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빌리카터
빌리카터
수많은 록 밴드 가운데 정상의 범주에 드는 팀이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그 중에서도 빌리카터는 단연 시선을 끌었다. 비단 이들이 맥도날드 아저씨 분장을 노래를 부른다거나, “네가 내 뇌를 먹었어(you ate my brain)”이라는 괴상한 가사의 노래를 부르며 바닥에 드러눕기 때문만은 아니다. 빌리카터가 특별했던 건, 관객들을 단숨에 흥분시키는 능력이 단연코 압권이었기 때문이다.

일렉 기타를 내려놓은 뒤에도 이들의 능력은 유효하다. 아니, 더욱 업그레이드됐다. 지난 12일 발매된 EP ‘더 옐로우(The Yellow)’를 들어보라. 첫 곡 ‘데스레터(Death Letter)’를 시작으로 처연한 분위기의 ‘페인리스(Painless)’, 야하고도 흥겨운 ‘아이 러브 유(I Love You)’와 ‘프렌치 보이(French Boy)’, 흡사 자장가를 들려주는 듯한 ‘트래픽(Traffic)’에 이르기까지, 빌리카터는 섬세한 굴곡을 빚었다.

10. 빌리카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당연히 외국 팀일 거라고 생각했다.
김지원 : 장난스럽게 시작한 이름이다. 정형화된 이미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어쿠스틱 기타로 블루스를 연주하는 영미권 뮤지션을 가상으로 설정해놓고, 그 사람에게 빌리카터란 이름을 붙였다.
김진아 : 백인에, 뚱뚱하고, 나이도 많고, 지저분한 수염을 방치해놓고, 벙벙한 청바지를 입는, 그런 이미지의 인물이다.

10. 어떻게 팀을 꾸리게 됐나.
김진아 : 나와 김지원은 대학교 친구였다. 재미 삼아 합주를 하기도 하고 음악적인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다가 내가 지원이에게 영국에 가자고 제안했다. 오래 머물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걸 즐기자고. 김지원은 “이왕 갈 거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지내는 게 어땠냐”고 해서,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했다.
김지원 : 여행 때문에 결성한 팀이니까, 수순대로라면 한국에 돌아온 뒤 해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의 짧았던 국내 활동을 기억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공연 섭외를 해오더라. 그렇게 1년 정도 활동을 이어가다, 진아가 드러머 이현준을 추천해서 3인조 체제가 됐다.

10. 영국에 처음 가자고 마음먹었을 때의 나이가…
김지원 : 갈 준비를 했던 건 스물일곱 살 때이고, 영국에 간 게 스물여덟? 영국에서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냈다.

10. 일반적으로는 취업 압박이 심한 나이다. 상당한 각오 없이는, 영국행을 결정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지원 : 삶에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 전까지는 나름 열심히 톱니바퀴 중에 하나가 돼 살던 삶이었다. 영국에 간 것은 평범한 생활을 포기하게 된 전환점이었다. 굳이 정해진 시간의 속도대로 맞춰서 사는 것보다는, 모든 쓸 데 없는 부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게 정신적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10. 오. 영국에 가기 전엔 퍽 평범하게 지냈나 보다.
김지원 : 그렇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고. 물론 지금도 돈을 벌기는 하지만, 그 때는 좀 더 세상의 시선이라든지, 사회인으로서 강요받는 속도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도 했고, 돈도 모았고. 그런데 그걸 영국에서 탕진해버리면서, 잘살든 못살든 음악에 좀 더 올인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김진아 : 나는 평생 사람들이 말하는 식으로 살아본 적은 없었다. 가능하면 하고 싶은 걸 해오면서 살았고, 살고 싶다. 사실 영국에 있었던 1년이 길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도, 돌아오고 나니까 많은 변화가 느껴졌다.

10. 왜 굳이 영국을 골랐나? 연고가 있는 곳이었나?
김지원 : 알다시피 훌륭한 뮤지션들도 많고, 록의 고장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만큼 음악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영어권 나라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다. 1년 안에 새로운 언어를 마스터해서 지내는 건 불가능하니까. 가장 중요한 건 유럽을 돌아다니기가 쉬웠다는 점이다.

