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를/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를/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팝의 전설’ 프린스(Prince)를 흠모한 청년, 를(LEL)은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선 것” 같았던 프린스를 좇아 악기를 연주했고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도 적었다. 시간이 흘러, ‘꿈’이었던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며 쉽지 않은 성과도 냈다. 음악을 향한 열정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려놓는 방법을 터득했다. 안간힘을 써서 쥐고 있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영감’이 올 때를 기다리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의 첫 마음처럼 ‘실험적인’ 음악에 도전하며, 또 대중들이 바라는 ‘이별의 정서’도 계속해서 읊을 생각이다. 그렇게, 지금처럼 여한이 없이 음악을 계속하는 것이 를의 바람이다.

10. 신곡 ‘나만 궁금한거니’를 발표했어요. 기존 를의 색깔과는 다른 느낌도 들고요.
를 : 만들어진 건 조금 됐어요. 지난해에 계속 슬픈 곡만 내니까 밝은 곡을 해야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계속 마음속에만 갖고 있다가, 4월에 발표하게 됐죠. 쓸 때 봄에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잘 맞는 것 같아요.

10. 마음속에 있었던 밝은 곡을 냈는데, 만족도는 어떤가요?
를 : 대중들이 저에게 기대하고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죠(웃음). 저의 곡 중에서도 특히 이별의 정서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정규 음반 발표 전, 밝은 노래를 하겠다는 마음은 조금 해소를 했죠.

10. 또 다른 계획이 있나요?
를 : 올가을에 정규 음반이 계획돼 있었어요. 머릿속에만 있고, 아직 녹음이 진행된 건 아니에요. 기존의 곡들을 묶고 새로운 곡도 섞어서 하나의 음반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10. 사실 요즘 가요계의 흐름으로, 정규 음반은 아까운 면이 있어요.
를 : 노출할 기회가 적으니까, 발표하고도 별다른 이슈 없이 지나가고. 마음이 아프죠. 정규 음반이 사라져버리니까 아쉽고요.

10. 같은 뮤지션의 입장이라면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를 : 쉽지 않은 싸움인 것 같아요. 음원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노출도 되지 않고, 금세 사라지는 음반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에 젖으면 작업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부담이 커지니까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서, 정규 음반 작업을 할 때는 외부적인 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만 생각하자고 마인드컨트롤을 계속 하죠.

10.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겠네요.
를 : 저뿐만 아니라, 아이돌 후배들도 심리적으로 큰 압박이 있는 상태에서 음악을 하더라고요. 그럴수록 음악이라는 행위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둬야 작업이 잘 이뤄지는 것 같아요.

10. 프로듀서로 다른 이의 곡을 작업할 때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나올 때는 느낌이 다른가요?
를 : ‘를’이란 이름 자체가 조사의 ‘를’에서 가져왔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자는 뜻에서 정한 거예요. 제 이름으로 발표할 때는 이어주는 조사가 앞으로 나오는 거니까, 기분이 색다르죠. 항상 뒤에서 작업하는 작곡자로서, 또 연주자로서 뒤에만 있다가, 조금 더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10. 평소 곡 작업 방식은 어때요?
를 : 예전에는 어떻게든 써내려고 노력을 했어요. 하루 종일 앉아 있을 때도 있었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어요. 어느 순간, 아무 소용이 없다는걸 확실하게 깨달았죠.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그저 기다리죠.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마음을 비우고, 마음이 생기길 기다리는 거죠.

10. 마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참 힘들겠어요.
를 :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요. 문득 이렇게 놓다가 죽을 때까지 안 써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죠. 그럴 땐 또, 그럼 뭐 쓰지 말지라고 마음을 먹는데 그렇게 하니까 편하더라고요.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에요. 흐르는 대로 써지면 쓰고, 아니면 말고요(웃음)

10. 그런 마음을 먹기까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를 : 경험으로 결론을 낸 건데, 억지로 써서 완성을 한 노래는 잘 안됐어요. 다른 아티스트에게 팔리지도 않고, 또 발표도 안됐죠. 잘 된 노래들은 모두 한번에 써진 거예요. 신기하게 대중들도 귀신같이 다 알아채는 것 같아요.

10. ‘나만 궁금한거니’는 어땠나요?
를 : 작사, 작곡은 하루 정도에 틀이 잡혔어요. 전체적인 멜로디 구성과 라인은 그랬고, 이후 수정 작업을 하는 식이죠. 대부분이 그래요.

