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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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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한글날'에 새겨보는 우리말의 소중함

    “제자들 중 한 명이 영국에 유학할 때 장학금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적이 있다. 내막을 알고 보니 한국에서 살던 집 주소가 문제가 됐다고 하더라. 아파트 이름에 ‘캐슬(castle)’이 들어가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이렇게 ‘넉넉한’ 집안의 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줄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외솔회 회장을 지낸 최기호 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한 어문 관련 세미나에서 소개한 사연이다.잘못 알려진 상식 많아우리말 실태와 국어정책의 방향에 대한 발언 중 나온 얘기다. 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요즘은 아예 영문자가 우리 글자(한글)를 대체하는 일도 흔하다. 일상생활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책을 훼손하는 당신, 인격도 Out!’ 한 도서관 1층에 내걸린 현수막 구호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데까지 이미 파고들어와 있다.오는 9일은 573돌 맞는 한글날이다. 요즘은 우리말과 한글에 대한 인식과 자부심이 커졌지만 한편으론 잘못 알려진 상식도 꽤 있는 것 같다. 흔히들 ‘한글이 곧 우리말’인 줄로 알고 있는 게 그중 하나다. 우리말은 ‘우리나라 사람의 말’이다. ‘입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글은 그 말을 적기 위한 ‘우리 고유의 글자’를 말한다. 문자로 나타낸 말을 입말에 상대해 ‘글말’이라고 한다. 훈민정음 서문의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에 답이 있다.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른데, 당시 글자는 한자뿐이 없어 우리말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새로 만든 글자가 훈민정음(지금의 한글)인 것이다. 간혹 순우리말에

    2019.10.07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의'나 '~부터' 함부로 쓰면 글이 어색해져요

    집 근처 한 가게 앞에 내걸린 안내 문구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OO생협 매장의 오픈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우리말이긴 한데 우리말답지 않다. 어찌 보면 흔한 표현인 듯하지만, 우리말을 비틀어 써서 어색해졌다. 이런 이상한 말들을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명사구 남발하면 문장 흐름 어색해져이 말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이 눈에 띈다. 우선 단어 사용이 어색하다. ‘오픈시간’이 ‘10시부터’라고 한다. 문 여는 시간이 10시면 10시지, 10시부터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심코 이 ‘부터’라는 조사를 남용한다. “오후 2시부터 학급회의가 열린다.”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짜는 10일부터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OO회장에 취임했다.” 이런 데 쓰인 ‘부터’는 다 어색하다. 오후 2시에 학급회의가 열리는 것이고, 10일 학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회장에 취임한 것 역시 지난해 말이다. 여기에 ‘부터’가 붙을 이유가 없다.외래어 남발도 거슬린다. 가게를 연다고 할 때 ‘오픈’을 너무 많이 쓴다. 문을 여는 것도 오픈이고, 행사를 시작하는 것도 오픈이다. 가게를 새로 내는 것도 오픈이라고 한다. 하도 많이 쓰여 거의 우리말을 잡아먹을 정도다. 상황에 따라 ‘열다, 시작하다, 선보이다, 생기다, 차리다, 마련하다, 막을 올리다’ 등 섬세하고 다양하게 쓸 우리말 어휘가 얼마든지 있다.문장 구성상의 오류도 간과할 수 없다. ‘관형어+명사’ 구조의 함정에 빠졌다. ‘매장의 오픈시간’은 매우 어색한 구성이다. ‘오픈시간’을 주어로 잡아 그렇게 됐다. 가게가 주체이므로 ‘매장’을 주

    2019.09.30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단속을 실시합니다'보다 '단속합니다'가 낫죠

    ‘세벌대기단, 굴도리집, 불발기, 오량가구….’ 이들은 겉모양만 우리말일 뿐, 일반인은 아무도 모르는 암호 같은 말일 뿐이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 도중 거론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난해한 공공언어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었다.공급자 중심의 말 여전히 많아극소수만 아는 전문용어가 공공언어로 포장돼 쓰이고 있는 현실은 우리말이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언어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주위에서 마주치는 ‘정체불명의 우리말’은 수없이 많다. 몇 개만 살펴봐도 그 실태가 어떤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육생비오톱, 차집관거, 볼라드….’ ‘육생(陸生)’은 뭍에서 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오톱’은 그리스어로 생명을 의미하는 비오스(bios)와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한 곳을 뜻한다. ‘생물서식지’라고 하면 좀 알아보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 또는 ‘동식물이 살고 있어요’ 식으로 나타내는 게 더 친근감 있는 표현법이다.(성제훈 농업진흥청 농업연구관, 한글학회 간 <한글 새소식> 533호)‘차집관거’는 하수나 빗물을 모아 처리장으로 보내기 위해 만든 관(管)이나 통로다. ‘차집(遮集)’이 ‘막고 모으는 것’이고, ‘관거(管渠)’는 ‘관으로 된 물길’을 뜻한다. 평생 한 번 쓰지도 않을 용어로 말을 만든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1996년 ‘관거(管渠)’를 관도랑이나 관수로로 쓰도록 다듬었다. 용도에 따라 ‘빗물관길’ ‘하수관길’ 식으로 쓰

    2019.09.23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띄어쓰기가 중요한 이유

    한때 수원~광명 고속도로상에 야릇한 이름의 표지판이 등장해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동시흥분기점’이 그것이다. “동시흥분기점까지 6㎞ 남았다네…. 근데 이 이상한 이름은 뭐지?” 2016년 개통한 이후 운전자들에게 ‘엉뚱한 상상력’을 자극하던 이 명칭은 2017년 말께 ‘동시흥 분기점’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띄어쓰기로 엉뚱한 상상력 유발을 차단한 것이다.‘열쇠 받는 곳’이라 하면 금세 알아예전에 ‘키불출장소’란 말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쓰인다. 이 말도 사연을 알고 나면 “아하! 그렇구나” 하겠지만 모르고서는 희한한 말일 뿐이다. “키불 출장소? 그런 데도 있나?” 사람들은 낯선 말을 받아들일 때 대개 자신에게 익숙한 단어 단위로 인식한다. 동시흥분기점은 ‘동시 흥분 기점’으로, 키불출장소는 ‘키불 출장소’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언어 인식체계가 그렇게 구조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소통’에 실패한 사례다.한편으론 우리말 육성과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이고, 다른 하나는 쉬운 말로 쓰기다. 우선 띄어쓰기를 하면 조금 나아진다. ‘동시흥 분기점’이라 하면 아쉬운 대로 의미 전달이 훨씬 잘 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몸에 익어 알기 쉬운 순우리말로 풀어쓰는 것이다.분기점(分岐點)은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다. 영어 약자 ‘JC(junction)’를 다듬었다. 고속도로와 다른 고속도로를 연결해주는, 고속도로를 갈아타는 교차로를 말한다. 전에 ‘동시흥JC’라고 하던 것을 그나마 우리말로

