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한 강우석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강우석 감독은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를 촬영하며 그 자신이 고산자 김정호 선생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평민들을 위해 험한 삶을 살았던 김정호 선생의 발자취를 우직하게 따라가다 보니 촬영도 자연히 고생스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때 강 감독은 자신이 지금까지 언제 영화를 이토록 험하게 찍어본 적이 있나 스스로 반성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영화 슬레이트에 ‘강우석’이 아닌 ‘강산자’로 자신의 이름을 표기한 건 바로 그 순간부터다. 관객들이 ‘고산자’를 본 다음에는 자신이 지금까지 찍었던 열 아홉 편의 영화는 기억이 안 났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고산자’는 그에게 터닝 포인트였다. 이제 다시 신인 때처럼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친 강 감독을 만나 ‘강산자’로 살았던 이야기를 듣고 왔다.

10. 개봉 후 소감이 어떤가.
강우석: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관객들의 후기가 좋아 올 추석 연휴에는 즐거움이 생길 것 같다.

10.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 더욱 그렇겠다.
강우석: 그렇다. 직접 봤는데 단체 관람을 많이 오시더라. 중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오는 것도 많이 봤다. 영화를 보면 대동여지도를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으니까. CG 없이 백두산 천지의 절경을 담았기 때문에 어르신들도 자식들에게 많이 보러 가자고 하신다.

10. 원작 소설인 ‘고산자'(작가 박범신)의 어떤 것이 감독님 마음을 움직였나.
강우석: 소설이 문학적으로 깊이가 있어서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대동여지도를 빼앗으려는 목판 세도가들의 충돌이 발생하고, 이에 김정호 선생은 “당신들을 위해서 지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평민들, 정말 길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국토를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한 갈등이 굉장히 좋았다. 나도 그러한 의미가 담긴 김정호 선생의 지도를 학교에서 종이 한 장으로만 알았으니, 이 이야기는 영화로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영화화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겠다.
강우석: 드라마 40부작이면 하겠는데 내가 무슨 수로 2시간에 고산자의 이야기를 담아내나 싶었다.(웃음) 그래서 박범신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작가가 ‘고산자’를 영화화하겠다고 전화한 감독은 내가 7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면서 좋은 조언을 많이 해줬다. 그 장엄한 풍광들을 영화로는 담아낼 수 있지 않겠냐며.

10. 책임감도 무거웠겠다. 영화의 목표 지점을 어떻게 잡았나.
강우석: 엄청나게 무거웠다. 자칫 잘못하면 대동여지도와 김정호 선생 자체가 희화화돼버리니까. 또 청소년들이 영화를 보고 왜곡된 관점을 가지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약간 과장하더라도 훌륭하신 분으로 묘사를 하면서도 재미를 주는 것이 목표였다.

강우석 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강우석 감독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10. 김정호 선생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거듭 강조해왔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강우석: 김정호는 강한 자한테 강하고, 약한 자한테는 약한 사람이다.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가지기 쉽지 않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시대의 ‘기득권’과도 같은 대동여지도를 그 따뜻한 마음, 즉 애민 정신으로 나눠주려고 애썼던 거다.

영화를 본 어떤 젊은 여성이 나에게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똑 같은 삶이 느껴진다고 전하더라. 지배 계층은 뺏기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빼앗기고, 짓밟히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그 애환이 똑같이 느껴진다고. 그 여성의 직업은 백화점 판매직이었다. 내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이런 사회에는 김정호처럼 지배 계층의 입장이 어떻든 남을 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다.

10. 영화의 영어 제목도 ‘Map Against the World’, ‘세상에 맞선 지도’다.
강우석: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그 제목이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명확하게 요약한다. ‘세상’이라는 것이 공권력, 국가 권력이다. 현재 시대의 양반들이지.

10. 과연, 바우(김인권)가 세상에 맞서 대동여지도를 펼칠 때 눈빛이 인상깊었다.
강우석: 내가 무아지경인 상태에서 찍은 장면이다. 김인권도 그 신에 완전히 취해서 연기했다. 내가 김인권에게 ‘너는 이 신만 잘하면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더니 그 전날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다고 하더라. 정말 그 장면에서 김인권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스태프들, 보조 출연자들도 엄청 긴장해서 임했던 기억이 난다.

10. 그 즈음,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지켜보는 눈빛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강우석: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내가 못 알아봤구나’라는 통탄한 심정이었을 거다.

10. 인물도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 담은 한국의 절경도 장엄했다.
강우석: 실제로 현장에서 바라 본 나는 어떻겠나. 나는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 줄 몰랐다. 우리나라 곳곳이 비경이더라. 제주 송악산 위에서 바라본 마라도도 너무 예쁘고, 여주 여자만은 육안으로 봐도 절경이더라. 관객 분들이 영화에 나온 장소들을 쭉 훑어 보는 여행을 가셔도 괜찮을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됩니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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