10. 짧은 시간에 곡이 완성되면 쾌감이랄까, 희열이 있겠어요.
를 : ‘이번에도 잘 지나갔구나’ 싶어요. 정규 음반 계획이 있는데, 아직 전체적으로 곡이 안 나온 상태인데도 호기심이 생겨요. 기대도 되고요.

10. 원래 성격인가요, 아니면 음악을 하면서 변한 건가요?
를 : 원래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수년에 걸쳐서 변화된 것 같아요. 편해지고 싶어서(웃음). 히트곡을 많이 쓴 작곡가들도 스트레스가 많아요. 없을 줄 알았던 분들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똑같이 부담이 크고, 스트레스가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최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해야지란 마음이 들었어요.

10. 한걸음 떨어져서, ‘를’에 대해서도 기대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를 : 계속 궁금해요. 어떻게 될지 기대도 되고요. 과거를 돌아보면, 제가 지금처럼 음반을 많이 내고 다른 가수들과 꾸준히 작업하게 될지 몰랐어요. 어렸을 때 음악을 하던 친구들도 지금의 저를 보면 ‘홍대의 후미진 곳에서 어둡게 음악 할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해요(웃음). 저의 방향은 정해진 게 아닌 거죠. 하던 대로 음악 작업을 하다보면, 다른 외부적인 힘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 같아다. 그래서 기대가 됩니다.

10. 처음 음악을 했을 때와 지금, 어떻게 다른가요?
를 : 확실히 복잡해지긴 했어요.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요. 특히 다른 가수들과 작업하는 건 수익성과 연결이 돼 있다 보니까 더욱 그렇죠. 그럴수록 더 내려놔야 할 것 같아요.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중심을 잡고 음악에 집중하는 거예요.

10. 2PM의 곡을 만들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어요. 그것 역시 계획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많은 생각이 들었겠어요.
를 : ‘우리집’을 준케이와 같이 만들었어요. 사실 타이틀곡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하루 만에 스케치하고, 밤에 만나 새벽에 ‘미친듯이’ 완성한 곡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 신기하고 기뻤죠.

10. 그 경험이 또 다른 기대를 낳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를 : 물론 저도 기대가 생기죠. 성과들이 달콤하잖아요(웃음). 또 제가 낸 곡들이 별다른 활동 없이 이정도로 알려진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기쁘고요. 근데 그걸 유지하려고 하고, 비슷한 성과를 내려고 기대를 하면 막히는 느낌이 들어요. 설령, 이게 마지막 성과라고 해도 좌절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또 다잡죠.

10. 음악을 하면서 성격도, 생각도 변했네요. 음악을 업으로 삼을 줄 알았나요?
를 : 대학 때 밴드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대중음악을 해야겠다든지, 그런 마음은 없었는데 그냥 흘러갔어요. 자연스럽게. 작곡가 선배들의 권유로 피아노 세션을 하고, 스트링 편곡을 맡으면서 곡을 쓰게 됐어요. 그렇게 흘러왔어요.

10. 지금 스스로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겠어요.
를 : 업으로 할만한 자신도 없었고, 당시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긴 했지만 용기가 없었죠.

를/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를/사진제공=플럭서스뮤직
10. 음악을 해야지, 하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를 : 20대 초반에 프린스에 심취했어요. 그 사람의 노래는 물론, 살았던 흔적들을 찾아봤는데 정말 멋있는 거예요. 인간이 아닌 것 같았죠. 사람이 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구나, 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는 생각이들었어요. 대중적이지 않고 실험적인 음악을 하면서도,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연주도 뛰어나고 작곡가, 가수로서도 존경할 만큼 빠져들었죠. 꿈이었어요. 프린스처럼 되는 게. 그러면서 악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다양한 악기들을 배웠어요. 지금도 음악을 하다 힘들 때마다 프린스의 음악을 들으며 힘을 얻어요.

10 : 음악을 직업으로 삼으니, 달라지는 것들도 꽤 있겠죠.
를 : 사실 연주는 하면서는,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서 어느 정도는 내려놨어요(웃음). 예전에는 프린스처럼 되고 싶어서, 시간을 할애했죠. 순간, ‘나는 프린스가 될 수 없구나’를 깨닫고 더 이상은 불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하는 방향으로 선회를 했죠. 연주를 잘하는 분들과 녹음 작업을 하고, 색깔 있는 친구들과 음악을 만들고요.