    2019.09.09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둘 다 쓸 수 있어요

    계절은 어느새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추수를 앞두고 들녘은 ‘가을걷이’ 준비가 한창이다. 이때의 ‘걷이’는 ‘걷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파생명사다. 또 ‘걷다’는 본말 ‘거두다’가 줄어든 말이다. ‘열매를 걷다’ ‘곡식을 걷다’ ‘추수를 걷다’ 등에 쓰인 ‘걷다’가 모두 ‘거두다’에서 온 말이다. 준말과 본말을 함께 쓸 수 있다.성공은 ‘거두는’ 것, 빨래는 ‘걷는’ 것‘거두다→걷다’는 우리말 준말이 만들어지는 여러 원칙 중 하나를 보여준다. 즉 어간에서 끝음절의 모음이 줄어들고 자음만 남는 경우 자음을 앞 음절의 받침으로 적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제저녁→엊저녁’처럼 남은 자음 ‘ㅈ’이 앞 음절의 받침으로 온다. 한글맞춤법 제32항 규정 중 하나다. ‘가지다→갖다’ ‘디디다→딛다’도 같은 방식으로 줄어들었다.다만 ‘거두다’는 의미용법이 워낙 많아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가령 ‘열매를 거두다/걷다’를 비롯해 ‘세금을 거두다/걷다’는 ‘본말/준말’ 관계다. 두 가지 다 쓸 수 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다’ ‘아이를 양자로 거두어 키웠다’ 같은 데 쓰인 ‘거두다’는 ‘걷다’로 줄지 않는다. ‘거두다’만 가능하다. ‘웃음을 거두고’ ‘의혹의 시선을 거두었다’에서도 ‘거두다’만 되고 ‘걷다’는 안 된다.반면 ‘소매를 걷고’ ‘커튼을 걷어라’ ‘비가 오려 해서 빨래를 걷었다’에서는 ‘걷다’만 되고 ‘거

    2019.09.02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바뀌었다'를 '바꼈다'로 줄여 쓰는 건 잘못

    “전화번호가 OOO-××××로 바꼈어요.” “그는 그녀와 중학교 때부터 사겼다고 한다.” “그 여자는 내 말에 콧방귀만 꼈다.” 이런 말에는 공통적인 오류가 들어 있다. ‘바꼈어요, 사겼다고, 꼈다’가 그것이다. 각각 ‘바뀌었어요, 사귀었다고, 뀌었다’를 잘못 썼다.한글 모음자에 ‘ㅜ+ㅕ’ 없어 더 이상 줄지 않아이들의 기본형은 ‘바뀌다, 사귀다, 뀌다’이다. 공통점은 어간에 모두 모음 ‘ㅟ’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에 모음 어미 ‘-어’가 붙을 때 줄어들지 않는, 우리말의 독특한 모음 체계 한 가지를 보여준다.얼핏 보기에 ‘바뀌+어→바껴’로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모음끼리 어울려 ‘-여’로 바뀌는 것은 어간 ‘이’와 어미 ‘-어’가 결합할 때다(한글맞춤법 제36항). ‘가지어→가져, 견디어→견뎌, 막히어→막혀’ 같은 무수한 말들이 모두 그렇게 줄었다. 그러면 예의 ‘바뀌다, 사귀다’ 등에 어미 ‘-어’가 어울리면 어떻게 바뀔까? ‘~이어→~여’의 원리를 적용하면 ‘ㅟ어→(ㅜㅕ)’, 즉 ‘바(꾸ㅕ), 사(구ㅕ)’쯤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모음 체계에는 이를 나타낼 글자가 없다. 컴퓨터 자판으로도 조합이 안 돼 두 글자로 써야 할 판이다.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부터 없던 것이다. 한글 자모는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24자다. 모음만 보면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이다. 이 10개 모음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는 두세 개를 합쳐 적는데, 그것은 ‘애, 얘, 에, 예, 와, 왜, 외,

    2019.08.26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 비튼 '야민정음', 파괴냐 진화냐

    ‘야민정음’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식품기업 팔도에서 한정판으로 선보인 ‘괄도네넴띤’이 논란을 증폭시켰다. ‘팔도비빔면’을 비슷한 형태의 다른 글자로 바꿔 내놨다. 이 작명이 마케팅에 성공하면서 화제가 되자 한글 파괴 비판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사물 모양 통해 한글 익혀…야민정음의 원조 격야민정음은 기존의 말을 비슷한 형태의 다른 표기로 바꾸는 것에서부터 90도 또는 180도 뒤집거나 압축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든다. 멍멍이를 ‘댕댕이’, 귀엽다를 ‘커엽다’ 식으로 바꾼 게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우리 글자를 이런 식으로 푼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100여 년 전 한글을 대중적으로 보급할 때도 야민정음의 아주 먼 원조격 학습법이 있었다.‘세 발 가진 소시랑은 ㅌ자라면, 자루 빠진 연감개는 ㅍ 되리라//지겟다리 ㅏ자를 뒤집음 ㅓ자, 고무래 쥐고 보니 ㅜ자가 되고….’(소시랑은 쇠스랑의 방언으로 갈퀴 모양의 농기구. 연감개는 ‘연(鳶)+감개’로 연줄을 감는 도구인 얼레를 말한다. 가운데 자루를 박아 만든다. 고무래는 밭일 할 때 쓰는 ‘丁(정)’자 모양의 농기구. 당시 일상어가 지금과 많이 달랐다는 것도 참고로 알아 둘 만하다.)1933년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한 <한글공부>(이윤재 저)에 실린 ‘문맹타파가’다. 당시 우리 민족 2000만 명 중에 80%가 문맹이었다. 한글을 보급하던 초기에 한글을 형상(생김새)으로 배웠음을 알 수 있다. 사물의 모양에 한글을 대입시켰다. 여기서 한 번 더 응용하면 모양을 본떠 만드는 야민정음 방식과 크게 다를 게 없다.한글의 다양한 변신…우리

