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현지민 기자]
배우 김상호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김상호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한 작품의 주인공이 되면, 그가 짊어져야 할 짐이 있는 법이다. 그저 많이 얼굴을 비춘다고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끌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배우 김상호는 이렇게 얘기하며 주연 자리에 욕심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신뢰를 받길 바랐다. 김상호는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이하 특별수사)’에서 양 어깨 한 가득 짐을 얹고 진득하게 순태를 연기했다. 뚝심 있게 이야기를 끌고 갔고 믿음까지 전달했다.

10. ‘특별수사가 세상에 나왔다. 생각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어떤가?
김상호: 시나리오보다 훨씬 더 잘 나왔다. 시나리오는 많이 친절했다. 인물들 간의 관계를 일일이 이으려다 보니 늘어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걸 감독님이 멋있게 만들어 주셨다. 10년 만의 영화인데 아주 잘 했다. 하하.

10.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어땠나?
김상호: 관객들이 순태라는 인물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관객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나 스스로가 캐릭터를 믿는 거다. 나는 믿음이 있었다. 순태의 감정은 아주 명확했으니까.

10. 맞는 장면이 많았는데 부담은 없었나?
김상호: 맞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 단지 맞더라도 순태가 어떤 감정일지, 어떻게 표현하는 게 맞을지 고민이 많았다. 감독님이 맞으면서도 희망을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해서 극중 딸 동현이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던 기억이 난다.

10. 딸 동현이를 연기한 배우 김향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김상호: 영화 속에서는 동현이와 세 번 정도 밖에 마주치지 못 했다. 내내 감옥에 있었으니까. 하하. 향기는 차분하게 연기에 집중하는 배우다. 장난을 치다가도 연기가 시작되면 확 집중을 한다.

10. 김향기도 그렇고, 사실 김명민과는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김상호: 맞다. 김명민과는 오히려 영화를 마치고 친해졌다. 그래도 그와 유일하게 만나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고 가슴을 울린다. 대본을 읽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촬영이 시작되니 오히려 건조한 감정이 생겼다. 극중 순태와 필재(김명민)의 어색하면서도 아련한 마음이 그대로 생겼던 것 같다.

배우 김상호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배우 김상호가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서예진 기자 yejin0214@
10. 영화를 보면서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김상호는 그중 울다가를 맡았다. 기억에 남는 가슴 아픈 장면이 또 있을까?
김상호: 징글징글했던 장면은 있다. 유일한 사형수 동무를 연기한 이문식과 목욕탕에서 대결하는 장면이다. 밤새도록 촬영했다. 몸이 힘든 건 문제가 아니었다. 물 한 잔 마시고 5분 쉬고 나면 몸은 괜찮아진다. 그런데 감정을 쏟아내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더라. 그거 다 찍으니 제작진이 소고기랑 막걸리를 사줬다. 하하.

10. 그 장면 이후 교도관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김상호: 그게 순태의 명예였다. 죽음으로써 결백을 밝히겠다는 마음을 넘어 딸에게 당당한 아버지고 싶은 마음 말이다. 순태의 목표는 좋은 아버지였지, 누명 쓴 아버지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영화 후반에는 딸을 위해 죽을 결심을 한다. 내가 고집을 부리면 내 딸이 죽는다는데, 살 의미가 없는 거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보통의 아버지를 대상으로, 억 단위의 금액을 받으면 가족들을 위해 죽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반응을 보는 거였다. 그런데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더라. 이게 아버지다. 목숨과 돈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그래도 그 아버지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10. 순태를 연기하면서 집에 있는 자식들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김상호: 캐릭터에 빠져 연기를 하다 보니 ‘내가 순태의 상황이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종종 생각을 하곤 했는데, 만약 내가 순태와 같은 상황이면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것 같다. 나보다 순태는 더 강한 아버지다.

10. 캐릭터를 소화하는 능력이 좋은 것 같다. 생각해보면 야비한 역할을 할 때는 세상 야비했다.
김상호: 캐릭터가 배우에게 잘 맞는 것은 주변 환경의 몫이다. 어떻게 배우가 혼자 변신하고 만들어 내겠나. 연기는 서로의 감정을 꺼내놓고 함께 만들어 내는 거다. 내 감정만 고수하지 않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을 체득할 때 좋은 장면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시나리오가 탄탄하게 받쳐줘야 그 위에서 배우가 뛰어놀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현지민 기자 hhyun41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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