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비행기 라면 사건’이 화제다. 항공기 비즈니스석에 탄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행패를 부리다 결국 목적지에 내리지 못하고 되돌아온 사건이다. 이번 사건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일파만파 알려지자 동종 업계에 있는 승무원들은 ‘신고라도 했으니 부럽다’,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강경하게 대응한 승무원의 입장을 이해하는 분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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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미소 뒤 고통에 시달리는 승무원들이 평소 자신들이 겪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들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이번 사건을 접한 한 승무원은 “그동안 겪은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승무원은 “일이 커질 것을 염려해 대개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 이번엔 적극적으로 대응한 기장이 멋있다”는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하늘 위의 꽃’으로 불리는 승무원들은 겉보기와 달리 기내에서 승객들에게 시달리는 일이 많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당치도 않는 요구를 하는 이른바 ‘블랙 컨슈머’를 1년에 수백 번도 더 겪는다.

승무원들이 말하는 블래 컨슈머의 기내 소란 행위는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승무원에게 반말 및 폭언을 하거나 성희롱을 하는 행위, 개인 신상 정보를 집요하게 물어보거나 부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행위다.

이번 라면 사건과 비슷한 예로 지난 1월 뉴욕발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여승무원 3명을 껴안고 이를 말리던 남승무원에게 주먹을 휘두른 미국인 승객이 착륙 즉시 인천공항경찰대로 넘겨졌다.

그뿐만 아니라 승객이 승무원의 엉덩이나 허리 부위를 노골적으로 만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슴 위로 걸린 승무원의 명찰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면박을 주는 일 역시 허다하다. 승객을 돌보는 여승무원에게 “무서우니까 좀 안아줘! (승무원이 거절하자) 승무원이라면 내 개인적인 얘기도 들어주고 해야 하는 것 아냐? OO항공을 탔을 때도 이것 때문에 불편했어. 태도도 싸가지 없고 말이야”라며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항공 안전을 위협한 사례도 있다.

또 여승무원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며 “왜 OO항공 승무원들은 같이 사진 찍는 걸 꺼리지? (휴대전화에서 타 항공사 승무원과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 병신 취급하는 거야? 병신 취급하는 게 아니면 네 전화번호 가르쳐줘. 오늘 저녁에 나 만날래?”라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였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역시 막무가내로 승무원을 괴롭히며 항공 안전에 위협을 줬다. 박 전 회장은 2007년 12월 부산발 서울행 비즈니스석에 탑승했다. “곧 이륙하니 좌석 등받이를 세워 달라”는 여승무원의 요청을 5차례나 무시하며 되레 여승무원에게 “내가 누군데!”라며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기내 경고 방송도 무시하고 경고장까지 찢어버린 그를 결국 항공사 직원들이 경찰에 넘겼다. 법원에서 그는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화근이었다.

주요 항공사들은 이러한 ‘블랙 컨슈머’의 행태를 의도적인 업무 방해, 부당한 보상 요구, 항공 안전 위협 등 유형별로 관리하고 있다. 기내 난동 승객에게 맞서는 대응 조치는 대한항공의 경우 1단계 설득 및 요청, 2단계 (구두)경고, 3단계 강력 대응하도록 돼 있다. 때에 따라 승객이나 승무원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폭행이 일어날 때 1, 2단계를 생략하고 곧바로 강력 대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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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만져도 ‘생긋’ 소문날까 ‘쉬쉬’

또한 항공 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 있어 이렇게 항공기 안에서 난동을 부리면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절차에 따라 처리되는 사건이 거의 없다. 기내 치안의 책임인 동시에 서비스업 회사의 직원들이기도 한 승무원들이 수모를 감수하고 속으로 삭이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황당한 상황을 모두 ‘웃으면서’ 넘긴다. 승무원은 얼마나 능숙하게 상황을 모면하느냐가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로 평가받는 기이한(?) 직업군이다. 이번 대기업 임원도 승무원 폭행까지 이르지 않고 식사만으로 트집을 잡았다면 별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다.

국토교통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0년부터 2013년 4월 현재(4월 26일)까지 항공기 내 승무원이 승객으로부터 폭행당한 사건이 총 11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해당 승객을 되돌려 보내거나 도착 후 공항경찰대 인계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실제 발생하는 사건 대비 처리된 건수는 미미하다.