10. 말한 대로 영국엔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많다. 밴드를 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로 돌아온 후에 환경이 좀 척박하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진아 : 얼마 전 타계한 데이빗 보위같은 경우도, 그들은 그냥 집에 있는 앨범 중에 하나인 거다. 부모님이 듣던 아티스트가 데이빗 보위가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게 정말 드물지.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기보단, 그냥 다른 문화다.
김지원 : 음악적인 활동 범위에 있어서 인프라가 좀 더 낫지. 록스타가 된다는 건 이 사실 어느 나라나 힘들다. 그런데 영국은 음악을 접하는 게 친숙하다보니까, 그만큼 밴드가 많다. 한국에도 정말 좋은 뮤지션들이 많은데, 뮤지션이 관객보다 많다는 게 문제지.(웃음)
김진아 : 듣는 사람이 다른 느낌이다.
김지원 : 느끼기엔 굉장히 다르다. 하지만 음악을 판매한다는 목적보다는 내 자신의 만족 혹은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해소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실제로 더 즐겁기도 하다.

빌리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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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첫 EP 발매 후 매우 즉각적으로 호평이 쏟아졌다. 기분이 어땠나?
김지원 : 정규 앨범도 아니고 EP앨범인데, 다들 그렇게 좋게 평가해줘서 우리도 신기했다. 첫 EP는 3인조 결성 후 달라진 사운드를 보다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만들었다. 굳이 콘셉트라고 하자면, “안녕하세요, 우리는 빌리카터입니다.”

10. 강렬한 일렉 기타가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어쿠스틱 밴드에서 출발했다면서.
김지원 : 당시 셋리스트는 ‘뭐야 저게?’ 싶을 정도로 어쿠스틱스럽지 않았다. 사람들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시끄러운 노래도 있었고. (10. 어쿠스틱 악기로?) 그래서 더 이상했겠지. 하하. 풀 밴드로 때려 부수면 안 이상했겠지만, 기껏해야 통기타와 탬버린 들고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거다. 그런데 현준이가 합류하면서 퍼커션 연주가 들어간 게 사운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번 앨범에는 가장 어쿠스틱스러우면서도 3인조의 사운드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곡들을 골라서 수록했다.

10. 이현준이 합류하면서 작업 방식이나 연주에도 변화가 생겼나?
김지원 : 자기 몫은 각자 알아서 한다. 합주를 하는 동안에 충분히 맞춰보고 공연을 하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편곡은 공연을 하면서 이뤄진다. 공연 중 집중된 상태에서 기분에 따라 연주를 하는 게 조금씩 굳어가면서 편곡의 형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음번 공연할 때 기분에 따라서 연주가 달라지기도 하고. 사실 3인조라고 해서, ‘너 이거 해’ ‘너는 저거 해’ 하는 게 부분이 서로 간에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그렇게 큰 차이는 못 느낀다.

10. 앨범 얘기를 해보자. 타이틀곡 ‘아이 돈 케어(I Don`t Care)’부터. 전작과의 연결을 도와주는 트랙이 아닐까 싶다.
김진아 : 제일 쉽게 우리를 떠올릴 만한 곡이 아닐까. 가사도 그렇고, 곡 자체가 그냥 “네 이름이고 직업이고 상관없어. 네 걸 가져”라는 짧은 메시지다.

10. 그 “아이 돈 케어”라는 메시지가 굉장한 무관심일 수도 있고 엄청난 관용일 수도 있다.
김진아 :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지. 나 같은 경우는 실제로 그 사람의 나이도 직업도 색깔도 상관없다. 그런데 누가 한 마디씩 시작하면, 다들 거들잖아. “너 몇 살이야”부터 시작해서…. 그러면 난 옆에서 그걸 들어야 하고. 안 좋은 습관일 수도 있는데, 그냥 들은 걸 포맷 시켜버린다. 이름부터 까먹고 ‘그냥 사람이다~ 나랑 같은 사람이다~’ 생각한다.
김지원 : 사람들이 너무 명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사실 아이덴티티는 정말 중요하잖아. 우리가 음악가고,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당연히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형화된 뮤지션의 모습을 정해놓고 거기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음악인이라면 이래야지, 여자라면 혹은 성인 남성이라면 이런 건 책임질 수 있어야지. 그런 것들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10. 반면 마지막트랙 ‘트래픽’은 자장가 같은 느낌이 든다. 가사에는 영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러분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김지원 : 삶에서.(웃음)
김진아 : 나한텐 자연도 되게 크다. 하늘이라든지, 나무라든지, 모든 것들? 한 번은 건축을 공부하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인위적이라는 게,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인데. 사람이 만든 게 과연 인위적일까?” 그것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더라. 우리가 만든 것도 다 자연의 일부이지.

