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사회적 경제기본법’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신계륜 새정치민주연합 사회적경제위원장은 21일 국회에서 열린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에서 “4월 중에는 반드시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신 의원과 만나 법 제정과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적지 않고 일부 시민단체도 반발하고 있어 법 제정 여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 4월23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
☞사회적 경제기본법 제정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야당과 여당 일부는 우리 사회의 약자를 돕기 위해 이 법이 필요하다는 반면 여당 내 다른 의원들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법이 사회주의 색채를 띠고 있으며 자유시장경제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경제민주화 논란이 거셌는데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그 2라운드쯤으로 볼 수 있다. 이 법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길래 이처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일까?

사회적 경제란?

사회적 경제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사회적 가치는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 따뜻한 일자리, 사람과 노동의 가치, 협력과 연대의 가치, 지역공동체의 복원, 그리고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선한 정신과 의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사회적 경제란 ‘경제적 측면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직접적인 생산 및 판매, 높은 수준의 자율성 및 참여와 탈퇴 권한 보유, 구성원들의 실질적인 재정적 결정, 최소한의 임금노동자 고용 등을 강조하고, 사회적 측면에서는 시민들의 주도권에 의해 만들어지고 참여자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해 운용되는 경제’로 규정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 아래 스스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며, 구성원 개개인의 민주적 의사결정에 의해 운용되는 경제’라는 뜻이다.

사회적 경제는 프랑스 경제사상가 샤를 지드(Charles Gide)가 사회적 경제의 세 가지 범주로 기업(기업의 사회적공헌), 결사체(노동조합,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공공규제(사회적입법 등) 등을 언급하며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사회적 경제관을 설치하면서 알려졌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가 관심사로 떠오른 건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한국에서도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 격차가 커지면서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사회 벤처 등이 각광받으면서 대거 생겨났다.

사회적 경제기본법의 내용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경제제도나 경제체제에 사회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사회적 경제조직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이들 조직을 육성·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원내대표)은 67명의 동료 의원과 함께 이미 지난해 4월 사회적 경제기본법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신계륜 의원도 지난해 6월과 10월 사회적 경제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설치해 사회적 기업과 마을기업, 농협, 수협, 신협, 생협, 새마을금고, 산림조합, 중소기업협동조합, 자활기업, 농어업법인단체 등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적경제위원회는 기본계획 수립 및 기금과 예산 운용, 지원 방안 등을 최종 심의·조정하게 된다. 실무적인 일은 사무국이 맡는다. 법안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회적 경제 5개년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기본 계획에 따라 해당 관서장은 1년 단위 시행계획을 세운다. 국가 조직인 사회적경제원을 두고 지역 통합지원센터를 둔다. 정부·지자체 출연금과 민간 기부금으로 사회적경제발전기금을 조성한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총구매금액의 5%를 사회적 경제조직에서 우선 구매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날도 지정해야 한다.

“사회적 경제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진화”

사회적 경제조직이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지역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조직이다. 주식회사가 1주(株) 1표제인 것과 달리 1조합원 1표제로 운영되고 경제적 이윤 추구보다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는 점이 특징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사회적 경제기본법 제정 추진 이유로 “대한민국은 내부로부터 붕괴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복지도, 자유시장경제도 한계에 봉착했다”며 “사회적 경제가 새로운 대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경제란 협력과 연대를 기본 원리로 하는 것”이라며 “국가위원회를 만들고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사회적 경제 책임을 부과하며 전국과 지역에 걸쳐 그물망 같은 조직을 만들어나가자”고 역설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사회적 경제는 복지와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역사적 진화”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협력과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뿐이며 이를 위해선 사회적 경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 체제 뒤엎는 헌법 가치 훼손”

이에 대해 다른 쪽에선 이 법이 우리 사회의 근간과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고 역설한다.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고, 국가의 기본 원리를 자유와 창의에서 협동과 연대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는 게 비판론자들의 얘기다. 이들은 사회적 경제기본법이 지향하는 게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이념과 배치된다며 이 법의 제정은 국회의 법률제정 권한을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스페인이나 에콰도르, 프랑스,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서만 입법화했다”며 “글로벌 보편적 경향은 아니다”고 말했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자생적 질서인 시장 대신 인위적인 자원 배분 방식이 우선된다”며 “정부의 무제한적인 능력을 전제로 한 것으로 ‘치명적 자만’을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현재 64개에 달하는 정부 기금을 통폐합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시점에 또 다른 사회적 기금을 만들어 지원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고 밝혔다.

“사회적 기업은 민간 자율에 맡겨야”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취약 계층의 보호와 복지 안전망 확충, 지역공동체 복원 등 시장경제의 단점을 일부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회적 경제조직이 과연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발전 대안이 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이들을 의무적으로 지원하게 하고 관련 조직까지 만들라고 강제하는 사회적 경제기본법은 시장경제의 단점 보완 수준이 아닌 정부 만능시대와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낳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경제질서를 재조직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한 인위적 사회 개조는 사회주의 몰락의 역사적 경험에서 보듯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눈 먼 정부 돈(세금)을 타내기 위한 광범위한 로비가 판칠 것이고, 정부는 무소불위의 신처럼 군림할 수 있다.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속출해 세금만 낭비하고, 본연의 목적보다는 정치활동에 몰두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대거 출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은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 아래 움직이는 기업(주식회사)이다. 기업들의 치열한 자기혁신 없이 나라 경제가 경쟁력을 갖추긴 힘들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세계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을까? 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민간 스스로에 맡겨두지 않나? 사회적 기업도 혈세를 지원받기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하는 게 대의(大義)에도 맞다. 야당은 물론 여당마저 사회적 경제 육성을 들고 나온 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건 ‘사회적 경제 5개년 계획’이 아니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기업들이 크고 경제가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경제활동의 자유와 자기 책임이라는 시장경제의 대원칙이 무너진다면 희망은 없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