한 승무원은 “아무리 정중하게 사과해도 무시 받는 일이 다반사”라며 “되레 ‘무릎 꿇고 사죄해’라는 식으로 나오거나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이도 많다. 우리끼리는 ‘제복만 입으면 죄인’이라고 말한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승객들의 이 같은 반응을 두고 항공사 관계자들은 ‘손님은 무조건 왕’이라는 사고가 문제라고 꼬집는다. 승무원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다 보면 마치 ‘상전’이라도 된 양 승무원을 막 대하고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기도 한다. 네덜란드항공인 KLM 승무원으로 지낸 이선화 씨는 “티켓을 구매하면서 기내에 있는 사람까지 구매한 줄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무엇보다 승객들의 의식 전환이 절실하다”고 쓴소리를 하며 일침을 가했다.

한국 승무원 특유의 ‘과한 친절함’도 때론 논란이 된다. 서비스 직업인 승무원들은 무조건 환하게 웃어야 하며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 고객에게 항공사 이미지를 위해 무릎까지 꿇어야 할 때도 있다. 너무 친절하려고 하는 승무원에게 승객 중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아주 과하고 비상식적인 요구를 하게 된다. 외항기만 타 봐도 이 정도의 과잉 친절은 만나기 어렵다.

이 씨는 “해외에서는 우선적으로 인성을 본다. 팀워크와 의사소통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멀티 태스킹도 좋은 스킬이다. 승무원이 서비스를 하는 사람은 맞지만 서비스가 꼭 무릎을 꿇고 해야만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미소와 서비스, 무엇이든 다 주는 서비스가 아니라 그냥 편안하게 해 주는 서비스를 할 때 많은 손님들이 만족해했다”고 지적했다.

승무원들의 노동환경 개선도 시급해 보인다. 이들의 호소를 가로막는 것은 승객의 불만을 접수받는 컴플레인 레터(complain letter) 제도다. 항공사는 컴플레인 레터가 1년에 두 번 이상 접수되면 해당 승무원을 업무에서 제외해 재교육을 한다. 이는 인사고과에도 반영돼 승무원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내 국적기에 근무 중인 한 승무원은 “승객들에게 욕설이나 협박하는 말을 자주 듣지만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 1년에 두 번 이상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업무에서 제외되고 재교육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고객의 부당한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승무원 개인으로서는 어쨌든 회사에 속해 있는 직원이기 때문에 일이 커지면 뭔가 개인에게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쉬쉬’하고 넘어가는 일이 많고 항공사로서도 이런 일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참자는 주의”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들의 블랙 컨슈머 대응 방침은 승무원 사이에서 도는 ‘블랙리스트’ 명단을 보고 각자 알아서 조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민동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의 ‘힘은 강력하다? 힘, 자신감, 그리고 목표 추구(Is Power powerful? Power, confidence, and goal pursuit)’ 란 논문에서 “기업은 종종 ‘고객은 왕이다’ , 또는 ‘고객은 항상 옳다’ 같은 문구를 사용해 고객이 힘이 있다고 느끼도록 유도하지만 이런 전략은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항상 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 지적했다. 또한 “승객이 승무원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이 상냥한 말투와 행동을 우선시하는 것도 한 요인” 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건 덕분에 국토교통부는 법안 심사소위를 열고 운항 중인 항공기 안에서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는 승객에 최고 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항공안전보안법 개정안’을 재빨리 통과시켰다. 기존 법안에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도 기내 금지 행위에 추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상욱 국토교통부 항공보안과 사무관은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리며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기내 안전을 위한 승무원 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신설해 항공 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 이미지 실추…주가마저 ‘술렁’

잦은 해외 출장으로 비행기 탑승 횟수가 많은 시민 정태영(37) 씨는 “항공 안전과 관련한 법률을 보다 구체적으로 법제화하면 승무원들도 보호 받을 수 있지만 같이 탄 승객으로서 더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는 여러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된 배경에는 사건의 전모를 소상하게 쓴 승무원의 일지가 인터넷에 퍼지게 된 것이 핵심이다. SNS에는 대기업 임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의 행동을 비난하는 글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공론화되면서 결국 그는 법적인 구속 대신 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졌다.

