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지윤호03
지윤호03
달라도 너무 다르다, 지윤호를 처음 본 순간 짧은 이 한 마디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자신을 향한 칭찬이 익숙지 않은 듯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고, 쑥스러워하며 연신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이런 순한 미소에 ‘욕 유발자’ 오영곤을 숨겨뒀을 줄이야. tvN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 속 오영곤과는 180도 다른 배우 지윤호의 발견은 사뭇 짜릿하기까지 하다.

배우 지윤호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MBN ‘갈수록 기세등등’으로 제목처럼 ‘기세등등’하게 주인공으로 데뷔했지만 그의 배우 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약 4년의 긴 시간 동안 수없이 좌절과 시련을 겪은 지윤호의 노력은 마침내 ‘치인트’를 만나 그 싹을 틔웠다. 캐스팅부터 온갖 화제를 몰고 다녔던 엄청난 드라마에 캐스팅됐지만 지윤호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커서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첫 번째였다. 그 다음이 내가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다니 너무 벅차고 감사하고 신기하다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겨우내 단련을 마치고 이제 막 움튼 싹은 따뜻한 볕에 금세 반짝 고개를 돌리지도, 그렇다고 추위에 쉬이 수그러들지도 않는다. 시련은 그렇게 지윤호를 단단한 속내를 가진 배우로 성장시켰다.

‘치인트’에서 지윤호를 더욱 주목하게 만든 것은 그야말로 웹툰을 찢고 나온듯한 외모 싱크로율.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수식어는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오영곤은 지윤호를 꼭 닮아 있었다. 심지어 오영곤 캐릭터 표현을 위해 눈 아래에 화장을 했다고 생각한 부분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원래 내 눈”이라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100% 닮았다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촬영하기 전에도 50%는 닮았지만, 50%는 연기로 채우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거든요. 사실 오영곤과 조금은 닮아서 이득은 봤다고 생각하지만요(웃음). 웹툰 그리신 순끼 작가님께 너무 감사드려요. 의도하진 않으셨겠지만 찢어진 눈이 저랑 많이 닮았대요(웃음). 혹시 제 첫인상이 너무 무뚝뚝해 보이나요? 너무 눈매가 날카로워보여서 성격이 나쁘다든가, 말 걸기 힘들 것 같다는 얘기를 가끔 듣거든요. 하지만 사실 실제 지윤호는 2% 부족한 허당이고, 그렇게 멋있거나 그런 사람도 아니랍니다. 정말 그냥 해맑은, 얼굴과는 전혀 맞지 않게 어리바리한 모습도 있는, 그냥 귀여운 남자?(웃음). 앞으로 다양한 면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윤호04
지윤호04
‘치인트’에서 오영곤이 ‘모든 여자가 날 사랑하고, 사랑해야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허세남이었다면, 오영곤을 연기하는 지윤호는 정확히 그 대척점에 서 있다. 배우의 길을 좇을수록 이 길이 과연 진짜 내 길일까, 매일 엄습했던 두려움을 이기고 6년차 배우가 된 지금, ‘치인트’ 오영곤으로 응답받은 지윤호는 “잘한 것이 아니라 잘 감춰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지금도 그렇고, 하루에도 수만 번씩 배우가 내 길일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디션만 가도 잘 생기고, 키 크고, 예쁘고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연기로 먹고 살 수 있는 배우는 소위 몇 퍼센트도 안 된다고 하는데.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관심도 좋다기보다는 그저 감사해요. 이러다가 내 인생에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버려지는 건 아닌가, 매일 걱정하면서 살던 때가 있었죠. 연기 아니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런 걸 이겨내면서 단단해진 것 같아요. 요즘도 멘탈이 강하진 않지만요(웃음). 좀 빨리 극복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이번에도 제가 연기를 잘 한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저 잘 감춰졌구나, 잘 포장됐구나 생각하지. 칭찬받을 만큼 그런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항상 두려워요. 대중의 평가는 냉정하니까. 그래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같아요.”

‘치인트’ 속 오영곤은 짜증과 욕을 부르는 ‘구타 유발자’ 그 자체.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지윤호는 소년처럼 쑥스러움을 타다가도 카메라 앞에 서자 눈빛이 이내 돌변했다. 연기에 관한 질문에서는 끝없이 진지하다가도 쓸데없는 질문에 승부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자신에게 한없이 냉정하다가도 날 한 번 믿어보라는 자신감을 담은 묵직한 강속구를 던지는 지윤호, 점점 이 배우가 가진 깊이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윤호, 느낌, 있다.

“느낌 있다는 말 정말 좋아해요. 사람을 보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뭔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게 있는 느낌이요. 정말 그런 사람,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매력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연기 잘한다는 말은 배우라면 당연히 너무나도 듣고 싶은 말이고요. 신인 연기자 입장에서는 연기 잘한다는 말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지만, 제가 감히 들을 수 있을까요(웃음) 노력해야죠. 일단 현장에 잘 녹아드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생긴 건 세게 생겼지만 정말 여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정말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거든요. 제 안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캐릭터들이 몇 개 있어요. 절 조금만 지켜봐 주신다면 후회 없이, 무슨 역할이든 정말 제대로, 풍부하게 만들어서 보여드릴 테니까 관심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관심 안 주시면 관심 받게 열심히 하겠습니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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