    2019.07.15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때문이다'를 남발하면 글이 허술해져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글쓰기는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워주는 훌륭한 도구다. 바꿔 말하면 모든 글은 논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지는 것은 물론이다. 글쓰기에서 이런 과정은 어휘 선택에서부터 문장 구성, 문장들의 전개 과정 등 하위요소들을 통해 드러난다.인과관계 따져 엄격히 써야 효과적그중에서도 대놓고 이 논리성을 요구하는 게 있다. 인과관계 표현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게 ‘때문이다’ 구문이다. ‘탓이다/덕분이다/여서다’ 같은 서술 용법도 같은 범주에 있는 말들이다. ‘덕분’(긍정 의미)과 ‘탓’(부정 의미)의 쓰임새를 달리 하는 것은 어휘적 차원에서의 구별이다. 문장론적 차원에서는 문장의 구성과 전개 과정에서 인과관계 구문의 성립 여부를 살펴야 한다. 이들을 자칫 남발하다 보면 글의 흐름을 어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보자.“국내 기업의 ‘탈(脫)한국’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높은 인건비로 투자 매력이 떨어진 한국을 떠나 해외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찬찬히 읽다 보면 ‘늘고 있기 때문이다’에서 글의 흐름이 걸릴 것이다. ‘때문이다’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을 나타내는 말이다. 앞에서 ‘탈한국 가속화’를 언급했으면 뒤에 그 원인이나 배경이 나와야 자연스럽다. ‘해외에 둥지를 트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것은 ‘탈한국 가속화’를 달리 표현한 것일 뿐 같은 얘기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서술어를 ‘늘

    2019.07.08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면서'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 져요

    “그는 1961년부터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시를 쓰면서 대표적인 저항시인의 면모를 보였다. 군(軍) 시절 앓았던 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1969년 39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시인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 50주년이다. 그를 소개한 이 대목은 얼핏 보면 딱히 꼬집을 데 없는, 완성된 글이다. 하지만 곰곰 뜯어보면 거슬리는 데가 있다.두 개 동작이 동시에 일어날 때 쓰던 말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 표현이 어딘지 어색하다. ‘-면서’의 사전적 용법은 ‘두 가지 이상의 움직임이나 상태 따위가 동시에 겸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 풀이의 핵심은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뤄짐’에 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재발하면서’가 쓰인 문맥은 좀 다르게 읽힌다. ‘간디스토마가 재발해 결국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 두 동작은 시간차가 있으며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문장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그런 데서 연유한다. 독자에 따라 비문으로 보기도 할 것이다.최근 이런 표현이 넘쳐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독자들도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를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잘못 쓰는 말이므로 적극적으로 바꿔 써야 할까? ‘-면서’는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를 겸하여 나타내는 것이 원래의 전형적 용법이다. ‘책을 주면서 말했다’ ‘사나우면서 부드러운 데가 있다’ 같은 게 그 예다. 1961년 나온

    2019.07.01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열두째'는 차례…수량 말할 땐 '열둘째'죠

    헷갈리는 수의 세계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왼쪽에서 (열두째/열둘째)에 있는 사람이 나야.” “이번 시험은 만점자가 많군. 이 답안지가 벌써 (열두째/열둘째)야.” 두 문장에 쓰인 ‘열두째’와 ‘열둘째’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첫 문장은 ‘열두째’, 둘째 문장은 ‘열둘째’라고 해야 한다.둘째, 셋째, 넷째는 차례.수량 아울러 써‘열두째’는 맨 처음에서 열두 번째라는 뜻이다. 차례, 순서를 말한다. “위에서 열두째 줄을 읽어 보아라”처럼 쓴다. 이에 비해 ‘열둘째’는 열두 개째란 뜻이다. 지금까지 모두 해서 몇 개째임을 말한다. “이 라인에서 발견된 불량품이 오늘만 벌써 열둘째다” 식으로 쓴다. 표준어 규정 제6항 얘기다.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거나 줄어들어 형태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제6항은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사례를 담았다. 두 개의 비슷한 발음 중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단수표준어의 사례다.예전엔 ‘두째, 세째’와 ‘둘째, 셋째’를 구별해 썼다. ‘두째, 세째’는 차례를 나타낼 때, ‘둘째, 셋째’는 수량이나 개수를 나타낼 때 썼다. 하지만 언어 현실에서 이 같은 구별이 쉽지 않고 다소 인위적인 측면도 있어 이를 ‘둘째, 셋째’로 통합했다(네째/넷째도 넷째로 통일). 따라서 지금은 ‘둘째, 셋째, 넷째’가 차례와 수량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쓰인다. 바꿔 말하면 우리말에 ‘두째, 세째, 네째’ 같은 말은 없다는 얘기다.하지만 예외가 있다. 십 단위 이상에서는 ‘열두째, 스물두

    2019.06.17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서너 명'이 옳고 '세네 명'은 틀리죠 ~

    우리말 수의 세계는 들여다볼수록 오묘하다. 그동안 ‘맞춤법 바로 알기’를 통해 우리말 수사에 한자어 계열과 고유어 계열이 있다는 것을 살펴봤다. 하나, 둘, 셋 등이 고유어 수사고 일(一), 이(二), 삼(三) 같은 게 한자어 수사다. 고유어 수사는 관형어로 쓸 때 ‘한, 두, 세’ 식으로 또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뒤에 오는 단위명사가 무엇이냐에 따라 ‘서 말’과 ‘석 자’ ‘세 명’ 식으로 구별해 쓰기도 해야 한다.서 돈, 서 말은 돼도 석 돈, 석 말은 안 써표준어규정 17항은 이들을 구별하는 까닭을 담고 있다. 요약하면, ‘의미는 같되 비슷한 발음으로 몇 가지가 쓰일 경우 그중 더 널리 쓰이는 하나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택된 게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다. ‘세-/석-’은 쓰지 못한다.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을 쓰고 ‘세-’는 버렸다. ‘서-’는 당연히 못 쓴다. ‘넷’의 관형형인 ‘너-’와 ‘넉-, 네-’를 구별해 쓰는 요령도 같다.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 너-’가,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 넉-’이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그 외의 단어가 올 때는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무엇이 더 널리 쓰이는지를 보면 된다. 예컨대 ‘(보리) 서/너 홉’, ‘(종이) 석/넉 장’과 같이 쓸 수 있다. ‘세/네’는 비교적 널리 통용된다. 따라서 이를 ‘세/네 홉’, ‘세/네 장’이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모든 단위명사를 분류해 제시할 수는 없기