10. 비슷한 맥락인지 모르겠는데, 흔히 기교 없는 노래를 두고 ‘정직하다’는 식의 가치평가를 하잖아. 상대적으로 기교가 들어간 보컬은 평가 절하되는 감이 있고. 개인적으로 그게 늘 불만이었다.
김지원 : 사람이 호르몬이 있잖아. 나는 어렸을 땐 ADHD가 있었는데, 좀 심했다. 키우기 힘든 애였지. 감정 변화도 심하고 변덕스럽고 하루 종일 가만히 있을 때가 없었대. 크면서 다리 떠는 습관 빼놓고는 다 사라진 것 같은데, 어쨌든 그런 과잉행동조차도 호르몬으로 인해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것들이잖아. 때론 평평한,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오히려 인위적일 수도 있다.

빌리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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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 번째 트랙 ‘페인리스’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같은데, 맞나?
김진아 : 어떤 친구가 있었는데 되게 아팠다. 아파서 죽었다. 그 뒤에 그 곡이 나온 거다. 그런데 죽음에만 집중했기보다는 그냥 나를 위해 쓴 곡이다.

10. 그래서일까. 처음 곡을 들을 때에는 굉장히 우울했는데, 다 듣고 나니 뭔가 후련한 기분이 들더라.
김지원 : 가사도 그렇고 기타의 라인도 그렇고, 마냥 슬프다고 말하기엔 무척 아름답다. 개인적으로 그 곡의 인트로 기타 라인을 무척 좋아한다. 그 라인도 그렇고 가사도 그렇고, 내가 남한테 하는 얘기라기보다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는 얘기처럼 들린다. 내가 상실감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해주는.
김진아 : 어떻게 보면 내게는 그 친구가 주고 간 선물 같은 곡이다. 정말 밝고 따뜻한 친구였다. 사실 오랫동안 못 봤는데, 부고를 듣고 옛날 기억들이 찾아오면서, (노래가) 들리기 시작했다.

10. 반대로 ‘아이 러브 유’는 굉장히 섹시한 느낌의 노래다. 그런데 예전엔 사랑 노래는 안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나?
김지원 : 그 땐 사랑 노래를 안 하고 싶은 기분이었나 보다. 하하.
김진아 : 우리가 노래한 게 꼭 연인만의 사랑이란 법은 없지.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김지원 : 밴드는 대부분 자신의 경험에 빗대서 곡을 쓰잖아.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이 “‘아이 러브 유’는 누구를 생각하며 쓴 거야?”라고 물어본다. 그 때마다 장난으로 ‘대상이 없다’ ‘연예인이다’고 대답했는데, 가사의 아이디어는 엄마에게서 얻었다. 우리 엄마가 많이 만지는 사람이거든.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눕혀놓고 온 몸의 냄새를 맡았단다. 아기 냄새를 너무 좋아해서. 그리고 하루 종일 손가락 발가락을 물고 빨고 했대. 그런 몸의 접촉에서 오는 사랑의 감정, 그리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이 육감적이면서도 굉장히 섹시한 이미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렇다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 곡은 아니고, 대상이 없이 그 이미지와 감정만 가져왔다. 내가 무언가를 보거나 어떤 대상을 보면서 느끼는, 더 가까워지고 만지고 싶은 욕망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10. 섹시한 느낌은 ‘프렌치 보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김지원 : 반쯤 장난으로 쓴 곡이다. 런던에 있을 때 같이 어울리던 프랑스 출신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꿈이 파일럿이었는데, 어느 날 뉴질랜드로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더라. 런던에서 산 싸구려 기타로 굿바이 송을 선물하려고 가볍게 쓴 건데, 쓰고 나니까 가사가 되게 러브 송 같더라.(웃음) 아마 평생 다시 못 볼 친구란 걸 알았던 것 같다. 다들 짧게 외국에 나와 있는 동안 만난 거였으니까.

