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이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00일, "직장 내 괴롭힘 여전"…고용노동부 미온적 대응에 직장인들 '울상'



[캠퍼스 잡앤조이=김지민 기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하 괴롭힘 금지법)’ 시행된 지 100일이 지났다.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되고 100일이 지난 현재 직장인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법 시행일인 7월 16일부터 9월 3일까지 직장갑질119를 통해 제보된 상담사례는 총 3272건이었다. 이 가운데 괴롭힘 제보는 총 1698건으로 전체 제보의 51.9%를 차지했다. 법 시행 이전인 2018년 5월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자료에서 괴롭힘이 차지하는 비율(28.2%)에 비하면 1.8배 높은 수치다. 법 시행 이전 오픈채팅방에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제가 겪은 일(괴롭힘)도 해결이 가능한가요?”였지만, 법 시행 이후엔 “7월 16일 이전 괴롭힘에 대한 신고가 가능한가요?” “괴롭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을까요?”에 대한 질문이 늘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

직장 내 괴롭힘이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다른 근로자에게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ㅇ업무에 필요한 비품(전화기·컴퓨터 등) 미제공, 사내 인트라넷 접속 차단 등 업무수행 방해

ㅇ근로계약상 업무와 무관한 일을 정당한 이유 없이 반복 지시

ㅇ집단 따돌림, 업무수행과정에서의 의도적 무시 및 배제

ㅇ반복적인 개인적 심부름 등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부탁의 수준을 넘는 사적 용무 지시

ㅇ지속 및 반복적인 폭언, 욕설로 정신적 고통 유발

ㅇ폭행 또는 협박 등

*사내 메신저, SNS 등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경우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

*사용사업주도 파견노동자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로 인정될 수 있음

[현장이슈]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100일, "직장 내 괴롭힘 여전"…고용노동부 미온적 대응에 직장인들 '울상'



갑질 사실관계 입증 위해 ‘기록’·‘녹음’ 언급 늘어

장 내 괴롭힘은 사건의 특성상 기록이나 녹음 등을 통해 입증자료를 마련해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에 오픈채팅방과 이메일 제보로 ‘기록’과 ‘녹음’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키워드 분석 결과 직장인들에게 ‘기록’, ‘녹음’을 언급한 빈도는 2018년 동일시기에 비해 1.3~1.6배 늘었다. 신고를 염두에 두고 입증자료를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외 가장 많은 제보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퇴사시 실업급여 수급 가능여부’와 ‘신고절차 문의’ ‘괴롭힘 후 불이익’, ‘폭행과 폭언’ 등이었다. 고용노동부가 9월 5일까지 접수된 진정사건 656건 중에선 ‘폭언’(282건), ‘부당인사’(185건) 순으로 많았으며, 대부분의 사건은 조사 등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 고용노동부가 진정사건 379건을 분석한 결과,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 근로자에게서 접수된 진정은 159건(42.0%)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300인 이상 사업장이 102건(26.9%)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관계자는 체계적 인사관리가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구성원이 많은 대규모 기업도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많다고 분석했다.



#2019년 7월 17일 오픈채팅방

[ㅇㅇ] 질문이 있습니다. 법이 어제부터 시행됐지만 5월부터 지속적으로 당한 괴롭힘은 신고 못하죠?…기록을 해보니 월 평균 8회씩 당했습니다.

[ㅇㅇ]: 어제 오늘은 딱히 괴롭힘을 안 당했습니다. …이분들이 아시고 사전에 이렇게 집요하게 하신건지 법이 시행되고 나니 좀 잠잠하네요.

#2019년 7월 21일 오픈채팅방

[해보자]: 너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병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제와 법 시행이니 잘해주는 척 정말 속이 뒤집어져요ㅠㅠ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9년 7월 26일 오픈채팅방

[토깽]: 법이 생기고 나서 괴롭힘이 줄었네요ㅠㅠ 괴롭힘 줄어든 건 좋지만 괴롭힘 금지법 시행일 후 증거 확보해야 이전자료들에 대한 어느 정도 효력이 생긴다고 하는데 얄밉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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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피해 사례 속출… 대표가 가해자인 경우 등 한계점 있어

직장 내 괴롭힘 제보 사례 중 ‘대표이사(사장)’가 가해자인 사례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내에서 문제를 제기할 만한 통로가 차단돼 있는 실정이다. 문제를 공식화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대표이사가 고용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장기간 괴롭힘을 참고 버텨야 하는 경우가 아직 비일비재하다.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괴롭힘을 자중하더라도 신고자를 찾아내려고 하거나 업무를 빙자하거나 직위를 이용해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하는 등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