    2019.06.10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장광설'은 '장황하게 늘어놓은 말'이죠

    말의 세계는 깊고도 오묘하다. 별의별 단어들이 다 있다. 지난 호들에서 살핀 ‘주책’ ‘엉터리’ 등은 아예 뜻이 반대로 바뀌어 쓰이는 사례다. 세월이 흐르면서 말의 의미와 쓰임새가 달라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장광설’도 그중 하나다.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을 할 때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한다.유창한 부처님 설법 뜻하던 ‘장광설’인류 역사에서 장광설을 가장 잘 늘어놓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석가모니다. 그는 이 말이 태어나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연을 알아보기 전에 짧은 문답풀이를 하나 해보자. ‘천동설, 감언이설, 대하소설, 성선설, 횡설수설, 장광설.’ 모두 ‘-설’로 끝나는 복합어다. 이 중 특이한 ‘-설’이 하나 있다. ‘장광설’이다. 길게 늘어놓는 말을 가리키니 ‘말씀 설(說)’을 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혀 설(舌)’자다. 나머지는 모두 ‘말씀 설’이다.그 앞에 ‘긴 장(長), 넓을 광(廣)’이 붙었다. ‘길고도 넓은 혀’란 뜻이다. 여기에서 ‘길고 줄기차게 잘하는 말솜씨’란 의미가 나왔다. 이 장광설은 석가모니의 신체적 특징 중 하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장광설은 중생을 계도하는 진실한 설법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중국 북송 때 최고 시인인 소동파가 남긴 시구 ‘溪聲便是長廣舌…’에 본래 의미의 장광설이 나온다. ‘계곡 물소리가 곧 부처의 유창한 설법이네…’란 뜻으로, 폭포소리에서 얻은 깨달음을 담은 표현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 말이 일상의 단어로 자리 잡으면서 원래 의미가 퇴색했다. 대신에 ‘길고 지루하게

    2019.06.03 09:02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엉터리"와 "엉터리없다"는 같은 말이죠

    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부정어 생략 현상을 좀 더 살펴보자. “그 사람 엉터리야.” 이때의 ‘엉터리’도 ‘엉터리없다’에서 바뀌었다. ‘엉터리’는 본래 ‘사물이나 일의 대강의 윤곽’을 뜻하는 말이다. “1주일 만에 겨우 일의 엉터리가 잡혔다”처럼 썼다. 그래서 이를 부정해 ‘엉터리없다’라고 하면 ‘정도나 내용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 된다. ‘엉터리없는 수작’ ‘엉터리없는 생각’처럼 쓴다.‘대강의 윤곽’을 뜻하던 말에서 의미 이동그런데 이 ‘엉터리없다’에서 부정어가 생략되고 의미 이동이 이뤄지면서 지금은 ‘엉터리’란 말 자체가 ‘엉터리없다’란 뜻을 갖게 됐다. 따라서 “네 말은 순 엉터리야”라고 하든지, “네 말은 순 엉터리없어”라고 하든지 같은 뜻이다. 문법적으로도 모두 허용된다.‘안절부절못하다’는 경우가 또 다르다. 흔히 “안절부절한 모습”이라고 한다. 또는 “안절부절하지 못한다”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틀린 말이다. 우리말에 ‘안절부절하다’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안절부절’은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뜻한다. 이 말은 특이하게 부정어가 결합한 ‘안절부절못하다’가 하나의 단어다. 활용할 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안절부절못하고~’ 식으로 써야 한다.전혀 합당하지 않을 때 “얼토당토않다”라고 한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옳+도+당(當)+하+도’로 분석된다. 이 역시 ‘얼토당토않다’가 한 단어라 부정어를 생략해서

    2019.05.27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칠칠맞다"는 칭찬하는 말이에요~

    지난 4월 치러진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GSAT)에서는 언어논리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생소한(?) 단어 앞에서 ‘멘붕’을 느꼈다는 후기가 잇따랐다. 이런 말은 낯설다기보다 우리말 용법의 허를 찌르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들은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못하다/않다/없다’ 등 부정어와 어울려 쓰인다. 그러다 보니 본래 의미를 간과하게 된, 그러기 십상인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알차다’에서 ‘야무지다’로 의미 확대돼흔히 쓰는 용법을 토대로 원래 형태의 의미를 추리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사례들이다. SNS 등의 ‘일탈적 언어’ 사용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낯설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언어 등 규범어를 꾸준히 접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생글 코너를 통해서도 몇 차례 다룬 내용이었다.‘칠칠하다, 서슴다, 탐탁하다, 심상하다, 아랑곳하다.’ 얼핏 보면 의미가 잘 안 떠오른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부정어와 함께 쓰는 말이라는 점이다. ‘칠칠하지 못하다, 서슴지 않다, 탐탁지 않다, 심상치 않다, 아랑곳없다.’ 이렇게 하고 보면 이들이 일상에서 흔히 쓰는, 아주 익숙한 말이라는 게 드러난다. 하지만 부정어를 떼어내고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의미가 퇴색해 기억에서 멀어진 것일 뿐이다.‘칠칠하다’는 본래 나무나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검고 칠칠한 머리’ 같은 표현에 이 말의 본래 쓰임새가 살아 있다. 물론 지금도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의미

    2019.05.20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금명간'은 한자어…'이른 시일 내'로 쓰면 쉽죠

    지난 4월 26일 새벽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과정에서 ‘빠루’가 등장했다. 곧이어 포털사이트엔 ‘빠루’가 실시간검색(실검)에 올랐다. 이에 앞서 14일 치러진 삼성그룹 대졸공채시험 뒤에도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단어가 화제가 됐다. 신문들은 문제로 나온 낯선 낱말 앞에서 수험생들이 당혹스러워하던 분위기를 전했다.‘빠루-노루발못뽑이’ 둘 다 실패그런 사례는 많다. 지난 3월엔 ‘금명간’이 실검에 떠 주목을 받았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네티즌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우리말을 둘러싼 이런 관심은 두 가지 상반된 화두를 던진다. 하나는 우리말을 대하는 인식이 사회적 화제가 될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 이런 말을 잘 모르나?’ 하는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이런 사례는 우리말을 살찌우기 위해 필요한 언어정책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한다.이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써오던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든 지금은 덜 쓰는 말이 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지렛대 원리로 못을 뽑는 도구인 ‘빠루’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영어로는 ‘크로 바(crow-bar)’다. 까마귀 발을 닮았다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 이걸 일본에서 뒤의 ‘바’만 따다 ‘바루(バ-ル)’라고 적었는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된소리 ‘빠루’가 됐다. 원어에서 멀어져 왜곡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당연히 순화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에서 ‘노

