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조현주 기자]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불신의 시대라고 한다. 다르게 말하면 남을 믿는 게 힘들어진, 의심과 의혹을 눈초리를 먼저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뜻한다. 남을 믿는 게 왜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드라마와 영화를 압도하는 현실의 공포와 맞닿아 있어서 일까. 이런 시국에 믿음에 관한 영화가 출격을 앞두고 있다. 바로 강동원·신은수 주연의 영화 ‘가려진 시간’(감독 엄태화, 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이다.

외로운 소녀와 소년이 있다. 엄마를 잃은 후 새 아빠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은 귀신소환, 유체이탈, 지옥 등을 믿는 자신만의 공상에 빠져 지내는 소녀다. 그런 그 옆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만 고아인 소년 성민(이효제, 강동원)이 손을 내민다. 엄마의 죽음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았던 수린은 성민과 지내며 서서히 웃음을 찾아간다. 두 사람은 둘만의 암호와 둘만이 아는 공간에서 우정과 사랑을 넘나드는 풋풋한 감정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성민과 수린 그리고 친구들은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성민이 정체불명의 알을 깨뜨리고, 그 자리에 없었던 수린만 제외한 채 모두가 실종됐다. 며칠 뒤 낯선 성인 남자가 수린에게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성민이라고 밝혔다. 혼란스러웠던 수린이지만 성민을 믿고, 어른들에게 그가 성민이라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가려진 시간’은 믿음이 부재한 시대에 진정한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영화다. 수린의 계부는 물론 경찰, 성민을 길러준 보육원 원장까지, 모두 수린의 말을 헛된 망상으로만 여긴다. 극한의 상황에서 “제발 얘기 한번만 들어주세요. 한 번만 믿어주세요”라는 수린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그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수린의 믿음은 어디서 나온 걸까? 수린도 처음에는 성민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성민의 말을 들어줬다. 처음부터 거짓말이라고 그를 매도하지 않았다. 멈춰진 시간에서 외로웠고, 또 두려웠을 성민을 보듬어줬다.

엄태화 감독은 “의심하는데 익숙한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성민처럼 전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때 수린처럼 믿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데에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영화의 출발점을 이야기했다. 많은 이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건 아니다. “너만, 내가 나라는 거 알아주면 돼”라는 성민의 속삭임은 슬프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성민에게는 충만한 의미가 있었다.

‘가려진 시간’은 멈춰진 세계를 그린다. 기존 한국영화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소재인 만큼 낯설고 또 흥미롭다. 보름달이 뜨면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 이야기부터 멈춘 세계 속에 갇혀 살게 된 성민과 아이들의 모습은 신비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럽다. 성민이 갇혀 있는 공간은 집에서 TV를 보던 부모님도, 피자 배달을 하던 배달원도, 담벼락에서 뛰어 내리던 고양이도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공간이다. 소리도 없다. 가려진 시간에서는 오로지 성민과 친구들의 행동과 목소리만 있다. 단편 ‘숲’ ‘잉투기’ 등을 통해 평단의 호평을 받은 엄태화 감독은 첫 상업 작품에서 뒤틀린 시공간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때론 섬뜩하게 담아내며 왜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감독인지를 증명했다.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가려진 시간’ 스틸컷 / 사진=쇼박스 제공
강동원의 도전은 이번에도 옳았다.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10대의 감수성을 지닌 소년 성민으로 관객들을 판타지 세계로 이끌었다. 신은수는 강동원 만큼이나 아니 강동원을 뛰어 넘는 화제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다. 첫 영화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했다. 300대 1의 경쟁을 뚫고 강동원 옆자리를 차지한 그는 깊은 눈망울만큼 사연 깊은 수린 역으로 아련한 감수성을 드러냈다.

오는 16일 개봉. 러닝타임 129분.

조현주 기자 jhjdh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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