10 : 협업이라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잖아요.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요.
를 : 맞아요, 힘든 작업이에요. 혼자라면, 결과물이 어떻든지 혼자 결정하면 되는 거죠. 서로 마음을 맞추며 끌고 가야하죠. 상대방에게 맞춰도 아쉬운 부분이 생기고요. 가장 중요한게 조율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서, 최대의 장점을 끌어내 곡에 투사되도록 하는 거죠. 배려하면서 조율하는게 관건인 것 같아요.

10 : 협업의 장점이 분명 있죠.
를 : 협업을 해보니까, 혼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곡들이 있어요. 작업을 할 때 호흡이 잘 맞는다면, 속도도 빠르고요. 협업이 지닌 위험성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풀린다는 전제 아래 제가 갖고 있지 않은 강력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게을러지는 것도 막을 수 있고요.

10. 음악을 만드는 게 점점 어려워질 것 같아요. 빠르게 변하는 유행도 그렇고, 또 표절이라는 것도 늘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고요.
를 : 크게 부담은 안 느꼈어요. 거의 모든 곡을 새롭게 만들고 스케치를 하거든요. 그럼에도 기존의 것이란 생각이 들면 아예 놔버려요. 창작의 가장 핵심은 새롭게 만드는 것이니까, 그런 부담은 항상 있죠.

10. 뮤지션으로서, 한국에서 음악 하는 게 쉽지는 않죠.
를 : 고충이 있어요.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거지만(웃음), 그럴수록 내려놓아요. 곡 작업을 할 때는 현실 감각을 떨어뜨리자는 주의예요. ‘현실이 아니야’라고 되뇌고, 꿈속에 있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10. 스트레스가 꽤 쌓을 것 같은데(웃음), 푸는 방법이 있나요?
를 : 복싱을 해요. 프로복서 자격증도 취득할 만큼 심취했죠. 어렸을 때 시작했는데, 잘 맞아서 빠져들었어요. 지금은 쉬고 있어요. 여행을 가기도 하고요.

10. 여행을 하는 동안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나요?
를 : 영감은 안 떠오르고요(웃음). 기대하면서 여행 간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에서 떠오르는 게 음악으로 이어지죠.

10. 여행 스타일은 어떤가요, 철저한 계획파?
를 : 계획 없이 떠나요. 몇 년 전에는 작업실에 가는 길에 북한산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길로 방향을 바꿨어요. 북한산에 도착한 뒤에는 칠갑산이 떠올라서 갔고, 또 계룡산까지(웃음). 일주일 정도 그렇게 산을 돌았어요. 일주일 정도였는데 옷도, 세면도구도 사서 그렇게 돌아다녔어요.

10. 정말 즉흥적이었네요(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나요?
를 : 계룡산에서 품바쇼를 봤는데,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산 밑에 진흙으로 만든 찜질방이 있더라고요. 추천합니다(웃음).

10. 쉽지 않겠지만, 음악을 할 때 이것만은 지키고 가야겠다는 무엇이 있다면요?
를 : 같은 맥락인데, 무조건 행복하게 만들어야 해요. 우울하게 음악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10. 꿈이 있나요?
를 : 가장 정점인 꿈은 이뤘죠. 이제는 비슷한 색상인데 발표되지 않은 곡들이 있어요. 실험성이 가미가 된 곡들도 공개하고 싶어요. 그전에 대중들이 저에게 바라는 슬픈 이별의 정서의 곡들도 많이 발표하고 싶습니다. 데뷔 음반에 대한 애착이 있어요.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의견이 분분한 음반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설레고 벅차요. 그런 색상의 음반을 발표하는 게 꿈이에요.

10. 같은 흐름일 수도 있겠지만, 올해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요?
를 : 여러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대부분 이룬 것 같아요. 올 초 작업실을 만들었고, 거기서 곡 작업을 하고 있어요. 좋은 가수들과도 꾸준히 작업하고, 음반도 발표하고요. 저는 다 이뤘다고 생각해요(웃음). 데뷔 음반을 냈을 때 ‘이제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지금부터는 덤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활동하려고요. 어떤 형태로든 계속해서 음악을 하고 싶어요.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