    2019.05.13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십둘'은 어색한 수 읽기죠

    일상의 말을 가만 들여다보면 이상한 수 읽기가 하나 있다. 숫자를 “사십둘” 식으로 말하는 게 그것이다. ‘마흔둘’도 아니고 ‘사십이’도 아니다. 의외로 이런 경우가 흔하다. 나이를 말할 때도 ‘사십두 살’이라고 한다. ‘마흔두 살’ 또는 ‘42세’라고 해야 자연스럽다.10 이하 숫자는 고유어로 많이 읽어말 쓰임새의 이런 차이는 지난 호에서 살폈듯이 숫자를 익힌, 지난 시절의 학습경험 때문인 듯하다. 일제강점기 때 아라비아숫자가 보급되면서 한국인은 숫자 읽기에 처음 눈을 떴다. 당시 문자보급교재와 신문을 보면 지금의 수 읽기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①달걀 일곱 개 중에서 세 개가 깨졌으니 남은 것이 몇 개인가.(조선일보 <문자보급교재>, 1936년) ②시계가 네 시 치오.(동아일보 <한글공부>, 1933년) ③제일 회 성적으로 보면 연령으로는 일곱 살부터 사십구 세까지 있고…(조선일보 1929년 10월 4일자)10까지의 수에는 고유어 하나, 둘, 셋 등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10을 넘는 수는 한자어가 우세했다. 예문의 ‘세 개’ ‘네 시’ ‘일곱 살’과 ‘사십구 세’에서 이런 구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일관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0 이하 숫자에서 고유어 수사의 쓰임새가 활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계를 볼 때 ‘두 시 삼십 분’ 식으로 고유어 수사와 한자어 수사가 따로 자리잡은 배경도 유추할 만하다. 12시까지인 시 개념은 고유어로, 60까지인 분/초 개념은 자연스레 한자어 수사로 읽었을 것이다.수 읽기에서 이 같은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령 1명, 2명이라 쓰고 이를 일 명, 이 명으로 읽기보다

    2019.05.06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20살'보다 '스무 살'로 쓰는 게 좋아요~

    우리가 흔히 쓰는 1, 2, 3 등 아라비아숫자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게 언제쯤일까? 아래 예문을 토대로 추정하면 대략 100년이 채 안 될 것 같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펼친 문자보급운동이 계기가 됐다.① 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② 필산숫자: 1(一), 2(二), 3(三) …. 한문숫자: 일 一 (하나), 이 二 (둘), 삼 三 (셋) …. (동아일보사 <일용계수법> 1933년)100년 전 ‘1, 2, 3’을 ‘일, 이, 삼’으로 가르쳐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숫자를 읽는 방식이다. 아라비아숫자 1, 2, 3을 나열한 뒤 이를 읽고 쓰는 법을 한자 ‘일(一), 이(二), 삼(三)…’으로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수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량을 셀 때 쓰는 말을 ‘기수(基數)’라 하고, 사물의 순서를 나타낼 때 쓰는 것을 ‘서수(序數)’라고 한다. 일, 이, 삼(한자어 계열) 또는 하나, 둘, 셋(고유어 계열) 등이 기수다.(서수는 한자어로 제일, 제이, 제삼..., 고유어로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한다.)아라비아숫자는 수사가 아니라 수를 나타내는 여러 부호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읽을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에선 일, 이, 삼(한자어) 또는 하나, 둘, 셋(고유어)으로 읽고 영어로는 원, 투, 스리다. 일어에서는 이치, 니, 산이며 중국에선 이, 얼, 싼이다. 한국인이 1, 2, 3을 보고 유독 일, 이, 삼, 즉 한자음으로 읽는 까닭은 100여 년 전 문자 보급 당시 그리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부터 ‘일~십’을 소리는 한자음으로 익히고 뜻은 고유어 ‘하나~열’로 새겼

    2019.04.29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양해는 '드리는' 게 아니라 '구하는' 거죠

    지난 몇 회에 걸쳐 언어에 내재한 논리적 구조에 대해 살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왕왕 언어의 논리성을 무시한다. 이것은 지력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쓸 때 합리적·과학적 사고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람이 말을 비논리적으로 할 까닭이 없는 이치와 같다.“양해 말씀 드립니다”는 의미상 성립 못 해“재판 결과 혹은 법관의 인사 문제는 삼권분립을 훼손할 소지가 있어 청원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 거듭 양해 말씀 드리면서 답변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에 답변하는 원고(청원답변 79호)가 올라왔다. 여기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어색한 곳이 하나 있다. ‘양해 말씀 드리면서’ 부분이 그것이다.‘양해’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이 말을 썼다면 말하는 이가 어떤 문제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 된다. 예문은 정부가 국민에게 말하는 상황이다. 국민이 양해할 일을 정부가 한 꼴이니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말씀’은 남의 말을 높여 이를 때도, 자기의 말을 낮춰 이를 때도 쓴다. 양쪽으로 다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에서는 ‘남의 말’을 높인 주체존대 문장이다.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에서는 ‘자신의 말’을 낮춘 상대존대에 쓰였다. “철수야, 선생님한테 꼭 말씀드려라”에서는 화자가 아니라 철수를 낮춘, 객체존대형이다.그러면 ‘드리다’의 경어법상 정체는 뭘까? “철수가 동생 영희한테 저녁을 차려주었다”란

    2019.04.22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사물을 높인 잘못된 말

    우리말에서 ‘되다’의 유용성은 매우 크다.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남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호에서 살핀 “좋은 하루 되세요”가 그런 사례다. 동사 ‘되다’의 쓰임새는 역사적으로 확장돼 왔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당시만 해도 ‘되다’ 풀이에 ‘물건이 다 만들어지다’ 등 세 가지밖에 없었다. 1990년대 나온 국어사전들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풀이로 넓어졌다.‘-시’는 주어를 높이는 말…사물에는 안 써“5000원 되겠습니다” “다음 역은 서울역이 되겠습니다” 같은 표현은 괜찮을까? 어법에 틀리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되다’ 항목에 이들을 용례로 올리고 있다. ‘되다’는 어원적으로 ‘다(如)’에서 온 말이다(김민수 편, 우리말 어원사전). 쓰임새가 많이 확장됐다 해도 그 본질은 벗어나지 않는다.하지만 “5000원 되시겠습니다” “다음은 서울역이 되시겠습니다”라는 말은 곤란하다. 이런 용법은 우리말 경어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사물존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어법은 크게 나눠 주체존대, 객체존대, 상대존대 방식이 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나오셨습니다’의 ‘-시’는 주체를 존대하는 데 쓰는 어미다. ‘선생님께서 오시었다’처럼 서술어미 앞에 온다고 해서 선어말어미라고 한다.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 높을 때 이 ‘-시’를 사용한다. ‘커피(가) 나오셨습니다’이니 ‘커피’를 높인 셈이다. 사물을 존대할 수는 없으니 이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는다

