나설수 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미-소의 태도다.
이라크의 도발에 대하여 다행히 현재까지는 세계의 대세력들이 성명과
서신, 경제봉쇄로 보조를 맞추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계산에 넣은 것이 후세인이다.
외국인을 인질로 하면 무력저지만은 발동치 못하리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그는 인질작전에 취약한 미국의 약점을 십분 활용하려 노리고 있다.
양극체제가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우선 소련이 이제와서 U턴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찌 되겠는가.
상상만해도 암담하다.
새로운 세계질서가 자리를 잡을때까지 두 슈퍼파워의 힘은 공백을 남기지
말고 도덕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부채이기도 하다.
가령 미-소-EC-일-중의 5극체제가 정착하고 그 다음 국제연합(UN)이 진정한
세계의 합의체 권력기구로 힘을 발휘할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편에서 백척간두를 향해 치닫는 화전야면의 접근로에
서 있다.
쌍방의 깊은 생각과 침착한 몸가짐이 민족을 위해 아쉬운 때이다.
던진 그림자는 짙고도 길다.
그 무참한 집단적 죽음에 대한 공포는 대국의 패권주의를 냉전의 형태로
변형시켜 3차대전의 발발은 지연시켰지만 반면에 그 한계의 틈바구니를
비집는 국지전의 빈발은 방치할 수 밖에 없는 양면성을 제공했다.
두 초대국이 대량살상 무기개발의 무한경쟁에 말려들어 국력을 소모한 끝에
미국은 월남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력의 무력"을 통감하고 역사상
드문 패자간의화해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핵공포가 그 배경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 상황속에서 비렁뱅이가 되었어야 할 2차대전의 패전국들이 세계 최고의
부를 향수하는 오늘날의 해학은 남 좋은일 시킨 승전대국들로 하여금 신고립
주의의 매력에 빠져들도록 고무하고 있다.
지구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양극화 대립상태는 단 5년을 넘지 않는 사이에
급격히 와해되어 이제 다양성/자유/경제번영/민주화의 기치를 내걸고 대소국
들이 각개약진하고 있다.
그 결과 40여년의 질곡과 무력균형의 나사가 채 풀리기도 전에 세계질서는
대혼란의 조짐을 잉태하고 있다.
다양화는 질서아래서만 아름답다.
인류가 다양화에 이르려면 가령 세계판도의 3분각정립, 5각균형등 새로운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모색되려는 초입에서 모든 대소집단들은
집단이기주의의 유혹에 급격히 빠져들고 있다.
사담 후세인의 모습은 중동의 현대판 히틀러라 표현된다.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내세우는 심리전술뿐 아니라 단시간에 군사행동을
끝내는 기계화부대의 전격전술까지 모방했다.
불가침조약으로 스탈린을 안심시킨 사이 폴란드를 치는 양동전략도 닮으려
하고 있다.
더 큰 걱정은 우리 자신의 발등에 불이다.
지금 한소수교가 익어가고 있고 언필칭 남북간의 대화도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북의 앞뒤정황으로 보아 안심할 수 없다.
안심이 아니라 북한이 처한 입장은 후세인의 이라크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은 것이 없다.
무엇보다 도도히 흘러들어오는 자유화의 물결을 막을 논리적 근거가
그들에겐 박약하다.
그렇다고 그 물결을 터놓으려면 반세기에 걸친 칠권압제 세력으로서
루마니아의 최후를 따를 각오가 없인 불가능하다.
소-중-미등의 우회적 압력도 여기선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오히려 역작용의
가능성이 높다.
만일 퇴로를 끊은채 외부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다고 할때 이판사판, 앞으로
나설수 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미-소의 태도다.
이라크의 도발에 대하여 다행히 현재까지는 세계의 대세력들이 성명과
서신, 경제봉쇄로 보조를 맞추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계산에 넣은 것이 후세인이다.
외국인을 인질로 하면 무력저지만은 발동치 못하리라는 배수진까지 치고
있다.
그는 인질작전에 취약한 미국의 약점을 십분 활용하려 노리고 있다.
양극체제가 정의는 아니다.
그러나 우선 소련이 이제와서 U턴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찌 되겠는가.
상상만해도 암담하다.
새로운 세계질서가 자리를 잡을때까지 두 슈퍼파워의 힘은 공백을 남기지
말고 도덕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부채이기도 하다.
가령 미-소-EC-일-중의 5극체제가 정착하고 그 다음 국제연합(UN)이 진정한
세계의 합의체 권력기구로 힘을 발휘할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야 한다.
한반도의 운명은 한편에서 백척간두를 향해 치닫는 화전야면의 접근로에
서 있다.
쌍방의 깊은 생각과 침착한 몸가짐이 민족을 위해 아쉬운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