직장갑질119에 제보한 한 직장인은 회장이 직위를 이용해 전직원에게 여러가지 방법과 이유로 갑질을 해왔다며 "7월 이후 여러 건의 괴롭힘 신고가 접수됐지만 회장은 신고자를 찾아내려고 하면서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법 시행 이후에도 업무를 빙자하거나 직위를 이용해 수시로 심한 행동과 언사로 갑질을 일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에는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부하 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폭언을 퍼붓는 녹취파일이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공개된 녹취파일에서 권 회장은 자녀가 생일이라고 말하는 운전기사에게 오늘 내가 새벽 3시까지 술 먹을 테니까 각오하고 와요. (애가 생일이어서) 그럼 미리 얘기해야지 이 사람아. 바보같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을 못 받잖아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홍보 담당 직원에게 “애들이 패는 방법을 선배들이 안 가르쳐줬단 말이야. 네가 기자 애들 쥐어 패버려”라고 말하면서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한계

1. 대표이사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인 경우, 사내 자율적 해결이 불가능해진다. 노동청에 신고하더라도 개선지도 외에 추가적인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는 부재한 상황이다. 따라서 대표이사가 가해자인 경우 벌칙규정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

2.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대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적용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

3.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진정을 하더라도 법에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시정명령을 하는 것 외에 직접적인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다.

4. 취업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등을 필수적으로 기재하도록 법이 개정됐음에도, 여전히 개정하지 않거나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을 규정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

5. 노동자성이 문제되는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통해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고,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괴롭힘 행위에 초점을 맞춰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자료 제공=직장갑질119)

고용노동부의 부진한 대응이 문제?…“특별 제도 개선책 등이 필요”

2차 보복 피해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회의적인 응답과 부진한 대응을 문제 삼는 피해자들도 있다. 한 직장인은 고용부 지청에 사고접수를 하려고 했는데 무척 회의적인 답변을 받았다사업주가 괴롭히는 경우, 직접적인 처벌법이 없고 사업주가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성이 없어 방법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제보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어 고용부에 진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근로감독관은 괴롭힘으로 신고한 걸 회사가 알면 더 껄끄러워지니 원만하게 해결하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면서 근로자가 원하면 진정서에 대한 조서를 써줄 수 있다고 증빙할 수 있는 건 다 가져오라고 해놓고선 보지도 않더라며 토로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자에게 희망 고문하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공식 입장을 통해 ‘사업장 내에서 적절한 조사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2단계로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음’을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사건 조사 과정에서 대표이사가 출석 조사에 응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방안이 없어 조사 자체가 부실해질 우려가 있고, 가해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노동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예방 및 조치를 권고하는 정도에 그친다. 이에 대한 제재 방안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용노동부 처리기간이 늦는 이유에 대해 김효신 소나무노동법률사무소 대표는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대해 주관적 요소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실 업무상 적정범위에 대한 판단을 제3자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적인 시각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피해자들의 불만만 듣고 문제를 판단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개선 방안에 대해 김 대표는 “많은 기업이 사내고충처리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운영하고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대표이사가 정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그와 같은 환경을 갖추기 어렵다.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이나 대표이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경우는 고용노동부가 직접 판단하고 조치를 내려주도록 보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직장갑질119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조사와 시정은 일정한 역량을 투여해 실질적인 조사가 이뤄질 때 가능하다. 이러한 점에서 현행법 체계상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이 반복되면 결국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하여 개입할 동력을 찾지 못하게 돼 이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개연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제의 심각성과 규율의 필요성, 중요성에 대한 인식 개선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직장 내 문화와 소통구조, 업무처리 프로세스, 노사관계 등이 새롭게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행위를 법으로 규율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 직장 내에서 쉬쉬하며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던 상사의 폭언, 강요, 부당지시 등 행위를 법적으로 조치를 받을 수 있으니 근로자들에겐 숨통이 트이는 하나의 출구가 마련된 것이다. 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이 산업재해 대상에 포함된다는 점도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한 근로자들의 교묘한 수법, 갑의 위치에 있는 사용주들의 2차 보복 피해 사례 등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하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진정 사건 등에 대한 빠른 처리, 소규모 사업장을 위한 특별 신고센터 등 제도적 마련과 집중적인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다.


min5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