    2019.04.15 09:02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좋은 하루 되세요"는 문법 어긋나도 흔히 쓰죠~

    10여 년 전 제주시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가장 친절한 전화 인사말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좋은 하루 되세요”가 단연 1위로 꼽혔다. 몇 해 전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 인사말로 “사랑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를 정하기도 했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말을 일상에서 자주 쓴다. 동시에 이 말이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꽤 오래 됐다. 논란의 핵심은 ‘좋은 하루’가 ‘되다’와 결합할 수 있느냐에 있다.문법에 어긋나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써이 말은 우리말의 규범 용법과 현실적 언어 사용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 사례다. 우선 순수하게 어법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좋은 하루 되다’는 곰곰이 생각하면 확실히 어색하다. 누가 누구한테 무엇이 되라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물이 얼음이 되다’라고 한다(동사 ‘되다’는 다른 용법도 많지만 이 표현이 전형적인 쓰임새다). 즉 ‘A가 B(가) 되다’ 꼴인데 이런 문장 형태를 문법적으로는 보문이라 한다. 이때 B를 보어라 하고, A와 B는 동격 구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철수한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하면 ‘철수=좋은 하루’가 돼야 하는데 이런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표현이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여기에서 오는 것이다. ‘되다’를 무분별하게 남용한 셈이다. 분명 쓰는 말이긴 하되 과학적으로, 이치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물론 말이란 항상 논리적으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방송에서 이 말을 썼다면 이는 “시청자 여러분,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dq

    2019.04.08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따 논 당상'이 아니라 '따 놓은 당상'이에요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나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리 속담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경향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승은 따 논 당상”이라고도 한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나타낼 때 하는 말이다. 두 속담에 쓰인 ‘놔라/논’은 모두 기본형 ‘놓다’에서 온 말이다.‘놓다’는 규칙활용…‘논’으로 줄지 않아그런데 ‘놔라/논’ 형태를 보기에 따라 좀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놓아라/놓은’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놓아라’는 ‘놔라’로 줄여 쓸 수 있지만, ‘놓은’은 ‘논’으로 줄지 않는다. 틀린 표기라는 뜻이다.우선 ‘놔라’부터 살펴보자. ‘놓다’는 규칙동사다. 활용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놓고/놓지/놓아/놓은/놓았다’ 식으로 어간인 ‘놓-’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놓아’나 ‘놓아라/놓았다’ 같은 것을 ‘놔/놔라/놨다’로도 쓴다. 받침 ㅎ이 탈락하면서 말 자체도 줄어들었다. 이는 비슷한 형태인 ‘좋다’가 ‘좋아→좌’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특이한 사례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에서도 이를 예외적인 현상으로 다뤄 그 용법을 인정했다. 맞춤법 35항에서 ‘놓다’가 어미 ‘-아’와 결합할 때 ‘놓아→놔, 놓아라→놔라, 놓았다→놨다’로 줄어들 수 있다고 따로 정했다.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다는 뜻이다.그러나 ‘놓은’을 &lsquo

    2019.04.01 09:00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집이 참 넓으네'?…'넓네'가 옳아요

    계절은 성큼 다가와 어느새 남녘에는 개나리가 한창이라고 한다. 그 개나리꽃을 보면서 우리는 “개나리가 노라냐?” 할까, “~노랗냐?”라고 할까? 또는 “개나리가 노라니?” 하고 물을 수도 있고, “~노랗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노라네” 또는 “~노랗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어미 ‘-냐/-니/-네’를 통해 우리말 종결어미의 문법성을 알아보자. 이들은 앞말에 붙는 조건이 똑같다는 게 포인트다.‘-냐/-니/-네’는 세쌍둥이…같은 듯 달라우선 ‘노랗다’는 ㅎ불규칙 용언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형용사이므로 의문 종결어미로 ‘-느냐’가 아니라 ‘-으냐’가 붙는다(지난 호 참조). 이때 ㅎ불규칙은 모음어미가 올 때 받침이 탈락하므로 ‘노랗+으냐→노라냐’가 된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은 2015년 9월 어미 ‘-냐’의 용법을 모든 용언의 어간에 붙을 수 있게 바꿨다.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말을 어법으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노라냐/노랗냐’를 둘 다 쓸 수 있다.‘노라니?/노랗니?’는 어떨까? 이 역시 활용할 때 형용사이므로 의문 종결어미 ‘-으니’가 붙는다.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ㅎ이 탈락해 ‘노랗+으니→노라니’가 된다. 그런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온다. 어미 ‘-니’는 모든 용언의 어간에 직접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지난 호에서 살폈다. 즉 ‘노랗+니’도 가능하다. 이는 ‘-냐’를 좀 더 친근하고 부드럽게 이르는 표현이다. 따라서 ‘노라니?/노랗니?’ 역시 다 된다.이제 ‘노

    2019.03.25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돕느냐?' '돕냐?'는 맞고 '도우냐?'는 틀려요