10. 이 곡은 공연을 할 때에도 무척 재밌을 것 같다.
김지원 : 사실 그 곡의 포인트는 마지막쯤에 나오는 진아의 코러스다.
김진아 : 그 때 얘가 만든 곡을 듣고 기타를 치는데, 엄청 순수했던 마음이 느껴졌다. 그걸 노래로 잘 만들어주고 싶었다. 잘 듣겠지?

10. 마지막으로 첫 트랙 ‘데스 레터’는 선 하우스(Son House)의 곡을 리메이크했다. 앨범 소개를 보니, 이 곡이 음반의 정서를 하나로 연결시키는 곡이라고 하더라.
김진아 : ‘데스레터’가 나와 지원의 연결고리가 된 곡이다. 선 하우스의 노래가 기교가 뛰어난 것도 아닌데, ‘이걸 어떻게 만들지’라는 고민을 몇 년 동안 했다. 거의 3년에 걸쳐 결과물이 나왔다.
김지원 :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해오고 있는 첫 커버곡이다. 공교롭게도 서로 다른 버전의 ‘데스레터’를 듣고 합주했는데, 그 안에서 우리만의 색깔이 나왔다. 가사가 굉장히 무겁지만 개인적으로 따뜻하다고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내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이잖아. 너무 슬프지만 인간미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 따뜻한 이야기가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고.

10. 선 하우스는 델타 블루스의 명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빌리카터의 음악 역시 블루스로 구분되고. 리스펙(respect)의 의미도 있을 것 같고, 장르적인 색깔을 뚜렷하게 짚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짐지원 : 당연히 리스펙의 의미는 담겨 있지. 그렇다고 해서 트리뷰트의 느낌은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우리가 좋아서 한 곡이고 오래 해온 곡이다. 하지만 ‘우리는 블루스를 하는 밴드야!’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곡도 아니다.

10. 블루스라는 장르는 워낙 정신 혹은 영혼이 많이 강조되는 음악이다. 한(恨), 고통, 저항과 같은 것들.
김진아 : 음, 내가 생각하는 블루스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진실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느껴진다. 게다가 초기 블루스는 딱히 정해진 형식도 없다. 우리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하고 싶다.
김지원 : 흔히 알고 있는 블루스의 시작은 흑인 노예들이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는 거잖아. 그런데 시작이 그렇다고 해서, 흑인들의 공통 감수성이 있는 건 아니지. 그들 하나하나 느꼈던 블루스가 달랐고, 그게 현대음악으로 가면서 또 엄청나게 다양한 장르로 뻗어나가기도 한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가는 자기만의 블루스가 있고, 우리도 각자 세 명의 블루스가 모여서 하나의 소리를 내는 거라고.

10. 그 과정에서 의견 충돌은 없나? 다시 말해, 좋은 것 혹은 멋있는 것에 대한 동의는 잘 이뤄지는 편인가?
김지원 : 곡이 좋아지는 건 사실 편곡의 힘이 크다. 편곡은 아까 말한 것처럼 각자 하는 거다. 물론 처음 가지고 온 사람의 의도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지. 좋고 나쁨은… 글쎄, 의미 없는 곡은 없다.
김진아 : 모두가 만족이 큰 곡은 함께 만들어가면서, 서로의 감정도 같이 녹여낸 곡이지. 앨범에 실린 곡들은 작업을 하다가 살아남은 곡들이고, 좋다고 가져왔는데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뺀 노래도 있고. 글쎄, 딱히 서로 안 맞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빌리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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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30일에 쇼케이스 공연이 있다고 들었다. 혹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진아 : 어떤 이유로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게 놀다 가세요.
김지원 : 가장 편한 상태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현준 : 많이들 와주세요.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10. 여기서 셀링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참고로 어떤 팀은 “우리 음악을 들으면 한강도 뉴욕이 된다”고 했다.
김진아 : 그럼… 빌리카터의 음악을 들으면 아픈 곳이 낫습니다! 하하하.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일렉트릭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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