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과 자연을 한눈에’…임대료는 서촌보다 저렴
비탈길 따라 개성 있는 카페·갤러리, 2011~2013년 열풍 이후 안정기

부암동의 밤 풍경. /이승재 기자
부암동의 밤 풍경. /이승재 기자
소위 잘나가는 상권의 첫 번째 조건은 편리한 교통이다. 그런데 이곳은 찾아가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도보 30분 이내에 지하철역이 없어 버스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걷기에도 힘든 골목길로 얽혀 있지만, 이곳에 오면 ‘예술과 멋, 자연’을 한 번에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풍류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 서울미술관 면세점, 중국인 '북적'

부암동 상권의 시작은 약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까지 북악산을 낀 조용한 주택가였던 부암동이 느닷없이(?) 화제가 됐다. 지난 2007년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촬영 장소로 호기심에 부암동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 중심에 있던 곳이 부암동 오르막길 가장 끝에 위치한 카페 ‘산모퉁이’다. 드라마 속 이선균의 집으로 등장한 이 카페는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떠올랐다.

드라마에 대한 열기는 금방 식었지만 부암동 상권에 대한 관심은 꽤 오래 지속됐다. 한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부암동을 다시 찾아오면서, 지금은 소박한 규모이지만 꾸준히 사랑받는 상권으로 자리를 굳힌지 오래다.

종로구에 위치한 부암동은 광화문과 같은 도심 중심지와 매우 가깝다.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향해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도보로 10여분 정도 걸린다. 그만큼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도심을 벗어난 듯한’ 청량감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골목골목 새로운 개성을 갖춘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들도 상당히 많다.

이곳의 대표 스타 가게들은 두산인프라코어 박용만 회장이 즐겨 찾는다는 서울 3대 치킨맛집 ‘계열사치킨’을 비롯해 부암동빙수(‘부빙’), 국내 유일한 젓가락 갤러리인 ‘저집’ 등을 들 수 있다.
북악산을 끼고 있는 부암동 골목길에는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이승재 기자
북악산을 끼고 있는 부암동 골목길에는 주택을 개조한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이승재 기자
그중에서도 2012년 서울미술관과 윤동주문학관의 개관은 부암동에 또 다른 색깔을 덧입히는 계기가 됐다. 20여년간 부암동에서 자리를 지킨 환기미술관과 더불어 예술과 문학적인 감성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전부터 크고 작은 미술관이나 사진, 예술 작품 갤러리들이 많았던 부암동이라는 동네에 ‘예술적 색채’가 한층 짙어진 셈이다.

서울미술관 지하에 면세점이 들어서면서 중국관광객의 방문이 부쩍 늘어나긴 했지만, 이들의 경우 부암동 상권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 대부분 면세점 방문을 마친 후 버스를 타고 떠나가는 일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에는 개인 자유여행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부암동 상권으로 유입되는 중국인 관광객 수도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다.

인왕 부동산중계소 관계자는 “부암동 열풍이 가장 뜨거웠을 때는 2011~2013년 무렵이다”며 “매출도 그때가 가장 높았다”고 말한다. 이후 부암동은 느리지만 꾸준히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상권 내 가게들의 매출은 그 당시와 비교해 소폭 떨어졌지만, 오히려 고객층을 다양화하고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등 상권의 기반을 더욱 탄탄하게 구축했다.

카페 산모퉁이 관계자는 “상권 초창기만 하더라도 고객들 대부분이 드라마 때문에 방문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드라마 촬영지 분위기를 많이 살렸다”며 “지금은 상권의 분위기에 따라 카페 내부의 분위기도 조금씩 바꿨다”고 설명했다.

도심과 자연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다양한 예술작품과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구성된 공간이라는 장점을 살리고자 했다. 현재 산모퉁이 카페에만 하더라도 하루 평균 200명 이상의 손님이 방문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부터 가족단위 관광객, 직장인, 미팅족, 데이트족 등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

부암동 상권은 흔히 인근에 위치한 삼청동 상권과 비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두 상권은 기본적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삼청동이 관광객을 중심으로 전통미를 느낄 수 있는 상권이라면 부암동은 여전히 북적거림을 피하고 싶을 때 찾아오는 고즈넉하고 외진 상권이다. 늘 유동인구가 끊임없이 흐르고,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박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성격의 상권이 아니란 얘기다.

