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3일 09:22 자본 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매각주관사가 너무 가혹하게 경쟁을 밀어붙여 얄미웠다. 하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매각자문을 맡기고 싶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첫 단추’인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와 우리파이낸셜, 우리F&I 등 매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한 인수 후보측 관계자가 삼일회계법인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두고 한 말이다. 인수 후보들은 우리금융 증권계열 자회사 매각자문사를 잘 둔 우리금융에 시샘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다. 탁월한 협상력과 난관을 돌파하는 위기관리 능력, 축적된 인수·합병(M&A) 자문 경험 등을 보여준 삼일회계법인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우리금융 증권계열 자회사 매각의 숨은 공로자라는 분석이다.

◆난관 부딪힐 때마다 ‘기본 원칙’에 충실
첫 번째 난관은 지난해 말 매각 본입찰 후 발생했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우리아비바생명보험, 우리금융저축은행 포함)에 대해 1조2000억 원가량 인수 가격을 쓴 NH농협금융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유력한 상태였지만 KB금융이 패키지 중 우리투자증권에 대해서만은 NH농협보다 더 높은 가격을 쓰면서 딜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KB금융은 사외이사들의 간섭으로 패키지 내 우리아비바생명이나 우리금융저축은행 등에 대해선 실사가치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지 못했다. 반면 사외이사의 큰 간섭이 없던 NH농협금융은 실사결과와 별개로 패키지 내 모든 매물들에 골고루 높은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을 써냈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의 일부 사외이사는 헐값 매각 시비나 배임을 우려하며 패키지를 개별 매각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딜이 깨지는 것 아니냐”, “재입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왔다. 이때 삼일회계법인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우리금융지주측과 당초 세운 “패키지로만 매각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킬 것을 고수하면서 딜이 깨질 뻔한 위기를 막았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우리금융 이사회를 설득하기 위한 간담회만 10번 이상 열었다고 한다.

◆'패키지'매각구조 설계로 회수 극대화
삼일회계법인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당초 마이너스 가치를 지닌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금융저축은행의 매각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리금융의 예상에 따라 ‘공적자금 극대화’를 위해 인기 있는 우리투자증권 매물에 함께 파는 패키지 매각구조를 설계했다. 만약 이 원칙이 깨지면 증권은 비싸게 파는 데 성공할 수 있어도 생보사와 저축은행 매각은 불가능해질 수 있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에 대해 ‘배임이 아니다’고 매각주관사를 도와 결국 패키지 매각이 성공했다.

두번째 난관은 우리F&I매각 과정에서 발생했다. 4100억 원대의 입찰가격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대신증권이 예비협상대상자인 IMM 프라이빗에쿼티(PE)보다 500억 원대 가량 높은 가격을 써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승자의 저주’를 우려한 대신증권은 10%가량 깎아달라며, 실사과정에 없었던 해외 부실채권(NPL) 자산도 인수대상에서 빼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일회계법인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흔들리지 않았다. 예비협상대상자인 IMM PE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주장을 펴며 양보를 얻어냈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매각가격을 5.6% 할인해주는 대신 해외NPL은 모두 팔기로 하고 우리F&I를 대신증권에 매각했다.

◆매각가격 시장예상보다 20~30%높여
두 매각자문사가 공적딜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프로그레시브딜(경매호가식 입찰)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프로그레시브딜이란 경쟁이 치열한 M&A에서 입찰 기한을 따로 두지 않고 후보자들과의 개별 가격협상으로 가격이나 조건 경쟁을 일으키는 매각 방식을 말한다. 이 때문에 인수후보자들이 협상 내내 매각주관사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고, 손해배상한도 등 당초 우리금융측이 원하는 매각 조건도 그대로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협상기간도 대폭 단축시켰다.

삼일과 씨티측은 지난해말 우리F&I 본입찰이 끝난 상태에서 일부 인수 후보자들에게만 “24시간이내 가격이나 가격조정 폭을 더 좋게 할 수 있나”라고 프로그레시브 딜을 시도했다. 인수후보자들은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공적딜에 프로그레시브딜을 할 줄 몰랐다며 혀를 내둘렀다. “경쟁 후보가 가격이나 조건을 더 개선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뒤바뀌는 것은 아닌가.” 후보들은 저마다 불안해하며 조건을 수정했고, 가격을 150억 원 가량 더 높이기도 했다.

결국 2000억 원대 후반에서 3000억 원대 초반에 팔릴 것이란 시장의 예상을 깨고 우리F&I는 40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에 팔렸다. 당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에 팔릴 것이란 전망을 뒤엎고 PBR 1.4배의 비싼 값에 팔린 것이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역시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 20%수준으로 팔릴 것이란 예상을 깨고 40%의 프리미엄이 붙어 1조700억 원에 NH농협금융지주에 매각됐다. 우리파이낸셜은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 30%가 붙어 2800억 원에 KB금융지주에 매각됐다. 당초 PBR 1.1배에 매각될 것이란 예상치를 웃도는 PBR 1.4배에 매각된 것이다.

우리금융 분리매각 성공 숨은 공로자 '삼일회계법인, 씨티'
◆박장호, 박대준 리더쉽 빛나
매각주관사의 실무를 이끈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사진)와 박대준 삼일회계법인 전무(사진)의 리더십도 빛났다는 평가다. 경기고 연세대 워싱턴대 MBA를 나온 박장호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크로스보더 딜(국경간거래) 전문가다. 최근 6조원대 초대형딜인 오비맥주 매각자문을 비롯해 하이마트 매각자문, 대우건설 매각자문, C&M매각자문 등 주로 조 단위 대형 매각딜을 자문했다. 삼성의 노바LED인수 자문, 두산의 밥캣인수 자문, 한화의 큐셀인수 자문 등도 맡았다.

경동고 연세대 런던비즈니스스쿨(LBS)을 나온 박대준 전무는 삼일PwC내 기업가치평가(Valuation) 서비스 분야 최고전문가로 매각자문과 실사에 축적된 경험을 갖췄다. 대한통운, 대우정밀 매각자문과 씨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자문을 비롯해 두산의 밥캣인수 실사, 휠라코리아의 타이틀리스트 인수 실사 등을 맡았다. 어피니티, 칼라일, KKR, 퍼미라 등 외국계 PE의 국내기업 인수 실사도 담당하고 있다. 국내 M&A전문 회계사로서는 유일하게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내 외부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