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타임오프와 복수노조… 다시  '뜨거운 감자'로



⊙ 타임오프는 이미 정착

먼저 타임오프 제도부터 살펴보자.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의 근무시간에서 조합을 위해 활동한 일정 시간을 근무 면제해주는 것이다.

노조 전임자의 활동 시간 중 노사교섭,산업안전 등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 한해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지급한다.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회사)의 임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도입된 제도다.

2009년 말 근로자와 사용자,정부 대표가 모인 노사정(勞使政) 합의에 의해 도입돼 지난해 7월1일부터 시행됐다.

정부가 타임오프제를 도입한 것은 전임자 임금을 사용자가 지급하는 건 노조의 독립적 활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노동계에는 올 7월부터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했다.

노동 현장에선 이 제도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타임오프 도입률은 지난해 말 현재 86.5%에 달한다.

근로자 수 100인 이상 유노조 사업장(금속업종과 공공기관은 100인 미만 포함) 중 12월 말 이전에 단체협상(단협)이 끝난 1878곳 가운데 1624곳이 타임오프를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2009년 타임오프제 실시에 합의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임오프제 시행으로 전임자 수가 많이 줄어들어 노동운동의 존립기반이 흔들린다며 타임오프제를 전면 개정해 줄 것을 주장하고 있다.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유급 노조 전임자 수가 최대 10분의 1로 줄어드는 곳도 있다.

전임자가 230여명이던 기아차의 경우 법이 정한 유급 전임자가 21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회사는 노사협상에서 노조 조합비로 월급을 주는 무급 전임자 수를 70여명으로 합의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이 노조 전임자로 회사 일은 안 하고 월급을 탔다는 뜻이기도 하다.

⊙ 교섭창구 단일화는 ILO도 지지

오는 7월부터 개별 기업에도 허용되는 복수노조의 경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런데 노동계는 이 단일화가 노동기본권을 제약한다며 또다시 반대하고 있다.

과반수 노조에 교섭권이 주어질 경우 소수 노조의 기본권이 제한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노동계가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ILO(국제노동기구)에서도 우리의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에 대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교섭대표가 결정되면 결사의 자유에 합치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다.

단결권은 노조원 개인의 권리지만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은 노조의 권리로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제한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노동계가 이처럼 필사적으로 창구 단일화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대형 사업장에서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민주노총 내 투쟁사업장에선 여러 온건노조가 출현할 수 있다.

반대로 온건노선의 한국노총 소속 노조에는 강성노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상급단체를 두지 않는 독립노조나 최근 출범을 선언한 제3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노조도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에다 교섭창구가 단일화되면 노동운동 형태가 현재의 산별노조에서 기업별노조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산별노조란 한 개의 산업에 있는 여러 사업장 노조가 단일 노조로 뭉쳐 있는 것을 말한다.

금속노조 보건의료노조 금융노조가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전국 206개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복수노조가 시행되면 산별교섭이 1.3%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됐다.

현재 민주노총의 80%가량이 산별노조 지부 형태로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노총의 힘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임오프가 정착되고 복수노조 시행으로 교섭창구가 단일화되면 양대 노총이 양분하던 노동운동은 완전히 다른 형태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투쟁과 이념투쟁은 줄어들고 온건 · 합리주의적 노동운동이 주도할 전망이다.

기득권 세력을 대변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온 양대 노총이 노조법 재개정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겠다는 지적이다.

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반사이익을 챙기기 위해 노동계의 요구에 동조하는 형국이다.

정부는 노사정 합의로 개정된 지 1년여밖에 안 된 노조법을 다시 바꾸자는 것은 노사관계 선진화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여기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재개정은 없다"며 "타임오프와 복수노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기설 한국경제신문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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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鐵' 오명 벗고 사회공헌 추구

⊙ 서울 지하철 노조의 변신

2004년 7월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행하는 서울메트로 노동조합은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을 벌였다.

철도 운전사 출신의 군인까지 동원됐지만 지하철 운행은 파행을 빚을 수밖에 없었고 발이 묶인 시민들의 불만은 컸다.

서울지하철은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던 노사분규와 파업으로 인해 '파업철'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시 용답동 지하철 군자차량기지 대회의실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상급 노조단체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에서 탈퇴 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찬성의견이 과반수가 넘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탈퇴를 주도한 정연수 서울메트로 노조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은 "이제 더 이상 근로자들의 이익과 관계 없는 정치투쟁에 조합원들을 동원하지 않아도 된다"며 기뻐했다.

국내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중 한 곳에 소속돼 있다.

이 가운데 민주노총은 정부 정책,예컨대 용산 철거민이나 전교조 일제고사 거부 등 정치적인 사안들을 앞세워 자주 거리 시위를 벌인다.

과거 서울메트로 노조는 민주노총에서도 강성인 공공연맹 산하 주요 사업장으로 '민주노총의 본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2000~2007년 파업 등으로 인해 해고된 조합원들에게 지원한 조합비만 159억여원에 달했다.

시민의 발을 담보로 벌인 잦은 파업은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정치 투쟁에 염증을 느낀 조합원들은 2009년 1월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정연수 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정 위원장은 "노조가 정부와 사용자만 비난하던 습관은 버려야 한다"며 "이제 노동운동도 사회공헌과 합리적 대안을 추구하는 '제3의 길'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현일 한국경제신문 기자 hiuneal@hankyung.com