이곳에서 5년째 운영 중인 금속공방 ‘으낭나무’의 관계자는 “이곳은 성수기는 없지만 비수기는 있는 상권이다”며 “미술관을 잠깐 보러 와서 구경하러 들어오는 뜨내기 손님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쉬운 상권은 아니다”고 말했다.

24시간 사람이 붐비는 상권이 아니기 때문에 가게들 역시 브레이크타임(가게 운영 중 휴식 시간)을 길게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 11시에 가게 문을 열어 오후 3시반까지 운영한 뒤, 휴식을 취하고 다시 5시반쯤 열어 저녁 9시나 10시 정도면 문을 닫는 식이다. 산자락을 끼고 위치해 있어 일단 골목길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골목길 산책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다 보니 날씨도 많이 탄다. 열기가 뜨거운 여름과 한창 쌀쌀해지는 겨울은 비수기고 비가 오는 날도 손님이 뜸해진다. 평일과 주말에도 매출의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평일에는 산책 나온 외부고객은 거의 없고 인근에 거주하는 40~50대 여성들의 모임이 주를 이룬다. 주말에는 미술관이나 데이트를 즐기는 이들을 중심으로 고객이 늘어나는 편이다. 부암동 상권에서 매출 확보를 위한 키워드는 ‘주말, 낮, 봄과 가을’이 남는다는 결론이다.

◆ '나이불문 여성 고객' 공략하라

이처럼 제약 조건이 많음에도 부암동 상권이 이토록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기존의 삼청동이나 서촌 등과 비교해 낮은 임대시세가 한몫을 했다.

인왕 부동산중개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49.5m²(15평)~66m²(20평) 정도의 상가 임대시세는 권리금 7000만~1억원, 보증금 2000만~3000만원, 월세 100만~130만원 수준이다.

2013년까지는 임대시세의 오름세세가 뚜렷했지만 이후에는 큰 변동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삼청동의 경우 동일평수 대로변을 기준으로 했을때 권리금 1억5000~2억원, 보증금 5000~7000만원, 월세 300~350만원 수준이다.

올해 8월 부암동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서촌쿠킹스튜디오 관계자는 “원래는 서촌에 가게를내고 싶었는데 임대시세가 130~150만원 수준으로 높았다”며 “자연친화적인 분위기에 다양한 갤러리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많다는 점에 끌려 임대시세가 조금 더 저렴한 부암동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여느 골목상권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목표를 갖고 ‘찾아오는 상권’이다. 잘 되는 가게는 늘 사람이 바글바글하지만, 그들이 옆 가게로 발길을 옮기지는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더욱이 이미 유명세를 탄 쟁쟁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이 워낙 많은데다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흐르는 지역이 아니다보니, 실제로 부암동 상권에 들어왔다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나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이 상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충성도 높은 단골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암동에 자리를 잡은지 2년 정도 된 소마카페 관계자는 “삼청동에서 5년 넘게 카페를 운영하다 건물주가 바뀌고 지금의 부암동으로 옮겨 왔다”며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뜨내기손님보다는 충성 고객을 잡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소마카페 역시 운영 초반에는 꽤 고생을 했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커피 마니아 등을 단골 고객으로 확보하며 꽤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예술과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부암동 상권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야한 연령대의 여성 고객들이 즐겨 찾는다. /김기남 기자
예술과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부암동 상권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야한 연령대의 여성 고객들이 즐겨 찾는다. /김기남 기자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철저하게 ‘나이불문 여성 고객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이곳을 찾아오는 고객의 대부분이 여성과 남성 커플이거나 여성들끼리의 모임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구매 결정이 ‘여성’에 의해 이뤄지기 때문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분위기,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독특한 액세서리와 레스토랑 메뉴 등을 앞세우는 가게들이 많다.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는 상권인 만큼 객단가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레스토랑의 경우 2인을 기준으로 대략 3만~4만원 정도다.

지중해풍 인테리어를 콘셉트로 하는 카페 밀롱가 관계자는 “여유로운 중년층, 예술인, 골드미스, 외국인 여행자 등 점점 더 다양한 이들이 부암동을 찾아오고 있다”며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보석같은 장소’를 컨셉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함’을 갖추지 않으면 부암동 상권에서 고객들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경비즈니스= 이정흔 기자·김태림·주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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