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BATMAN v SUPERMAN

BATMAN v SUPERMAN

(*영화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배트맨: (슈퍼맨을 주먹으로 갈기며)이 새끼, 죽어!
슈퍼맨: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윽…마사를 구해야 해…
배트맨: 응? 마사? 마사 이야길 왜 해? 왜 하냐고~ 이 자식아!!
슈퍼맨 여친: (느닷없이 나타나) 마사는 그의 엄마에요!
배트맨: 응? 엄마 이름이 마사야?
슈퍼맨: (긍정의 표정)
배트맨: (폭풍 동요) 이럴 수가. 우리 엄마랑 이름이 같아. 같이 살리자.
슈퍼맨: 난 악당을 맡을게, 넌 엄마를 구해줘.
(중략…)
배트맨: (슈퍼맨 엄마 마사를 구한 후) 전, 아드님 친구입니다!

결코 콩트가 아니다.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일명 ‘마사 구하기’의 한 장면을 살짝 비틀어서 써 본 대화다. 영화 내내 죽일 것처럼 싸우던 배트맨/브루스 웨인(벤 애플렉)과 슈퍼맨/클락 켄트(헨리 카빌)가 엄마 이름 하나로 갈등을 봉합하고, ‘절친’이 되는 상황. 혹자는 이를 두고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I am your father(아임 유어 파더)” 못지않은 반전이라 했고, 누군가는 올해의 노벨평화상은 ‘마사’에게 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DC의 얼굴마담 배트맨과 슈퍼맨이 집안싸움을 벌이다가, 힘을 모아 함께 적을 무찌르는 영화다. 이런 플롯을 채택한 서사에서는 ‘두 영웅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그런 그들이 관계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의 치밀함이 서사적 설득력의 관건이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영화는, 잭 스나이더의 전작 ‘맨 오브 스틸’(2013)의 마지막 장면인 ‘메트로폴리스 전투’를 적극 차용함으로써 해결하려 한다. ‘맨 오브 스틸’이 슈퍼맨의 입장에서 그의 행동을 영웅으로 그려냈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우주인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지구인들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배트맨의 시선을 담아냄으로써 두 영웅의 갈등을 조장한다. 이견은 존재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두 히어로의 싸움에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제 후자를 해결해야 한다. 아마, ‘배트맨 대 슈퍼맨’의 각본을 담당한 크리스 테리오(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아르고’ 작가)와 잭 스나이더 감독은 이를 두고 머리를 싸맸을 것이다.

# ‘배트맨 대 슈퍼맨’에는 세 명의 ‘마사’가 있다?

배트맨 대 슈퍼맨

배트맨 대 슈퍼맨

자,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명의 마사를 소환해야 한다. 바로 잭 스나이더의 모친. 흥미롭게도 감독의 엄마 이름 역시 마사(Marsha Manley)다. 그러니까 ‘배트맨 대 슈퍼맨’에는 세 명의 마사가 연관된 셈이다.

그렇다면 상상을 하게 된다. 잭 스나이더에게 익숙한 마사라는 이름이 이번 시나리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일각에서는 ‘잭 스나이더와 크리스 테리오가, 두 히어로의 싸움의 종지부를 어머니 이름이 같기 때문으로 끝내기 위해 슈퍼맨 어머니 이름을 원작(원작에서 슈퍼맨 엄마의 이름은 메리, 배트맨 엄마의 이름은 마사다)과 다르게 일부러 바꿨던 것 같다’고 하는데, 이는 정황상 큰 설득력이 없다.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2006) ‘맨 오브 스틸’ 등 앞선 ‘슈퍼맨’ 영화들에서도 슈퍼맨 엄마의 이름은 마사였으니, 잭 스나이더가 두 히어로의 싸움 해결을 위해 슈퍼맨 엄마 이름을 바꿨을 것이란 가설을 불가능하다. 다만 꾸준히 사용돼 온 마사라는 이름이, 게다가 감독의 엄마와 같은 이름이, ‘배트맨 대 슈퍼맨’ 각본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충분히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엄마바보’ 배트맨과 슈퍼맨

두 영웅의 화해에 ‘엄마’라는 존재를 끌어들인 것은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고 본다. 엄마와 아들은 대개의 경우 애인 같은 관계다. 프로이트의 해석을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독특한 긴장감이 모자 관계에는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마더’를 만들 때 “아들은 엄마에게 뱃속에서 10달을 데리고 있다가 내보낸 최초의 이성 아닌가”라고 했는데, 이를 뒤집으면 아들에게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만난 최초의 이성이다. 많은 영화들이 모자관계의 심리를 끊임없이 소환한 것도 바로 이 때문. ‘배트맨 대 슈퍼맨’이 이를 사건 해결을 위한 카드로 사용하려 한 것은 충분히 말이 된다는 의미다.

배트맨 대 슈퍼맨

배트맨 대 슈퍼맨

마침 두 영웅의 엄마 사랑은 익히 알려진 바가 크다. 지구인 보호를 캐치플레이처럼 내걸었던 슈퍼맨은, 정작 엄마를 구하기 위해 악당과 싸우는 도중 무고한 시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 하나를 날려버리는데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던 과거가 있다. 아, 엄마 바보.

배트맨의 엄마 사랑은 더 유별나다. 배트맨 자체가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부모님이 갱에 의해 살해된 장면을 직접 목격한 소년 브루스 웨인의 트라우마로부터 기원했기 때문이다. 부모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이로 인해 평생 고통 받았던 배트맨에게 또 한 명의 마사를 직접 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를 구원하는 것은 작가들에게 여러모로 흥미로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배트맨이 슈퍼맨의 “마사가 위험해, 먀사를 구해야 해”라는 말에서 솔깃한 것은 ‘마사’보다는 ‘구해야 해’일지도 모른다. 매일 밤 마사를 구하는 꿈을 꿨을 배트맨은 더 이상 슈퍼맨과 싸우는데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다. 그의 평생의 꿈, 마사를 구할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배트맨 대 슈퍼맨

그러니 두 영웅이 엄마 이름 아래 대동단결하는 것은 충분히 노릴법한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잭 스나이더가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러한 의미를 충분히 살리는데 실패했다는 것에 있다. 좋은 이야기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사건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과 동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은 캐릭터들이 사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게 아니라, 기능적으로 소모된다. 반전을 지정해 놓고 그에 맞춰 캐릭터와 사건을 억지로 짠 느낌이랄까. 동명이인이라는 설정 하나로 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일찍이 제거한 것 역시 유감이다. 정의에 대해 각기 다른 신념을 지닌 두 영웅의 차이점을 보다 풍부하게 요리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는 재빨리 갈등을 단선적으로 봉합하고 마사 구하기로 몰고 갈 뿐이다.

그 결과, ‘배트맨 대 슈퍼맨’은 할리우드 대자본으로 만든 가장 기이하고도 값비싼 형태의 ‘효도 영화’가 되고 말았다. 이런 멋진 캐릭터들과 매력적인 배우들과 거대 자본을 가지고 ‘효도 영화’를 만들어버렸으니, 잭 스나이더는 유죄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코리아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