    ‘쉬이 잠들지 못하는 현대인을 위해… 세 가지 자연성분 향수로 숙면 도운다.’ 얼핏 지나치기 쉬운 이 문장에는 잘못 쓴 곳이 하나 있다. ‘도운다’가 그것이다. ‘돕다’는 ㅂ불규칙 동사다. 이 말은 활용 시 ‘돕고, 돕는, 도와, 도우면’ 식으로 어간이 불규칙하게 변한다. 이들은 말을 해보면 분명히 드러나니 쓰는 데 염려가 없다. 하지만 ‘도운다/돕는다’를 비롯해 ‘도우네/돕네’ ‘도우냐/돕느냐/돕냐’ ‘도우니/돕니’쯤 가면 헷갈려하는 것 같다. 모두 종결어미란 공통점이 있다.동사/형용사 따라 ‘-느냐/-으냐’ 구별우선 확실한 것부터 짚어 보자. ‘돕다’가 동사인 것은 누구나 안다. 우리말에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서술하는 데 쓰는 종결어미는 뭐가 있을까? ‘-는다/-ㄴ다/-다’ 정도가 떠오를 것이다. 이들이 붙는 환경이 각각 다르다. ‘먹는다, 웃는다’를 생각하면 동사 뒤에는 ‘-는다’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잠을 잔다, 아이가 논다’처럼 동사 중에서도 받침이 없거나 ㄹ받침일 때는 ‘-ㄴ다’가 붙는다. 또 ‘물이 맑다, 하늘이 파랗다’처럼 형용사에는 ‘-다’가 붙는다는 점도 확인된다.이를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말로 해보면 안다. 그렇다면 일단 ‘도운다/돕는다’는 답이 나온다. ‘돕다’는 동사이므로 당연히 ‘돕는다’이다(‘도운다’ ×). 물음을 나타낼 때도 ‘돕느냐’가 된다(‘도우냐’ ×). 이 역시 동사에는 ‘-느냐’를, 형용사에는 ‘-으냐’를 붙인다. 이런 방식으로 ‘먹느냐?

    2019.03.18 09:02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병이 '나았다'를 '났다'로 쓰는 건 틀리죠 ~

    글쓰기에서 맞춤법 오류는 사소한 듯하면서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몇 해 전에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틀리기 쉬운 맞춤법 10위’란 제목의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었다. 1위가 ‘어이없다’를 ‘어의없다’로 알고 쓴다는 것이었다. 2위에는 ‘병이 나았다’를 ‘병이 낳았다’로 잘못 쓰는 게 꼽혔다. ‘낳았다’를 통해 용언의 규칙 활용과 불규칙 활용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나다/낫다/낳다’ 구별해 써야우리말에서 [나?따]로 발음될 수 있는 말은 세 가지 경우가 있다. ‘나다[나다]’와 ‘낫다[낟따]’ ‘낳다[나타]’에 서술어미 ‘-았다’가 붙었을 때다. 이들이 활용하는 꼴이 다 다르다. 그만큼 어미 활용은 가짓수도 많고 복잡하기도 하다.우선 ‘나다’는 규칙동사다. ‘병이 나다’라고 하면 병이 생겼다는 뜻이다. 여기에 ‘-았다’가 붙으면 ‘병이 났다’이다. ‘나+았다→났다’로 줄어든다. 맞춤법 제34항 준말 규정 가운데 하나다. 이때 두 모음이 반드시 하나로 줄어들므로 이를 줄기 전 형태인 ‘나았다’라고 쓰면 안 된다. ‘사과를 따+았다’가 줄어 ‘~땄다’라고 하듯이 늘 줄어든 형태로 적어야 한다.‘병이 나았다’라고 하면 다른 말이 된다. 이때의 ‘나았다’는 ㅅ불규칙 용언인 ‘낫다’에서 온 말이다. ‘낫+았다’가 결합해 ‘나았다’로 바뀌었다. ‘낫다’는 병이나 상처 따위가 고쳐졌다는 뜻이다. 이 말은 ‘낫고, 낫게, 낫지, 나아, 나으면, 나으니…’ 식으로 어간이 불규칙하게 변한다. 이런 경우는 원

    2019.03.11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하늘이 '파랍니다'는 '파랗습니다'로 써야죠

    근래에는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을 보는 게 쉽지 않다. 간혹 파랗게 갠 하늘을 보면 반가울 정도다. “미세먼지가 걷힌 하늘이 파랗습니다/파랍니다.” 이 문장에 쓰인 ‘파랗다’의 어미 활용을 어렵게 느끼는 이들이 있다. 맞춤법 제18항에 나오는 ㅎ불규칙 용언 얘기다. 현행 한글 맞춤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용법을 헷갈려한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다.맞춤법을 외우려고 하면 더 어려워져한글 맞춤법은 우리말을 한글로 적을 때 적용하는 규칙이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33년 조선어학회(현 한글학회)에서 제정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마지막으로 1988년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확정 고시해 쓰고 있는 게 현행 맞춤법이다.그 한글 맞춤법 일부 조항에 변화가 생겼다. <맞춤법 제18항 ‘그렇다’의 활용 예 중 ‘그럽니다’ 삭제.> 1994년 12월 26일 국어심의회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국어심의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자문에 응해 국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는 법정기구다). 이때 ‘까맙니다, 동그랍니다, 퍼럽니다, 하얍니다’ 등 ㅎ불규칙 용언의 ‘-ㅂ니다’ 활용 예가 모두 삭제됐다. 한글 맞춤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우선 ‘-습니다’와 ‘-ㅂ니다’를 구별해 보자. 이들은 우리말 존대법 가운데 상대높임법에 쓰이는 서술 어미다. 어떤 것을 쓸지는 이들이 결합하는 앞말에 따라 달라진다. ‘-ㅂ니다’는 ①‘ㄹ’ 받침 용언의 어간 뒤 ②받침 없는 용언의 어간 뒤 ③‘-이다’를 높일 때 ④어미 ‘-으시’ 뒤에 붙는다. ‘-습니다&r

    2019.03.04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롱패딩은 '길다란' 게 아니라 '기다란' 거죠

    “요즘은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길다란 롱패딩이 유행이야.” “겸손이라는 것은 얇다랗고 긴 평균대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도 같다.” “대전의 한 전통시장, 넓다란 통로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대로 모은, 정서법에 어긋난 문장들이다. 어디가 틀렸을까? ‘길다란’은 ‘기다란’을 잘못 쓴 것이다. ‘얇다랗고’ ‘넓다란’도 ‘얄따랗고’ ‘널따란’으로 써야 한다.‘소리적기+형태적기’가 표기 양대원칙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흔히 벌어진다. 사소한 것 같지만 때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채용 심사에서 탈락하기도 하고(2017년 잡코리아 조사), 이성의 호감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2017년 알바몬 조사). 그렇다고 수많은 단어 표기를 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법은 ‘원칙을 알고 응용’하는 것이다.한글 맞춤법의 기본 원칙은 총칙 제1항에 담겨 있다.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이 의미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 조항은 한글 맞춤법의 두 가지 대원칙, 즉 소리대로 적는 방식과 형태를 유지해 적는 방식을 밝히고 있다. 한글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소리글자(표음문자)다. 웬만한 말소리를 그대로 글자로 나타낼 수 있다. 그렇다고 맞춤법도 표음주의로 돼 있을 것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한글 맞춤법은 표음주의에 형태주의를 절충해 만들어졌다. 형태주의란 글자 형태를 바꾸지 않고 고정시키는 것을 말한다. 가령 ‘꽃’과 ‘잎’이 어울리면 소리는 [꼰닙]으로 나지만 형태는 ‘꽃잎’을 유지한다.1954년 겪은 ‘한글파