대기업 임원이 다니는 회사의 모기업인 포스코는 이 일로 홍역을 톡톡히 치렀다. ‘비행기에서 진상 부려서 먹는 라면’, ‘포스코 상무님이 끓여 주는 라면이 먹고 싶어요’ 등 사건을 비꼬는 댓글이 계속해 올라오며 온라인을 들끓게 했다. 계열사의 한 임원의 잘못으로 그동안 쌓아 온 포스코의 기업 이미지마저 실추되는 순간이다.

이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전면에 나서 사건에 대해 부끄러움과 반성의 뜻을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4월 23일 운영회의와 신임 임원 특강에서 “기내 폭행 사건은 포스코가 그간 쌓아 온 국민 기업으로서의 좋은 이미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에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남을 배려하고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봐야 한다”며 “나 자신이 먼저 깊이 반성하며 임직원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임원 인사에 인성(人性) 요인을 반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임원 승진에 남을 배려하고 솔선수범하는 것을 포함해 소통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포스코 주식도 술렁이게 했다. 지난 4월 22일 주가가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포스코에너지 임원의 라면 논란에 하락세로 출발한 포스코 주가는 고전 끝에 전 거래일과 같은 32만500원에 장을 마감해 포스코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월 26일 31만6000원에 거래됐다.


승자 없는 싸움의 끝은
피해는 포스코만? 대한항공도 타격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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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타격을 받은 것은 포스코보다 대한항공일 수 있다. 철강이 주력 사업인 포스코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론에 남긴 것은 기업 윤리에 반한 한 임원의 행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주력 사업인 서비스에 대한 재평가 계기가 됐다. ‘서비스업의 비애’라고 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으로선 좋지 못한 일로 언론에 거론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승무원들도 고객들을 대하기가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승객들이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강경한 대응보다 차분하게 자사의 입장을 마무리 짓는 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일파만파 퍼져나간 고객 정보다. 해당 승무원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승무일지는 대한항공 사내 인트라넷인 크루넷에 사건 당일 사고 보고 일지란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크루넷은 대한항공 전 직원의 인트라넷으로 개인의 운항 스케줄을 조회해 볼 수 있고 해외 체류지에 대한 정보, 징계 및 사고 보고 항목이 있다. 비행 시 사소한 사건이라도 있으면 인트라넷에 전산 보고를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승무일지의 최초 유포자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승무 일지를 작성하는 양식과 현재 유포된 양식이 다를뿐더러 제대로 된 시스템이라면 카카오톡으로 하지 않는다. 이 내용이 어떻게 유포됐는지 우리도 궁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 신상 정보가 유출된 데 대해서는 “승객의 신상 정보 유출은 바람직하지 않다. 승객들과의 부분은 정보 보호 차원에서 상당히 예민하다. 스카이패스 회원 수천만 명을 관리하지만 고객들이 개인 정보 유출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관련 팀을 제외하고는 일반 직원들은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항공사만큼 고객 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고객 정보 누출이 된 상황에 고객들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어 회사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외부로 알려졌다는 것에 대해 향후 VIP 고객 유치에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항공사 고객 관리(CRM)는 비즈니스 클래스면 고객님이 아니라 ○○ 이사, ○○ 사장 등 직업적 호칭을 부를 정도로 정확하게 타기팅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고객 정보 유출 건에 대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한항공 직원의 실수가 대한항공의 실수”라며 “삼성전자 애프터서비스 기사가 잘못을 하면 삼성의 실수로 여긴다. 그래서 대고객 관리가 어려운 것 아닌가. 콜센터 여직원의 목소리조차 관리 받고 있는 게 요즘 기업 환경”이라고 말했다.

승무원에 대한 대항항공의 차후 관리도 주목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편으로는 ‘통쾌’함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더 철저해질 서비스 관리에 승무원 입장에서는 그저 반길만한 상황이 아닐 수 있다.

항공사에서 ‘승객 길들이기’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증인이나 증언, 증거가 없다는 점이 끊임없는 의혹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증거는 책으로 얼굴을 가격한 상황에 대한 동영상, 증인은 항공사 직원 외 탑승객이 될 수 있다.

반면 한 대기업 임원은 “설사 개인 정보 유출과 기내 상황을 외부로 퍼뜨린 기내 승무원의 서비스 윤리가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공익적 차원에서는 이번 사건이 터뜨려지는 것이 훨씬 더 좋다”는 의견을 보였다.

개인 정보가 유출되면 통상 명예훼손으로 문제 삼을 법하지만 포스코 측은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