    2019.02.25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ㄴ받침 뒤에선 '률' 아닌 '율'로 써야 해요

    해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잘못 쓰는 우리말 사례’가 단골 소재로 거론된다. 그만큼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커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우리 주위에서 국어 사용 오류가 여전히 많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윤상직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감에서 ‘생존율’을 ‘생존률’로 잘못 쓰는 등 맞춤법을 틀리게 낸 보도자료 사례를 지적했다.모음 또는 ㄴ받침 뒤에서만 ‘-율’로 적어황주홍 민주평화당 국회의원은 한국농어촌공사 등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숫자 표기 방식의 오류를 질타했다. ‘20천 톤, 50백만 원.’ 정부 및 공공기관 공문서에 쓰인 이런 식의 표기는 국어기본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다. 2만 톤, 5000만 원이라고 하면 누구나 금세 알아본다.생존율에 붙은 ‘-율(率)’은 비율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본래 음은 ‘률’이다. 이 말은 ‘경쟁률/입학률/취업률’ 같은 데서는 ‘-률’로, ‘감소율/할인율/환율’ 같은 데서는 ‘율’로 적는다. 한국인이 자주 틀리는 맞춤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다. 하지만 ‘-률/-율’의 구별은 확실하고도 단순한 규칙이 있다. 우선 원래 음이 ‘-률’이므로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적으면 된다. 다만 <모음이나 ㄴ받침 뒤에서는 ‘-율’로 적는다>는 규정만 기억해 두면 된다. 한글맞춤법 11항에 나오는, 우리말 두음법칙 가운데 하나다. 두음법칙이란 ‘한자어에서 첫머리에 ㄴ, ㄹ이 오는 것을 피한다’는 규정이다. 발음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녀자(女子)’는 ‘여자’로, ‘

    2019.02.18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2) '가지다'를 다른 말로 바꿔 보자

    문장을 쓰는 방식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일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이 올 수 있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가지다’라는 함정을 피해야우리가 글을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파악해서 아는 것보다 주로 통합체상의 맥락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말 뒤에 뭐가 올지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단어들 간에 서로 어울리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합 체계가 단단할수록 언어의 생태계는 건강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말 체계를 위협하는 말 ‘가지다’를 살펴보자.‘그는 지난 3일 모교인 OO대를 찾아 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이날 대학 본관 200호 강의실서 가진 특강엔….’언제부터인지 ‘~기회를 가지다’란 문구가 우리말에서 상투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잘 들여다보면 매우 어색하다.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보다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를 ‘(후배들과)만났다’고 하면 더 좋다. 훨씬 간결해진다. 이어지는 ‘~에서 가진 특강’도 ‘~에서 한 특강’

    2018.09.17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에게 어색한 북한의 여러 표현들 (3)

    '-ㄹ데 대한/대하여'는 북한의 글말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가령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하여' '기록영화를 잘 만들데 대하여'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식이다.‘남과 북은 그 어떤 형태의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하고….’ 지난 4월27일 오후 ‘판문점 선언’ 전문(全文)이 공개됐을 때 가장 혼선을 빚은 대목은 이 문장이었다. ‘사용하지 않을 데 대한’은 우리에게 낯선 표현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사용하지 않을 때 대한’으로 바꿔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어색하긴 마찬가지였다.남에선 ‘~데’보다 ‘~것’에 익숙해‘-ㄹ데 대한/대하여’는 북한의 글말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북한에선 ‘아는것이 힘이다’처럼 의존명사를 앞 단어에 붙여 쓴다. 선언문 원본도 ‘~하지 않을데 대한’으로 붙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령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히 할데 대하여’ ‘기록영화를 잘 만들데 대하여’ ‘사회주의적 문학예술을 발전시킬데 대한~’ 식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관형형 어미 ‘-ㄹ’과 의존명사 ‘데’, 동사 ‘대하다’를 살펴봐야 한다.우선 ‘대하다’는 타동사로서, 앞에 오는 ‘무엇’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때 ‘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통상 구체적인 대상(체언)이 오는 게 우리 어법이다. ‘전통문화에 대한/건강에 대하여/이 사건에 대하여’처럼 쓴다. 이에 비해 의존명사 ‘데’는 추상성이 강한 단어라 ‘대하다’ 앞에 잘

    2018.05.28 09:01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주동적 조치'는 북한 특유의 표현이죠

    북에서는 의외로 '-적'을 많이 쓴다. 우리 눈으로 보면 어색한 게 꽤 있다. 가령 '(이웃과) 친선적으로 지내다' 같은 표현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그냥 '친하게(사이좋게) 지내다'라고 한다.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지속적으로 우리말 순화운동을 해온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는 등 상당한 성과도 올렸다. 북에서는 남에서보다 더 강도 높게 순화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성과의 한편으로 특이한 측면도 엿보인다. 한자어 접미사 ‘-적’을 자주 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판문점 선언문’에도 ‘OO적’이란 말이 모두 32곳에 나온다. 특히 남에서는 잘 쓰지 않는 ‘전환적 국면’ ‘실천적 대책’ ‘주동적 조치’ 같은 표현이 눈에 띈다.남쪽에선 어색한 접미사 ‘-적’ 용법‘-적(的)’은 문법적으로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격을 띠는/그에 관계된/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글쓰기와 관련해 남에서도 이 ‘-적’을 놓고 많은 검토와 논란이 있었다. 일찍이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은 순화 차원에서 대체어로 고유어 ‘-스런’(‘-스럽다’에서 파생된 접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 저술한 국어문법 대작 <우리말본>에서 그는 ‘과학적, 일반적, 역사적’ 같은 말을 ‘과학스런, 일반스런, 역사스런’ 식으로 바꿔 썼다. 하지만 ‘-적’과 ‘-스런’이 늘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 이런 시도는 실패했다.우리말에서 ‘-적’과 ‘-스럽다/-답다/-롭다’는 용법이 겹치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서로 배타적이라 이들을 구

    2018.05.2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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